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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성인봉은 비 오는 날이 더 많다

비구름 뚫고 성인봉 넘어가기

by 문현준

울릉도에 도착해서 본격적인 여행을 하기 시작한 둘째날, 우리는 울릉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성인봉에 가 보기로 했다. 울릉도에 있으면서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해 보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실 나는 등산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멋진 풍경에 등산이 필요하다면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옛날 부모님이 끌고가던 산은 지독히도 싫었지만, 내가 계획한 10시간짜리 트레킹은 좋았다. 좌우지간 시간이 지나서 적어도 산이 지독히도 싫던 시절은 벗어났으니 다행인 걸까.




울릉도에서 가장 높은 성인봉의 고도는 1km 정도 된다고 해서 산세가 너무 거친 것 아닐까 생각했으나 하루 안에 마치기에 충분한 일정이라는 말에 좀 더 검색을 해 보니, 다들 무리 없이 정상까지 올라갔다 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도 한번 가 보기로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저동의 버스정류장 앞에 있는 곳에서 토스트를 먹고 출발할 생각이었는데, 조금 늦잠을 자서 다들 늦게 나오니 토스트 가게에는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결국 토스트를 먹긴 애매해서 일단 토스트를 포장한 뒤 다음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는 저동에서 출발해 도동 쪽의 대원사 근처의 보건의료원 정류장에서 섰다. 성인봉에 가는 것은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 우리는 가장 무난한 길 중 하나를 선택해 보기로 했다.



저동 버스정류장의 통신기 위에 있던 제비집. 울릉도에는 제비가 많았다




보건의료원 정류장에서 성인봉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까지 가기 위해서는 아스팔트 길을 계속해서 걸어 올라가야 했다. 이 비탈길이 생각보다 경사가 되었는데 주위에 보이는 것은 오래된 건물들 뿐이고 보이는 풍경은 바뀌지 않아서 올라가는 것이 꽤 지루한 편이었던 것 같다.




아스팔트 길이 끝나갈 때쯤이 되서, 아침에 사서 챙겨 온 토스트를 나눠 먹었다. 토스트를 먹고 더 올라가니, 아스팔트 길이 끝나고 등산로 같아 보이는 산길이 나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스팔트 길이 성인봉 가는 길 중에 가장 힘든 구간이었던 것 같다.




본격적인 등산로를 향해 올라가는 길의 아스팔트 길




올라가면서 뒤돌아 내려다보니, 도동의 전망이 보였다




사실 이날은 날씨가 좋지 않았다. 날씨가 좋지 않은데 올라가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 뻔한 성인봉을 올라가는 결정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섬의 날씨란 원래 오락가락 하는 것이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안좋을 수도 있으니 일단 오늘 가 보기로 했었다.




올라가는 도중에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구름이 걷힌 도동의 먼 바다가 보였는데, 그래도 올라가다 보면 날씨가 좋아질까 기대했다. 그래도 성인봉까지 올라가면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대하며 우리는 본격적으로 등산로에 접어들었다.




구름 속에 파묻힌 것 같았던 등산로




하지만 생각보다 날씨는 좋아지지 않아서, 거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기도 애매했던 우리는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성인봉까지 올라가서, 반대편 나리분지로 내려오는 것이다. 이 계획을 얘기했을때 게스트하우스 사장이 성인봉을 넘어서 간다고요? 힘들텐데...하면서 말했던 것을 보면 보통 관광객들에게 일반적인 일정은 아닌 것 같았다.




울릉도의 봉우리들이 통째로 다 구름에 파묻힌 듯 했다. 나무와 풀들이 가득한 숲은 조금만 멀어져도 희뿌연 안개로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흐릿한 형상만이 가득한 습기찬 숲을 우리는 계속 걸어갔다. 중간에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정자도 나왔지만, 정말 신기할 정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자에서 보이는 전망은 상상해야만 했다




구름 속에 파묻힌 것 같았던 울릉도의 숲




아쉬움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가다 보니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소리에 뭔가 후두둑 거리는 소리가 들려, 나뭇잎이 흔들리나 싶었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빗소리였다. 우리는 성인봉까지 올라가다가 비구름 직전까지 도착한 것이었다.




