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많고 손가락은 적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연말마다 다이어리 이벤트를 한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도장을 주고 그 도장을 모으면 다이어리를 증정하는 것이다. 다이어리 품질이 괜찮다는 이야기가 많기도 하고, 나와 동생이 같이 커피를 먹어 적립하기에 보통 다이어리 하나 정도는 받는 편이다.
그런데 나는 다이어리를 받고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다이어리를 펴 보는 일도 없어서, 다이어리 안에 있는 커피 쿠폰도 쓰지 않았다. 작년 말 다이어리 증정품을 받아 올해는 일 하면서 써 봐야겠다 싶어서 항상 자리 옆에 두지만, 정말 신기할 정도로 펴 보지 않고 기록도 안 했다. 회의할 때 들고 가는 것 이외에는 나에겐 용도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정도이다.
사실 옛날에도 한번 다이어리를 쓰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교환학생을 갈 때, 나는 그때 알던 사람에게서 다이어리를 받았다. 교환학생 하는 동안 몇 번 열심히 쓰려고 했지만 나는 정말 다이어리를 쓰기가 힘들어서, 구석에서 먼지만 받아가며 방치되었다. 나중에 다이어리는 잘 썼냐고 질문을 받았고, 나는 예나 지금이나 거짓말을 참 못한다. 내가 나름 다이어리를 쓰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마 과한 욕심이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나는 내가 생각하는 다이어리의 본질인 기록은 일상생활에서 충실하게 한다는 것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던 일을 기록하며 그것으로 글을 남긴다. 그리고 생각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결국엔 메모를 하고 기록을 남겨야 한다. 다이어리는 그것에 안성맞춤인 도구이다. 다양한 양식의 종이 위에 자신이 적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적으며 생각을 기록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다이어리를 쓰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다이어리를 손으로 쓰는 것이 답답하기 때문인 것 같다. 손으로 다이어리를 쓸 때 펜에서 나오는 글의 속도는 키보드에서 나오는 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나는 기록을 하고 글을 쓸 때 글이 나오는 속도와 생각의 속도가 같아야 한다. 손으로 글을 쓰면 내 생각은 그에 맞춰 느리게 가기에, 나는 답답함을 느낀다.
한때는 글을 손으로 쓰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펜이 종이를 스칠 때 남는 자국들, 종이에 새겨진 압력과 각기 다른 줄의 색과 넓이들. 단순히 글이라는 정보가 아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손글씨에 담긴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여의치 않을 때가 있어서인지, 종종 다이어리로 글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마음을 다잡고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며 기록을 남겨야겠다, 라고 생각했을 때에는 나는 손으로 글을 쓰지 못한다. 키보드와 화면이 있어야만 글을 쓸 수 있다. 그래야 내 생각이 머릿속에서 뽑아져 나올 때 내가 원하는 호흡과 속도로 나오며 내 생각에 가장 가깝게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다이어리를 쓰는 것이 참 힘들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