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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것은 사진뿐이다

잊혀질 것을 존재하게 하는 법

by 문현준

어느 부모님이나 그러듯이 우리 부모님도 어릴 적 나와 동생을 데리고 여기저기를 다니셨다. 이젠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것 같은 그 시절 그 감성이 가득이었던, 사람으로 가득찬 행사장이나 놀이공원 같은 명소들. 카메라를 보며 웃으라고 하도 많이 부모님이 강조하신 덕에 이제 나는 카메라를 보며 웃기 힘든 사람이 되었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종종 하시던 말 하나는 확실히 기억난다. 결국엔 다 지나가고 남는 것은 사진 뿐이라고 하셨다.




최근 들어 그 말을 생각하다 보니, 얼마 전 내가 집에서 찾았던 것이 생각났다. 그것은 몇 번 이사를 거치면서 버릴 수 있는 것은 모두 버리고 나서 남아 있는 것이었다. 오래 전 부모님의 결혼식 때 찍은 비디오 테이프가 케이스 안에 온전한 상태로 보관되어 있었다. 이제는 비디오 테이프를 읽을 수 있는 기계조차도 많지 않아 영상 내용을 알 수 없었는데, 다행히 복원 하는 업체가 있어서 맡겨서 돈을 주고 복원해왔었다. 그 영상을 부모님께 결혼기념일 선물로 드렸는데, 나는 영상을 얼핏 보기만 했지만 그때 찍어둔 그 영상이 한참이나 지난 지금 부모님에게 특별한 의미가 된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옛날 부모님과 갔던 장소들도, 부모님의 결혼식도, 결국엔 지나가는 순간 뿐이었다. 그 순간은 다양한 감정으로 마음이 충만하고 특별한 의미로 인생이 다채로워지겠지만, 결국엔 그 순간은 지나가는 것일 뿐이었다. 감정은 사라지고 기억은 잊혀진다. 내가 살면서 느껴왔던 많은 감정도, 소중한 기억들도, 기억에 남는 것들 외에는 모두 잊혀져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을 기록한다면 기록은 남아 있게 된다. 비록 부모님이 들고 있는 카메라를 보는 내 얼굴은 죽을 상이었겠지만, 그 사진을 찍힐 때의 순간이 기록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부모님의 결혼식도 마찬가지였다. 결국엔 잊혀지고 희미해져 없어져 버릴 그 순간의 기억과 감정이,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래서 평소에 이것저것 열심히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남기고, 일상의 재미있는 순간을 사진으로 찍는다. 가끔 내가 생각한 것들에 대한 답을 정리하고 싶을 땐 꽤 고민해서 글을 쓰곤 한다. 그렇게 하면, 내가 잊어버릴 기억과 잃어버릴 감정을 기록으로 남겨서 나중에 그것을 보고 다시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옛날 그리고 지금도 부모님이 나에게 종종 하는, 남는 것은 사진뿐이다 라는 말은, 어쩌면 남는 것은 기록뿐이다 라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결국엔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희미해 지겠지만, 기록한다면 달라질 지 모른다. 2020 09, 서울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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