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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같은 감정

차가운 사람도 따뜻한 사람도 마찬가지

by 문현준

그 사람은 감정이 참 불 같다, 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감정이 불 같다고 이야기 한 이유는 뭐였을까. 볏짚을 넣으면 순식간에 커지듯이 확 달아오르고, 더이상 태울 것이 없으면 순식간에 쪼그라들어 사라지는 그 변화가 불 같다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쉽게 흥분하고 쉽게 사그라들고, 그런 모습을 보고 감정이 불 같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감정이 불 같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나를 가까이서 본 사람들은 내가 의외의 상황에서도 감정절제를 하는 것을 보고 신기하다고 이야기 하기도 했었다. 살면서 내가 내 마음 속에 있는 감정 때문에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했던 적도, 감정적으로 변한 목소리가 바들바들 떨리는 것을 느꼈던 것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기도 하다.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좋지 않다고 느껴왔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사실 아주 감정적인 사람이다. 나는 생각이 많고,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어떤 때는 아주 긍정적이고, 어떤 때는 아주 비관적이다. 단지 몇 분과 몇 가지의 일을 가지고 생각은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며 감정도 요동친다. 그걸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할 뿐, 마음 속에서는 항상 뒤엉키는 감정이 끓어오른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감정이 불 같다 라는 말이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이란 옛날부터 느끼고 있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이전과는 그 말이 다르게 느껴진 것이다. 내가 느낀 감정과 불의 같은 점은, 그 형태를 정확하게 알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일렁이는 불은 그 형태를 알 수 없다. 사진을 찍는다 해도 정확한 불의 모습이 아니다. 사진을 찍은 순간의 불의 모습일 뿐, 지금 당장 그 불의 모습이 아니다. 사진을 보고 불의 형태를 알 수는 없다. 불을 보고도 불을 찍은 사진의 모습을 알 순 없다. 불은 계속해서 변하고, 사진을 찍는 것은 그저 불의 아주 잠깐의 찰나를 담아놓는 것일 뿐이다.




문득 그 모습이 감정과 같다고 느꼈다. 내가 느꼈던 어떤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 변하고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맨 처음에 느꼈던 것과는 다른 감정이 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계속해서 변하며 일렁이는 불길과 같은 것 아닐까.




나는 그때 왜 화가 났을까. 나는 그것을 왜 싫어했을까. 나는 왜 비관적인 시점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때 나는 그걸 싫어했던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걸까. 다시 곱씹고 생각해 봐도, 생각할 때마다 변하고 있는 그 감정들. 그건 마치, 장작 위에서 계속해서 형태를 바꿔가는 불을 보는 것 같았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데인다는 것도, 일맥상통 하는 것 같기도 하다.




P20210918.jpg 불 같은 감정이란, 불처럼 계속해서 변하기에 알기 어렵다는 뜻 같기도 하다. 2021년 9월, 창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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