가족여행 일본여행
일본 후지산 근처에는 5개의 호수가 있다고 한다. 그중에 한 곳이 가와구치 호수 라는 곳인데, 가족과 함께 일본여행을 가면서 이 근처의 숙소를 예약했다. 숙소 근처에서 케이블카도 타고 버스 도로가 뚫린 후지산 전망대도 구경하고 나니, 저녁 시간이 남았다.
그때 후지산 근처에서 학교도 다니고 일도 했던 친구가 추천해 준 명소가 있어서, 해가 져 가기 시작할 때 쯤 그곳을 가 보기로 했다. 기차역에서 기차를 타고 얼마 가지 않으면 시모요시다 역에 도착하는데, 이곳에 근처에 전망이 좋은 공원이 있다고 했다.
시모요시다 역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공원을 찾아오는 모양인지, 우르르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똑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바닥에도 공원을 향해 가는 길이 표시되어 있었다. 시모요시다 역에서 내려 공원까지 걸어가는 길 주위는 완전한 시골의 논밭 느낌이었는데, 기찻길과 함께 논밭 구경을 하며 걸어갔다.
조금 더 걸어가서 공원 입구까지 가니 이런저런 음식을 파는 노점상이 있었다. 옥수수와 소세지, 오징어, 떡 같은 것들을 파는 모습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났다. 비록 취급하고 있는 메뉴는 달랐지만, 옛날 부모님과 함께 갔던 동네 축제 같은 곳에서 파는 음식들이 떠올랐다. 양념에 푹 절여진 닭꼬치나, 치킨 너겟 같은 것을 꽂아서 만든 꼬치 같은 것들.
동생이 꼬치를 먹는 사이 나는 가족들이 어디 있는지 확인하면서 공원 위쪽으로 같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공원은 비탈에 넓게 자리잡고 있었는데, 해가 질 때쯤 되자 강한 빛을 받은 벚꽃들이 예뻤다. 계단을 조금 올라가니 위쪽에 탑과 함께 뒤쪽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저곳이 바로 그 전망대인가 싶었다.
전망대에 올라가니 멋진 광경이 보였다. 벚꽃 사이로 올라와 있는 탑과 위쪽의 소나무, 저 멀리 펼쳐진 거주지와 그 너머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솟아 있는 후지산. 이곳에 온 것은 처음이었지만 나는 이 광경을 인터넷으로 본 적이 있었다. 인터넷으로 후지산 사진을 우연히 보다가 본 것이 이 사진이었지만, 사진을 봤을 뿐 어디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친구가 알려준 곳이 바로 내가 기억하던 그곳, 아라쿠라야마 센겐 공원이었다. 여행 사진을 보다 보면 나중에 저길 가보고 싶다, 생각해도 그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 못 갈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엔 언젠간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을 갈 수 있었다. 그것도 가족과 함께.
그 광경을 보면서, 나중에 또 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을 가족과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망대 구경을 마치고 내려오기 시작하니 갑자기 해가 급속도로 떨어지며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전만 해도 밝았던 밭이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있었다. 논밭 너머로 서 있는 후지산에도 조금씩 어스름이 찾아왔다.
사람이 별로 없어 한적한 역에서 가족과 함께 조금 기다리다 가와구치 호수로 가는 기차를 탔다. 가와구치 역에 도착하고 나서 숙소로 가는 길의 신호등 앞에 서니, 하늘은 저녁의 짙푸른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역에서 천천히 숙소로 돌아가다 마트에 들렀다. 딱히 살 것은 없었지만 어떤 것들이 있는지 구경했다. 구경을 하는 와중에 엄마와 아빠가 함께 물건을 둘러보는 것을 보니 재미있어서 뒤에서 살짝 사진을 찍었다.
내가 어릴 적 부모님은 사진을 찍기 위해 나보고 카메라를 보라면서 가만히 서 있게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방식보다는, 그 사람이 자연스럽게 있는 사진을 찍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마음에 드는 사진을 보면 카메라를 보고 있지 않은 사진이 대부분 인 것 같다.
마트에서 나와 숙소로 걸어가다 보니 작은 트럭이 있었다. 뒤쪽이 열려 있는 것을 보니 무엇을 팔고 있는 것 같아 자세히 보니 커피를 팔고 있었다. 조명을 켜 두고 위쪽에 내건 간판 안쪽을 보니 좁은 공간에 복잡한 커피 기구가 다양하게 들어차 있었다.
예쁜 곳이네 하고 그냥 지나가려다가, 문득 그곳에서 커피를 한 잔 사먹어 보고 싶어졌다. 어찌어찌 라떼 한 잔을 주문하고, 알고 있는 일본어를 쥐어짜서 예쁜 카페네요 라고 한마디 했다. 옆에서 아빠가 보더니 일본어를 할 줄 아냐고 물어보셔서, 괜히 말했다 했다. 조명으로 반짝이던 카페의 라떼 한 잔을 받아들고 걸어가며, 한적한 밤거리를 구경했다.
밤은 약간 쌀쌀했지만 손에 들고 있는 라떼는 따뜻했고, 편의점 간판은 환하게 빛났다. 아직 완전한 어둠이 찾아오지 않은 밤의 시작에, 하늘은 점점 남색에 가까워졌다. 호수 주위로 줄지어 늘어선 건물의 조명이 호수에 비춰 길게 흔적을 남겼다.
그 모습을 보면서 혼자 라떼를 마시다, 뒤쪽 숙소로 돌아갔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