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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와 바퀴벌레

각각 다른 죽음의 무게들

by 문현준

아침에 일을 가기 위해 지하철로 가다 보면, 오른쪽에 재개발 지구가 있다. 더이상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은 것 같은 주택들을 구경하다 보면, 담쟁이 덩굴이 한가득 얽힌 집을 지난다. 평소에는 그냥 그런 주택이 있었구나 하고 그냥 지나다녔다.




그런데 어느날 지나가다 보니, 잘 보이지 않는 아래쪽에서 푸드득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자세히 보니 담쟁이 덩굴이 아래까지 엉켜 내려가 있고, 그 아래에는 비둘기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담쟁이 덩굴 사이를 걸어다니다가 줄기 사이에 발이 얽혀서, 날아가려다가 그대로 붙잡혀 아래로 떨어진 모양이다.




일 가는 시간은 보통 촉박한 시간이고 이래저래 쓸데없는 것에 시간 쓰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그 비둘기에 시선이 갔다. 내가 새를 좋아해서 그런가, 머리는 아래로 향하고 가끔 푸드득 거리기만 할 뿐 덩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비둘기가 신경이 쓰였다. 저렇게 있다가는 너무나도 쉽게 고양이에게 잡아먹힐 것 같다.




하지만 일은 가야 하고, 그날 돌아올 때는 다른 길로 오느라 그 주택 앞을 지나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나는 그 주택을 지나가면서, 비둘기가 더이상 똑같은 자리에 걸려 있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가까이 가 보니, 비둘기는 더이상 덩굴에 걸려 있지 않았다. 결국 땅바닥까지 닿아서 덩굴을 풀어낸 것인지, 아니면 그 전에 빠져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어도.




문득 그 비둘기가 무사히 덩굴에서 풀려났기를 바라는 내 자신을 느끼다가, 옛날에 또 다른 비둘기를 봤던 기억이 났다. 풀숲 사이에서 갑자기 걸어서 나타난 그 비둘기의 발이 이상하게 부풀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그 모습이 자꾸 생각이 났다. 의미 없는 바람이라 해도 비둘기가 고통을 겪지 않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꽤 오래 지나고 나서도 종종 떠오르는 그 모습과는 다르게, 정말 관심 없고 사라져 줬으면 하는 것도 있다. 그건 바로 바퀴벌레다. 불 꺼진 주방에서 불을 켤 때 갑자기 나타나 있을까 신경쓰이고, 벽과 수납장 사이의 공간에서 기어 나올까 무서운 그것. 슬리퍼로 때려 잡고 싶어도 슬리퍼를 닦아내는 것이 신경쓰이는 바퀴벌레.




비둘기와 마찬가지로 바퀴벌레도 똑같이 생명의 하나겠지만, 나는 바퀴벌레의 생명은 소중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에게 이득을 주지도 못하고, 나에게 위안을 주지도 못해서일까. 가급적 안 보였으면 좋겠고, 앞으로도 영영 볼 일이 없었으면 좋겠을, 엄지손가락 만한 갈색 형체는 나에게 비둘기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 둘을 생각하다 보면, 비둘기와 바퀴벌레가 가진 각자 생명의 가치가 나에게 동등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생명의 가치는 같을 수 있겠지만, 나에게 가지는 가치로 볼 때 절대로 평등하고 동일할 수 없을 것이다. 나에게는 비둘기와 바퀴벌레가 다른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다른 생명이 다른 가치를 지닐 것이다.




동물이 가진 생명의 가치도 다를텐데 하물며 사람의 것은 어떠할까 하는 생각을 하다보면, 생명의 가치는 동등하고 평등하다는 이야기가 조금은 덧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에 동등하고 평등한 것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만 같다. 생명조차도. 2021 04, 서울 창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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