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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샤인머스캣 맛을 찾아서

4년만에 혼자 떠난 일본여행

by 문현준

코로나 터지기 전 마지막으로 혼자 갔던 일본여행이 2019년이었다. 여행 제한이 풀리고 나서 일본여행을 오랜만에 갈 수 있었지만, 동생과 함께였고 혼자 하는 여행과 함께 하는 여행은 느낌이 많이 달랐다. 나중에 꼭 혼자 여행을 가겠다고 다짐하고 나서, 운이 좋게도 몇 개월 뒤 다시 혼자 일본 여행을 갈 수 있었다.




내 목표는 남쪽의 가고시마였지만, 일단은 비행기를 타고 후쿠오카에서 가서 며칠 있다가 가고시마로 이동하기로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캐리어를 끌면서 공항버스를 기다리니, 이전에는 운행하지 않던 몇몇 다시 공항버스를 운행한다는 안내문도 볼 수 있었다. 조금씩 여행 수요가 늘어나고 있구나 생각하며 버스에 올라 공항에 도착하니,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백신 관련 의무도 없어졌기에, 마음 편하게 보안검색대까지 통과해서 비행기를 타는 곳 근처의 카페에서 기다렸다. 여행 직전의 공항에서 먹는 커피와 간단한 빵은, 맛의 절반은 설레임일 것이다.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나니,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는 바다를 건너 후쿠오카에 도착했다. 공항에 가까워져 갈수록 도심으로 내려가는 비행기를 보며, 후쿠오카 공항은 도심에 정말 가까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몇 개월 전 후쿠오카에 갔었기에, 비행기에서 익숙한 전망을 볼 수 있었다. 바다 쪽으로 펼쳐져 있는 모래사장과 우미노나카미치 해변공원 같은 것들.




비행기에서 보이는 후쿠오카 근처의 모래사장




비행기는 공항에 가까워져가며 도심 위를 스쳐지난다




일전에 후쿠오카에 갔을 때 비행기가 몰리는지 비행기 안에서 몇 십분을 대기하고 나서, 길고 긴 입국심사 줄을 뱅뱅 돌아서야 입국할 수 있었다. 그때 생각이 나서 이번엔 얼마나 오래 걸릴지 생각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런데 웬걸, 입국심사 줄에 가니 생각보다 사람이 없었다. 기껏해야 손으로 입국심사 카드를 적는 사람들만 책상에 몰려있을 뿐이었다. 1시간도 넘게 걸릴 줄 알았던 입국심사는, 기껏해야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난 번 입국심사가 너무 오래 걸렸던 나머지 입국심사를 끝내고 짐 찾는 곳으로 가니 짐이 다 나와서 구석에 정리되어 있었는데, 이번엔 빨리 나와 캐리어가 나오는 시간을 기다렸다. 캐리어 안에 선물용 물품을 넣어두었던 터라 혹시 파손이 되거나 하지는 않았는지 걱정했지만, 다행히 큰 문제 없이 짐을 찾을 수 있었다. 지난번에 봤을 때도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뭔가 특유의 일본 느낌이 나는 재미있는 안내문을 떠올리며 공항을 출발해 후쿠오카 하카타 역으로 향했다.




그림판으로 한땀한땀 만든 것 같은 재미있는 안내문




4월에 후쿠오카를 간 이후 8월에 다시 찾은 후쿠오카는 매우 더웠다. 어쩌다 보니 옛날에도 일본을 혼자 갈 때는 8월에 갔던 것 같아, 너무 덥다 하면서도 어떻게 잘 참고 돌아다녔던 것을 떠올렸다. 이번 후쿠오카에서의 시간도 매우 더워서, 빨리 숙소에 짐을 맡겨 놓고 시원한 건물 안 위주로 구경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하는 여행이기에 후쿠오카 안의 인상적인 호스텔을 몇 곳 검색했는데, 그중에 한번 가 보고 싶었던 곳을 예약했다. 작은 공간에 독립된 방을 만들어 놓고 블라인드를 내려서 잠 잘 공간을 준비해 둔 호스텔이었다. 다만 원래 2박을 예약했지만 첫날 일정상 다른 도시에 가야 해서, 짐만 두고 다음날 돌아올 준비를 했다. 이런저런 사정을 이야기 하고 짐을 맡겨두고 다시 후쿠오카 시내로 나오니, 강렬한 햇볕과 열기가 느껴졌다. 그래 이게 여름의 일본이었지 하고 떠올렸다. 사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더운 것은 똑같겠지만, 묘하게 더 덥게 느껴졌다. 큰 차이가 없어도 남쪽이라서 그럴까?




첫날의 맑은 하늘, 그리고 끓어오르는 아스팔트의 후쿠오카




얼추 짐을 정리하고 내가 가장 먼저 간 곳은 근처의 대형 백화점이었다. 다른 것에는 어떠한 관심도 없는 나는 1층의 반짝반짝한 명품관을 거쳐 백화점 지하 식품매장으로 직진했다. 다양한 고급 식자재들이 몰려 있는 그곳에서 나는 애타게 찾고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샤인머스캣이었다.




오래 전 가나자와 여행을 하면서 그곳의 전통시장에서 사 먹었던 종이컵에 담긴 샤인머스캣이 너무 인상적이었던 나머지, 일본에 갈 때마다 샤인 머스캣을 먹을 수 있는지 알아봤었다. 하지만 나중에서야 8월이나 9월 즈음 일본에서 포도 제철일때만 샤인머스캣을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신 한국에서 샤인 머스캣을 열심히 사 먹었지만, 아무리 많은 샤인머스캣을 사 먹어도 일본에서 먹었던 그것과 맛이 달랐다. 그래서 8월에 일본을 가는 나는 이번에는 반드시 샤인머스캣을 사 먹고 말겠다 이를 갈고 있었다.




백화점 몇 곳을 돌다 보니 내가 알고 있는 일본의 샤인 머스캣이 보였다. 드디어 먹을 수 있겠다! 하고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 한 송이에 5만원 정도 하는 비싼 것들이 많은데, 한 송이를 통째로 사기엔 부담스러웠다. 내가 옛날 가나자와에서 먹었던 것처럼 작게 잘라 컵에 담아둔 것을 찾아다녔는데,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포도 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샤인 머스캣과 그냥 포도가 조금씩 작은 컵에 담겨 있는 제품이었다.




드디어 내가 기억하는 그 샤인 머스캣을 먹는 순간. 그런데 왜인지, 한껏 기대하고 먹은 샤인 머스캣의 맛은 내가 예전에 기억하던 그 맛과 달랐다. 청포도 사탕같이 강렬하게 풍겨 오는 청포도 풍미와, 먹다 보면 약하게 찢어져 입 속에서 사라지는 껍질. 그런 맛을 기대한 나는, 세 알을 연거푸 먹어보고 나서 생각했다. 이거 한국에서 먹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데?




더 비싼 포도를 사 먹어봐야 하는 걸까. 한 송이에 5만원을 넘는 비싼 것을 사 먹어 봐야 할까? 하지만 나는 그 정도까지는 돈을 쓸 생각이 없었다. 그 돈으로 고기를 사 먹는다면 모르겠지만, 포도에 5만원이 넘는 돈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차라리 돈을 더 내고 아주 비싼 포도를 사 먹어 보면 어땠을까 싶다. 그랬다면, 옛날 맛봤지만 잊어버렸던 기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안 먹은 것이 후회되는, 일본의 비싼 샤인 머스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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