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 중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
2019년, 정말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일본을 갔다. 부모님까지 모시고 다니는 것은 그럭저럭 괜찮았어도, 동생까지 다 같이 다니니 모든 것을 내가 신경써야 하는 것은 그렇다 칠 수 있었다. 두 명이 있을 땐 두 명이 50% 정도의 만족감을 가졌지만, 네 명이 있으니 각자 25% 의 만족감을 가지는 것 같아도 어쩔 수 없으려나 싶었다.
그런데 그 만족감과는 별개로, 나는 하루 종일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과 모든 것을 함께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주위에 항상 가족과 있고 가족의 행동을 신경써야 하는 그런 상황에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롯이 내 일을 하는 시간을 중시해서 그러는지, 나도 좋아하는 여행지에 왔는데 온전한 내 취향의 행동을 하고 싶어서 그랬는지, 나는 내 시간이 너무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사실 이런 것들은 모두 여행 시작하기 전에 계획을 철저히 준비해서 대비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나는 오랜만에 가족끼리 좋은 구경하러 가니 큰 얼개만 짜 두면 문제 없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안일한 생각의 큰 대가를 치루고 있는 나는, 좌우지간 간절히 개인 시간을 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행 마지막 날인가에, 두 세 시간 정도 혼자서 도쿄 구경을 하고 오겠다고 했다.
4인 가족여행 대략 100 시간 정도 중, 길어야 3 시간. 내가 혼자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시간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빈틈없이 해 나갔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내가 요리에 쓸 칼을 사는 것이었다. 도쿄에 있는 주방용품 전문 거리에 가는 도중에, 일본에 가면 습관처럼 들리는 잡화점도 들리고 길거리 구경도 했다. 잡화점에서 대단하게 뭔가를 사지는 않았지만, 잡화점에 큰 물고기 어항이 있는 것이 신기해 사진을 찍기도 했다.
짧게 북적이는 거리를 지나고 한적한 골목을 지나 다음 큰길로 넘어가니, 내가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던 거리가 나왔다. 꽤 큰 길에 이런저런 주방용품을 파는 가게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한 곳을 골라서 들어갔다.
사실 서투른 목수가 연장 탓을 한다고, 좋은 칼이 요리에 직결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요리를 좋아하는 나는 온전히 나만 쓰는 칼을 하나 갖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여행에서 산 것 칼을 요리할 때 종종 쓴다면 좋을 것 같아, 이번 여행에서 꼭 사기로 한 것이었다. 사용에 크게 영향은 없을 것 같아도, 물결 무늬가 그려진 칼이 멋져 보여서 큰 것과 작은 것을 세트로 하나 샀다. 칼을 갈 숫돌도 샀다. 영어를 잘 못하는 할아버지 직원은 손짓발짓을 하며 칼 가는 법을 알려주었다.
칼을 살 때는 앞으로 요리할 때 열심히 써야지 생각했지만, 나중에 돌아와 보니 의외로 쓸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칼은 주방에 놓고 험하게 써야지 편하게 쓸 수 있는데, 여행에서 산 칼은 고이고이 모셔두고 특별한 날에만 쓰려고 해서 그런 것 같다.
생각보다 큰 돈을 칼 사는데 썼기 때문에 세금을 돌려 받을 수 있어서, 그때 칼을 사고 바로 근처에서 세금 환급을 하러 갔다. 세금 환급 하는 곳에는 외국인 직원이 있었는데, 외국인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영어로 수다떠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도 그 뒤에 줄을 서서 앞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열심히 들어보려 했다.
칼을 사고 나서는 다른 가게에 선물을 사러 갔는데, 시부야 역에 도착하니 흔히 인터넷에서 봤던 유명한 교차로를 볼 수 있었다. 역 안에서 본 교차로는 가로수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래쪽 번잡한 사람들 사이에서 보거나 지금 당장 시간을 낼 수 없을 것 같은 카페에서 보는 것보단 좋을 것 같았다.
이때 봤던 시부야 교차로의 광경이, 인터넷에서 보던 것을 직접 본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 여행에서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었던 것 중 하나를 이룬 것 같았다. 나에게 여행을 가는 것은 어딘가 가 보고 싶다고 느끼는 것을 경험하는 것 같은데, 정말 인터넷에서 본 것과 비슷하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다른 곳에서 사려고 했던 선물까지 다 사고 나니, 생각보다 시간이 훌쩍 지났다. 다행히 목표로 했던 것은 다 이뤘다. 가 보고 싶었던 가게들을 가고, 사려고 했던 것들을 사고.
돌아가면서 생각했던 것 같다. 역시 나는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고. 나에게 필요한 것을 나 혼자서만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누구와 어떤 여행을 가더라도, 미리 계획을 세우자고. 철저하게.
짧은 시간, 많은 것을 배웠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