대충 걸칠 수 있는 얇은 바람막이 같은 것은 있었지만 비가 올 것에 대한 준비는 하고 있지 않았던 우리는, 가진 스카프 같은 것들로 최대한 준비하고 계속해서 위로 올라갔다. 비바람이 휘날리는 성인봉까지의 길은 곳곳에 물웅덩이가 있을 정도였다. 체온을 잃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었기에 이곳에서는 발걸음이 조금 빨라졌던 것 같다. 다행히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성인봉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성인봉에는 예상대로, 성인봉 돌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잠깐 사진을 찍고 있겠다고 하니 엄마와 엄마 친구는 먼저 내려가고 있겠다고 하면서 성인봉 돌 뒤쪽으로 내려갔다. 거기는 아무리 봐도 길이 아닌 것 같다고 했더니, 아까 다른 사람들이 내려갔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 길은 작은 전망대로 향하는 막다른 길이었고, 결국 우리 셋은 다시 만나 나리 분지 쪽 길을 찾아 내려갔다.




비바람 속에서 걸어갔던, 성인봉까지의 길




아쉽게도 성인봉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성인봉에서 나리분지까지 내려가는 길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었지만, 계단이 매우 가팔랐다. 급경사에 가까운 산길에 계단이 빼곡히 놓여 있었고, 습한 날씨와 지나간 비구름으로 계단이 비에 젖어 있었다. 군데군데 부셔진 곳이 보이기도 했다.




만약 계단에서 발을 잘못 디뎌 미끄러지면 크게 다칠 수 있을 것 같아서, 계단 옆에 있는 줄을 붙잡고 조심히 내려갔다. 내려가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비구름을 벗어났는지, 비는 더이상 오지 않았다. 하지만 숲 사이를 가득 채운 짙은 안개는 여전해서, 숲에서 먼 거리까지 볼 수 없었다.




이끼가 뒤덮은 나무들 속에서 고요한 숲 속의 공기를 느끼며, 그렇게 아래까지 계속해서 내려갔다.




성인봉에서 출발해 나리분지까지 내려가던 길




성인봉에서 나리분지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훨씬 빨랐던 것 같다. 올라갈 때 비구름을 뚫고 지나가서 그런지 더 지쳤던 것 같지만, 거의 다 내려와서 완만한 길이 이어지자 훨씬 편해졌다. 아마 끝이 거의 다 왔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평탄한 숲 속 산길을 걸어가다 보니 등산 장비를 한껏 갖춘 사람들이 나에게 성인봉에 비가 오냐고 물어보았다. 비에 젖어서 바짓단은 진흙에 곳곳이 지저분해진걸 보니, 내가 어디서 왔는지 너무나도 명확해 보였나보다. 비가 와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대답하고 나니, 나는 우리가 걸어 내려왔던 계단이 떠올랐다. 곧 그 사람들이 걸어 올라갈 계단.




등산로에서 내려와 숲 산책길을 걸어 나리분지까지 갔다




평탄한 숲 산책로를 계속해서 걷다 보니, 갈대밭과 초가집이 있는 곳이 나오고. 짙은 구름이 낱게 지나가는 산봉우리들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계속 걸어가다 보니, 드디어 목표로 했던 반대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리분지 버스 정류장이 있는 그곳.




지칠대로 지친 우리들을 반기는 것은 바로 앞에 있는 음식점이었다. 더덕무침을 입에도 안 대던 나는, 씁쓸한 맛이 하나도 나지 않는 더덕의 맛에 감탄했다. 역시 고생하면 배가 고파지고, 배가 고파지면 음식이 맛있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다시 한번 느낀 순간이었다.




거친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먹었던, 잊을 수 없는 한 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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