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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없이는 못 살고, 엄마하고는 못 산다

독립을 해야만 하는 이유

by 문현준

나는 평일 저녁에 집에 오면 집에서 하는 것들이 있다. 일단 운동을 하고, 그날 저녁 먹을 것을 먹은 다음, 컴퓨터를 이용해서 작업을 한다. 항상 작업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은 컴퓨터를 계속해서 보고 있어야 하는 일들이다. 가령 브런치 글 준비가 그렇다.




그런데 집에는 컴퓨터가 큰 안방 안에 있고, 안방 한쪽 구석에는 티비가 있다. 엄마는 그곳에서 티비를 본다. 내가 작업을 하는 동안 엄마가 보고 있는 티비에서는 계속해서 이런저런 영상이 나온다. 트로트 영상, 오래된 사극, 썰 예능, 하루에 한 번씩 틀어주는 것 같은 케이블 영화들.




다 아는 내용에 굳이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이지만, 엄마가 티비를 보면 나는 신경이 쓰인다. 몇 번 씩이나 봐서 내용을 알지만, 그만큼 검증된 영화의 재미있는 장면이 흘러나올 때가 있다. 굳이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묘하게 보게 되는 예능의 장면들도 있다. 결국 티비 화면을 몇 번 흘깃거리다 결국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티비만 내 작업을 방해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엄마는 아들이 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내가 보고 있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 내가 쓰고 있는 글을 본다. 내가 다른 사람과 나누고 있는 채팅도 보고 가고, 내가 작업 하다 일어선 컴퓨터에 잠깐 쓰겠다며 앉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있다 보니 나는 집에 엄마가 있을 때 개인작업을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어디선가 인터넷에서 보았던 것 같은 글이 기억이 난다. 성인이 되고 나서 자식이 부모와 생활공간이 분리되지 않으면 싸울 일 밖에 없다고. 지금 엄마 공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내 공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니, 지금 싸울 일 밖에 없는 그 예시가 정확히 나에게 해당하는 것인 모양이다.




하지만 그래도 엄마와 함께 같이 살면 가족을 챙길 수 있는 것 같아서 그건 다행이다. 동생과 아빠와는 떨어져 사는데, 아무리 자주 연락한다 해도, 각자의 위치에서 알아서 잘 해 나가겠지 생각해도 매번 지켜보는 것이 아니니 신경쓰일때도 있다. 엄마와 같이 살고 있으니 적어도 엄마 걱정은 하지 않게 되어 다행이다.




옛날 대학교 다닐 때 자취하던 때, 아무런 신경 쓰이는 것도 없고 온전히 내 공간을 가졌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했던 것 같아 그때가 종종 생각난다. 역시 나는 혼자 살아야겠구나 싶다가도, 가족끼리 살면서 챙기는 것도 다행이구나 싶지만, 굳이 생활공간을 겹쳐 살면서까지 지내야 할까 싶어지기도 한다.




내가 봤던 그 말대로 같이 있으면 싸울 일 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긴 해도, 누군가 나에게 해줬던 말이 매일매일 실감나는 일상이다. 엄마 없이는 못 살고 엄마 하고는 못 산다는 것을.




가족과 같이 살면 좋지만, 같이 살아야만 할 정도로 좋지는 않은 것 같다. 2022 05, 서울 청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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