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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바에서

가족 일본 여행의 마무리

by 문현준

원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기분 좋았던 것들은 조금씩 흐려진다. 좋았던 일은 커피 속에 떨어져 흩어지는 우유 방울마냥 희미해지고, 기억에 길이 남는 것은 아쉬운 경험들이다. 사소한 것으로 싸우고 다퉜던 그런 일들.




정말 오랜만에 온 가족이 시간을 내서 갔던 일본 여행도 그래서, 항상 좋은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구경을 할 때도 있었지만, 서로가 서로 하고 싶은 것이 달라서 아쉬워 하고 감정 상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여행 막바지가 되어 갈 때 아쉽다는 느낌 보다는 성취감이 들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해냈구나, 하는 느낌.




좌우지간, 그런 성취감을 마무리 하기에는 호텔 라운지 만한 것이 없었다. 도쿄 숙박으로 정했던 숙소는 도쿄 중심부에서 떨어져 있어서, 도쿄 중심으로 갈 때마다 대중교통과 도보이동을 30분 정도는 해야 했다. 하지만 시설에 비교하면 가격이 합리적인 편이었기에 나쁘지 않았다. 호텔 꼭대기에도 괜찮은 라운지가 있어서, 마지막 날 가족이 함께 방문했다.




호텔 건물 꼭대기에 있는 라운지에 들어서니 사람은 우리 가족 뿐이었고, 창가 자리에 앉으니 아래쪽으로 도시가 보였다. 높은 건물이 없이 평탄하게 펼쳐진 도쿄 주위 도심 사이로, 멀지 않은 곳을 지나는 전철 선로가 보였다. 보고 있으면 전철이 불을 밝히고 지나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빠는 술을 못 드셔서 알콜이 들어가지 않은 칵테일을 드시고, 엄마와 동생은 각자 먹고 싶은 칵테일을 먹었던 것 같다. 나는 맥주를 먹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칵테일을 먹어 보는 것이 어땠을까 싶다. 호텔 라운지의 메뉴판은 아무리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것들 투성이이지만, 그래도 가끔씩 한번쯤 경험해 보기에 좋은 것 같다.




IMG_1438.JPG 라운지 앉은 자리에서 봤던, 전철이 지나가던 도쿄의 모습




사실 이제 온 가족이 흩어져 살다 보니, 가족끼리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는 엄마와 살지만 아빠는 지방에서 살고, 동생은 기숙사에 산다. 네 명이 한 자리에 모이려면 네 명이 동시에 시간을 내야 하니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네 명이 동시에 모여서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를 천천히 했던 것 같다. 밖에 나가서 어디를 구경하거나 뭐를 먹고 있는 때가 아니라, 그냥 술을 홀짝이면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나눴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사실 운동선수인 동생의 이야기 이기에 나는 잘 모르는 것들이지만,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던 것 같다.




여행 막바지가 되어가자 다들 아쉽거나 한 것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아서, 나는 다른건 모르겠고 다음부터는 계획을 철저하게 짜서 오겠다고 했다. 아무리 각자 원하는 것이 다르고 찾고 있는 재미가 다르다 해도, 내가 미리 그것을 감안해서 계획을 짠다면 서로 불편할 일이 조금은 줄어들 테니. 가족과 좋은 날 잡아서 좋은 곳에 간다는 생각으로는 부족하니까.




뭐 가만히 흘러가는 대로 가다 보면 좋게 좋게 되지 않겠나, 라는 생각으로 좋게 되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IMG_1442.JPG 두 번째 잔으로 흑맥주를 먹으며, 앞으로는 계획을 철저하게 세우자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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