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게임센터 구경하기
나는 평소에 가 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구글 지도에 열심히 즐겨찾기를 해 두는 편이다. 나중에 언젠가는 갈 날을 기원하면서 저장해 두는데, 일본에도 많은 곳들을 저장해 두었다. 그 중에 한 곳이, 도쿄에서 조금 떨어진 가와사키 라는 곳에 있는 한 게임센터였다.
큰 건물에 게임기와 인형뽑기 기계, 자판기 같은 것들이 가득 들어찬 게임센터는 사실 일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이 곳이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1990년대까지 있었던 홍콩의 유명한 슬럼가인 구룡성채를 모티브로 아주 잘 구현해 놓았다는 소문을 들었던 것이다. 나중에 언젠간 가 봐야겠다 싶었는데, 나 말고 다른 가족들이 구경하기에도 재미 있을것 같아, 미리 이야기 해서 같이 가 보기로 했다.
가와사키로 가는 길, 중간중간에 열차를 몇 번 보냈는데, 일반 전철이 아니라 유료 좌석만 있는 열차인 줄 알아서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앞쪽은 유료 좌석이 있고 뒤쪽은 일반 전철인 열차였다. 그냥 일단 타면 되지 않느냐는 가족의 말에, 나는 그냥 탔다가 엉뚱한 데 내리면 어쩌냐고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로 그냥 타 봐서 상관 없었으려나 싶기도 하다.
여하튼 가와사키까지 가서 내려 걸어가다 보니, 멀리서도 볼 수 있는 인상적인 건물이 보인다. 건물의 외형도 녹이 잔뜩 슬어 있는 것처럼 만들어 두었다. 이 게임센터를 만드는 회사는 각각 동네별로 다른 분위기의 게임센터를 만들어 놓는다고 한다.
출입구 부터 슬럼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자동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오래된 건물 사이로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음산한 뒷골묵 느낌을 잘 살린 통로를 지났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독특한 분위기의 공간이 나타난다.
구룡성채는 홍콩에서 1990 년대 철거되기 전까지 있었던 유명한 슬럼가인데, 높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고층 슬럼가라는 특이한 형태였다고 한다. 홍콩 영화를 촬영하기도 하고, 게임이나 다른 영화에 많은 영감을 주기도 했다는데, 이곳은 그때 구룡성채 분위기를 재현하기 위해서 당시 쓰던 포스터를 공수하는 등의 노력을 하기도 했다나.
사실 게임센터 건물은 아주 커서 5층 정도 되는 것 같지만, 그 중에 구룡성채 분위기로 꾸며진 곳은 두 층 정도라서 모든 곳이 구룡성채 분위기라고 기대하면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른 층은 평범하게 게임센터 분위기가 되어 있어서 인형뽑기 기계가 줄지어 있거나 했다.
하지만 좁은 공간이라도 그 특이한 슬럼가 분위기를 잘 살려 두어서, 좋은 경험을 할수 있었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화장실이었는데, 공포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살벌한 슬럼가 공간을 만들어 두었다. 가끔씩 오래된 전화기 소리가 뜬금없이 울리는 것도 재미있었다. 바로 옆쪽에는 여자 화장실이 있는데, 들어가 본 엄마 말에 의하면 전혀 다른 느낌으로 깔끔하게 꾸며 두었다나.
아쉽게도, 웨어하우스 가와사키는 2019년 말에 폐업했다고 한다. 건물 외부 전체와 내부 일부를 구룡성채 스타일로 꾸미면서 들어간 비용이나 유지비가 게임센터 수익으로 충당이 될까 하는 궁금했지만, 구룡성채의 모습을 잘 살려둔 곳이 아예 없어진다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한때 홍콩에 있던 슬럼과와, 그 슬럼가를 본딴 일본의 테마파크에서, 가족과 구경을 했던 그 시간들이 사진을 보니 문득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