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함은 특별하지 않은 것을 계속함이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 취미로 소설을 쓰곤 했다. 그리고 난 내가 쓴 소설로 인정을 받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주위에 있던 그리고 알고 있던 사람들 중에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와는 다른 특별함이 있기를 바랐다. 그것이 나를 돋보이게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진실의 매운맛을 덜 본 풋내기는 자기가 하는게 뭔가 거대한 재능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그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곤 했다.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 없는 풋내기 중 하나였던 나는 아직은 그걸 몰랐거나 알면서도 신경 안썼지만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라 맘에 안 드는 현실은 비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걸 비판할 논리와 경험이 없어서, 소설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만 겨우 할 뿐이었다. 좌우지간 나는 그렇게 나만의 불만 해소 방식으로 소설을 썼었다.
여하튼, 그때 썼던 짧은 글을 학원에 다니던 국어 강사 선생님에게 보여준 적이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30대가 되지 않았던 것 같은 선생님은, 내 습작을 보고는 솔직하게 평가를 말해달라는 나의 말에 이런 이야기 정말 많아 특별하지 않고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 라고 말해줬다.
예나 지금이나 자신만이 가진 특별함이 자신의 정체성이라 믿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것은 사실 그게 하나도 특별할 것이 없다는 진실 그 자체다. 본인도 알고 있지만 어설프게 부정하고 있던 그 진실을 턱 밑에다가 들이대는 것은, 민달팽이에게 쏟아부어진 소금 한 스푼 만큼이나 치명적이다.
부정하고 있던 현실을 구태여 지적당한 나는 아 그럼 이 습작은 별로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찢어서 버리는게 낫겠어요, 하면서 찢어서 버렸다. 그 말을 해 줬던 선생님 앞에서 말이다.
솔직하게 말해 달라는 내 말에 대한 대답으로 너무 잔인한 것 아니었을까 싶은 그 선생님의 말은, 어쩌면 되먹지도 않은 위안성 거짓말보다는 덜 잔인해서 자비로운 것이었을지 모른다. 잘하지 않은 것을 잘 했다고 이야기 하는 것보단, 잘 하지 않은 것은 잘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나을테니. 문득 더이상 소설을 쓰지 않고 앞으로도 쓸 일이 없을 것 같은 나에게, 어릴 때의 창피한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다만, 내가 선생님이라면, 좀 더 다르게 이야기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는 특별하지 않지만, 처음은 특별하지 않을 지 모르니, 일단은 계속해서 써보라고. 그러면 특별해질 지 모르니까. 시작보다 중요한 것은 계속하는 것이고, 특별함은 시작이 아니라 계속하는 것에 있으니까. 그러니까 한번 계속해서 꾸준히 해 보라고.
특별함은 그 자체로 특별한 것이 아니라, 특별하지 않은 것을 수없이 반복하며 계속해서 해나가고 조금씩 나아짐이라는 것. 내가 만약 선생님이었다면, 내가 믿는 특별함을 그때의 나에게 이야기 해 줬을지 모른다. 물론 선생님이 해 준 말을 듣고 습작을 찢은 것과 상관없이, 내가 소설을 계속해서 쓰는 일은 없었을 것 같긴 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