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가족 일본 여행기
후지산 근처를 떠나 도쿄로 가는 날. 전날 갑자기 폭설이 내리고 내린 직후라 그런지 하늘이 파랗게 맑았다. 분명히 그저께까지는 따뜻한 날씨에 벚꽃나무를 보기도 했는데, 다음날은 하루 종일 흐린 날씨에 눈이 내리고 오늘은 또 맑다니. 정말로 기상천외한 날씨였다.
체크아웃 하고 나서 둘러본 숙소 앞 호수는 짙은 푸른색인 것이 마치 바다를 보는 것 같았다. 호수 너머 산 위쪽에는 전날 계속해서 내린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어제는 호수 너머가 흐릿하게 보였던 것을 생각하면 날씨 변화가 정말 극적인 것 같아 신기했다. 버스를 타기 위해 기차역 근처로 가니 다시금 맑은 날씨에 후지산을 볼 수 있었다. 내린 눈 때문인지, 위쪽의 햐안 부분이 조금 더 커진 것 같았다.
시간 맞춰 도착한 버스를 타고 도쿄로 향했다. 첫날 도쿄로 도착했었지만 그땐 너무 늦은 밤이었기에 뭘 제대로 볼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다시금 대낮에 도쿄를 가니 이런저런 것들을 보는 느낌이 새롭게 다가왔다.
아주 어릴 적 온 가족이 일본에 온 적이 있었다. 그때 디즈니랜드를 가보거나, 일본 거리를 구경하거나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가족과 함께 버스를 타고 차창 너머로 지나가는 도쿄의 모습을 보니,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어렸을 때 갔던 기억이 다시금 떠오르는 듯 했다.
도쿄의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숙소까지 가기 위해 근처 교통편을 찾았다. 숙소는 도쿄 도심지에서 조금 떨어진 디즈니랜드 근처에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숙소에 대해 가장 큰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동생이었는데, 비슷한 가격에서 등급이 가장 높은 숙소를 찾다 보니 도쿄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 까지 온 것이었다. 비록 4인실을 쓸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던 문제도 있었지만, 높은 등급의 숙소를 쓰고 싶다는 동생의 요청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런데 숙소를 예약하기 전 나는 동생에게 숙소가 도심지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서, 대중교통을 조금 이용해야 할 거라고 했었다. 동생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직접 가 보니 생각보다 교통이 불편했다. 도쿄역에서 숙소까지 가는 환승 코스가 꽤 길어서 한참을 걸어야 했다. 동생은 이럴거면 말을 해 주지 그랬냐 하고 투덜거렸지만, 나는 동생에게 분명히 이야기 했다고 응수했다.
여하튼 도쿄역에서 출발해 디즈니랜드를 거친 뒤 숙소에 도착하니 아직 체크인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 체크인 시간을 넘긴 것 같은데 체크인이 되지 않는 것 같아서 확인하니 맞다고 해서, 어차피 짐을 놓고 바로 밥 먹으러 나갈 생각이었기에 그럴 수 있지 하는 생각으로 짐을 두고 밖으로 나왔다. 숙소 근처에는 거주단지가 몰려 있고 조금만 걸어가면 큰 쇼핑몰이 있어서 무난하게 밥 먹을 곳을 구할 수 있었다.
정말 일본어를 하나도 못하지만 운 좋게도 메뉴판에 음식 사진이 있어서 열심히 메뉴를 주문하여 늦은 점심을 먹었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쇼핑몰에 있는 베스킨라빈스에서 동생이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레인보우샤X트 의 맛이 다르다나.
다시 숙소로 돌아오니 그때 체크인 준비가 끝나 객실로 향했다. 그런데 체크인이 늦어서 그런지 아니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숙소의 방향이 다른 것 같다. 원래 고려했던 객실 중 전망이 조금 안 좋을 것 같은 곳이, 단가가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해 예약했었다. 그런데 숙소에 들어가 보니 내가 맨 처음 예약하지 않았던, 좋은 전망의 숙소인 것 같다.
비록 날씨는 조금 흐린 편이었지만 여하튼 창가 너머로 전망 구경을 하며 몇 시간 쉬고 나서, 다시 도쿄 중심지로 가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숙소 근처의 전철역에서 표를 사서 도쿄 중심으로 가는 전철을 타니, 25분 정도가 걸린다. 환승 통로를 걷는 데는 10분 정도 걸린다. 동생은 나중에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도, 앞으로 숙소를 잘 보고 예약해야 할 것 같다고 두고두고 말했다.
이날 온 가족이 함께 도쿄 도심지를 돌아다녔는데, 사방팔방이 외국인으로 넘쳐났었다. 도쿄의 밤거리는 짙은 밤하늘과 반짝이는 네온사인들 아래 사람들로 바글거렸는데, 내가 선명하게 기억하는 옛날의 도쿄 밤거리가 그 느낌인 것 같았다. 묘하게 그때 옛날로 돌아가 거리를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적당히 거리를 구경하다가 저녁을 어디서 먹을까 고민했는데, 가족 여행 계획을 너무 안일하게 준비했던 터라 어딜 갈까 하다가 지나가면서 봤던 괜찮아 보이는 회전초밥 집에서 저녁을 먹기 위해 들어갔다. 그런데 몇 점 먹어 보니 나에게는 전혀 이상한 것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부모님과 동생은 약간 아쉽다고 했다. 한국에서 먹는 것과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나.
결국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적당히 먹고 나서 근처에서 발견했던 다른 가게로 갔었다. 그 가게는 조금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는데, 회전초밥집도 아니었고 주문을 받아서 음식을 내어주는 가게였다. 그곳에서 주문한 스시를 먹는 동생과 부모님에게 맛이 어떠냐고 물어보니, 이곳이 훨씬 낫다고 했었다. 나는 아무리 먹어 봐도 차이를 잘 몰랐지만 말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일본은 확실히 실내 흡연이 일반적이라는 것이었다. 옆옆 자리에서 위로 담배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다시금, 여러 사람의 취향을 만족시키기에는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저녁식사였다. 마치 머리가 3 개인 상태로 어딜 가야 하는지 고민하며 서로 싸우는 신화 속 개가 된 것 같은 느낌에, 다음번엔 꼭 꼭 준비를 잘 해서 오자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