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르는 공간과 이용하는 공간의 차이
대학교 때부터 오래 알고 지냈던 친구가 있다. 개그 코드가 나름 잘 맞을 때가 있어서, 가끔 재미있는 사진 같은 것을 보내주곤 한다. 가끔씩은 뭐 이런걸 재밌다고 보냈어 하는 생각도 들 때가 있지만, 그래도 살면서 개그 코드 잘 맞는 사람 어쩌다가 알게 되었네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이 친구가 재미있는 사진을 보낼 때 인스타로 디엠을 보내기도 한다. 사진 위주의 SNS 서비스인 인스타그램에 별도로 딸려 있는 채팅 기능인 디엠으로 메세지를 보내는 것인데, 카카오톡으로 잡담을 나누고 있는 와중에 보내기도 한다. 보통은 그렇게 사진을 보내고 인스타그램으로 잡담을 나눈다.
그러면 한 사람과 동시에 두 플랫폼으로 잡담을 나누는 것이다. 카톡으로는 연예인 가십을 보내면서 잡담을 떨고, 인스타그램으로는 앵무새 사진을 보내면서 수다를 떤다. 옛날엔 한번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왜 자꾸 잡담 창구를 늘리는거야, 한 곳에서 모두 이야기 하면 되잖아! 최대한 모든 것은 단순하게 정리하는게 좋다는 생각에, 나는 왜 한 사람과의 잡담을 두 곳에서 동시에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지금도 동시에 이곳저곳에서 잡담을 나눈다. 카카오톡에서 잡담을 나누다가 인스타그램에서 재밌는 혹은 이상한 혹은 쓰레기 숏폼 동영상을 보고 나에게 이거 봐라 하면서 보낸다. 그러면 또 그곳에서 잡담을 한다. 잠깐동안은 이게 정신이 산만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문득 생각해 보니 카카오톡과 인스타그램은 명확하게 다른 용도가 있었다.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을 텔레비전처럼 사용하곤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열어서 피드를 내리다 보면 사람의 성향에 맞춘 게시글을 추천해준다. 그런 게시글을 보며 사람들은 인스타그램 안에서 시간을 쓰고, 머무른다. 할 것이 없어도 거기서 시간을 쓰며 머무른다.
그러다 보면 자신이 발견한 재미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서 부가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한 것을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하려면 인스타그램 안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가장 편할테니까. 채팅을 하기 위해 인스타그램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인스타그램을 쓰다 보면 채팅을 하게 된다.
하지만 카카오톡은 어떨까. 카카오톡은 분명히 사람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카카오톡은 사람들이 서로 연락을 한다는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이지, 사람들이 카카오톡 안에서 머무르며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이 갱신한 프로필을 구경해도, 새로 나온 이모티콘을 봐도, 카카오톡은 채팅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사람들은 인스타그램 안에서 딱히 할 것이 없어도 피드를 아래로 내리면서 새로운 시각적 이미지를 구경하다가,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에게 그것을 공유하며 메세지를 보내곤 한다. 하지만 대화를 나눌 일이 없어질 때 사람들은 카카오톡을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할 이유가 있다면, 카카오톡 안에서 머무를 이유도 없다. 내부에 머무르게 할 만한 컨텐츠를 만들어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에게 카카오톡은 채팅 어플이기 때문에.
할 것이 없어도 사람들은 인스타그램 안에서 머무르며 새로운 잡담을 해 나갈 수 있지만, 카카오톡은 이용할 것이 없다면 굳이 이용할 것이 없는 공간이다. 그래서, 친구는 인스타그램 안에서 머무르며 , 카카오톡이 아닌 인스타그램으로, 가끔 나에게 썰렁한 숏품 영상을 보내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