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산은 없는데 젤라또는 있다
금요일은 항상 한 주가 끝나고 주말이 바로 코앞이라는 점에서 기분이 좋아지는 날이다. 최대한 빨리 일을 마무리 하고 집에 가는 금요일 밤이 되면 나는 들리는 곳이 있다. 일 끝나고 주택가 사이를 지나 이런저런 가게들을 지나다 보면 나오는 가게가 그곳이다. 어찌 보면 생뚱맞다고 할 수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젤라또 집이다.
비록 규모는 작아도, 앉아서 먹을 공간도 간단하게 준비된 젤라또 가게에 들어가면 아이스크림이 용기에 담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맛이 바뀌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초코 아이스크림처럼 검증된 명작들도 있지만, 나는 새로운 맛을 시도해 보곤 한다. 하지만 아이스크림 이라는 생각 때문에 산미가 있는 과일 맛보다는 크림과 잘 어울리는 견과류나 유지방 맛의 아이스크림을 고르게 된다.
아이스크림을 고르기 전 결제를 해야 하고, 나는 항상 결제를 할 때 필요한 만큼 돈을 체크카드로 옮겨서 결제한다. 그때도 젤라또 결제를 하기 위해 카드로 돈을 옮기려 했는데, 은행 어플에 있는 문구가 눈에 확 들어왔다. 아마 은행 어플의 목적은 빅데이터를 활용해서 은행 서비스로 유인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나에게는 그 문구 하나가 강렬하게 꽂혔다.
지금까지 모은 내 자산은 얼마일까요? 30대 평균 순자산 2.88 억원
30대 평균 순자산이 2.88 억원 이라는 말을 보니 어안이 벙벙해졌다. 나는 30대인데, 나도 순자산을 2.88 억원 정도는 모아야 평균에 낄 수 있다는 것일까?
물론 30대 평균이라는 말은 30대 전체를 포함하는 것일 것이고, 피라미드 계층 특성상 위로 올라갈수록 부의 편중이 극대화되니 중간값을 따지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30대라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산을 크게 늘릴 수 있는 시기인 것 같으니, 거기서 말하는 30대 평균 순자산이라는 표현은, 내가 생각한 것과 좀 다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문득 나에게는 그 문구가, 30대라면 평균 순자산 2.88 억은 있어야 평균 축에 듭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내 지갑이 얇다는 불만에서 온 것 아닐까 싶어도, 어쨌든 그 문구가 재미있어서 캡쳐해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올렸더니, 친구 한 명이 그러니까 돈 적당히 썼어야죠~ 하고 말했다. 그 말이 내가 돈을 적당히 썼으면 2.88 억은 모을 수 있다는 뜻인가 하고 순간 고민했다.
그러다 이내, 그저 그 아래 쪽의 문구를 보지 않고 체크카드 잔액만 보고 나서 말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다. 짧은 순간의 생각을 거치고 나니 내 손에는 땅콩누텔라 맛과 다크초콜릿 맛이 담긴 젤라또 한 컵이 들려 있었다. 내가 한 컵에 오천원 정도 하는 젤라또 아낀다고 해서 그 평균 순자산을 모을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얼마나 더 모아야 가능한걸까?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한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었다. 내가 그 순자산을 모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당장 젤라또 한 컵은 사먹을 수 있고, 그 젤라또는 맛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