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여행중 만난 사람들
후지산 근처에서 3박을 하는 동안, 마지막 날은 날씨가 갑자기 매우 흐려졌다. 어제는 쨍쨍한 날씨에 구름 한 점 없이 따뜻한 봄 느낌이었는데, 갑자기 눈이 내리고 바람이 몰아치는 것이 신기했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가서,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면서 자주 만나던 일본 손님에게 물어보니 야마나시 날씨는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날씨가 좋지 않아 숙소에서 멀리 어딘가로 갈 수가 없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내다본 창 밖에서는 눈바람이 휘날렸고, 밥을 다 먹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눈바람이 몰아치는 밖은 호수 건너편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였고, 이런 날씨에 어딜 가긴 좋지 않았다. 특히 부모님과 동생이 다 모인, 모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쉽지 않은 가족여행 일정으로는 더욱.
다행히 숙소에서는 할 것이 많았다. 온천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다들 하루종일 별 생각 없이 가만히 있다가 온천을 들락날락 하고, 숙소에 있는 기념품 가게와 숙소 근처의 다른 가게들을 기웃거렸다. 수학여행을 온 것 같은, 똑같은 옷을 입은 학생들이 몰려다니는 모습과 함께 기념품 가게에 있는 이런저런 것들을 구경했다. 그렇게 궂은 날씨의 하루를 아무 생각 없이 유유자적 돌아다녔다.
이날 저녁은 친구를 보기로 했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는 동안 알게 된 친구가 있었는데, 친구의 친구가 한국에 가 보고 싶다고 한 것을 따라 와서 게스트하우스에 온 것을 알게 되었었다. 한국어를 하나도 못하는 친구 때문에 클럽에 따라 갔다가 지갑을 잃어버리고 친구도 잃어버려 강남역에서 동대문역까지 걸어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런게 가능한가 싶은 정도였다.
그때가 좋은 계기가 되어 종종 연락하다가 도움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런데 아빠가 일본 친구 이야기를 들으니 부탁하고 싶다고 한 것이 있었다. 사실 아빠는 일본에서 찾는 사람이 있었는데, 옛날에 행사 일을 통해 알게 된 오래된 일본 지인이었다. 행사 일을 안 하다가 연락이 끊어졌는데, 그 사람의 연락처를 가지고 있었지만 일본어를 못 하는 아빠는 다시 한번 그 사람과 만나보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어릴 때 몇 번 일본을 갔을 때 함께했던 그 분에 대한 기억이 좋게 남아있어, 한번 그 분을 다시 만나뵙고 싶었다. 친구에게 이야기를 하니 자기가 전화를 해 볼 수 있다고 해서, 머물고 있는 숙소로 와서 확인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숙소까지 와서 도와준다는 말에 우리 가족은 저녁식사를 대접하기로 했고, 그날 숙소에서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 친구는 나보다 키가 한참 작았는데, 손도 작아서 주먹쥔 손이 내 손바닥보다 작았다. 로비로 걸어들어오는 친구를 보고 아빠는 그 친구가 여자인 줄은 몰랐다 하셨다. 좌우지간 간단히 인사를 하고 아빠가 가지고 있던 연락처로 친구가 전화를 걸었는데, 다행히 전화를 받았다. 그분은 아빠를 기억하고 있었고, 다행히 시간이 맞아 일본에서 돌아가기 전 도쿄에서 보기로 약속을 잡았다.
아빠는 정말 고마워하셨고, 우리 가족과 친구는 함께 숙소에 있는 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꽤 잘 차려진 정찬이 저녁식사로 나오는 곳이었는데, 저녁을 먹으면서 아빠는 친구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셨다.
밥 다 먹고 나서 버스 정류장 돌아가는 길 친구를 배웅해 줬다. 잠깐동안 많이 내렸던 눈이 따뜻한 날씨 덕인지 녹고 있었는데, 녹은 눈으로 질척해진 길을 함께 걸었다. 일본에 도착하기 전 뭐라도 사 갈까 하여 뭐가 필요하냐고 물어봤는데, 한국에서 꽤 오래 된 캔 땅콩 브랜드인 머X본 이 먹고 싶다고 했다. 입맛이 나이대에 맞지 않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사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없었을 때, 이 친구와 있었던 일들 중에는 꽤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다. 친구 사이에 보통 이렇게 하나 하고 생각했던 때가 있어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일본을 갔을 땐 만나는 사람이 생겨서, 혹시 모르니 명확하게 하는게 좋겠다 하는 생각에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가면서 여자친구 있어! 하고 말했다. 그랬더니 친구가 나중에 나도 남자친구 있다! 하고 문자를 보냈었다. 그때 그 미묘한 감정선이, 지금도 종종 옛날 일로 떠오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사실 친구 부모님과 밥 먹는 자리가 편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나도 그럴 것 같아서 몇 번 씩이나 재차 자리가 편하지 않을 수 있으니 안 먹어도 괜찮다고 했었다. 그런데 왜 왔던 걸까 하는 생각에 옛날엔 이해하지 못했지만, 잠깐 식사 시간을 같이 보낸 그 마음을 지금 생각하면 알 것 같기도 하다.
버스 타는 친구에게 선물을 주고 손을 흔들어 주고 돌아와서, 낮에 기념품 가게에서 샀던 거봉젤리를 먹었다. 한국에서도 쿄호젤리라고 유명한 것이었는데, 포도알 처럼 포장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작은 이쑤시개로 포장을 뜯어 꺼내 먹는 것이었는데, 이거 그냥 이빨로 씹어서 뜯어 먹으면 되는거 아니냐고 달려든 동생과 아빠가 탱탱볼을 씹는 것 같은 모습이 너무 재미있었다.
나중에 기념품으로 몇 개 더 사야지 하고 열심히 찾았지만 결국 포도 젤리를 한 개도 못 찾았다는 것이 아쉬웠다. 여행에서는 역시 마음에 드는 것을 찾으면 바로바로 사야 한다.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