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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Jan 07. 2024

홈쇼핑 보는 남자

차라리 홈쇼핑은 솔직하니까

나는 집에서 티비를 거의 보지 않는다. 내가 티비를 볼 때는 오직 음식을 먹을 때 뿐이다. 명확하게 목적을 가지고 정보를 찾기 위해 영상을 볼 때가 아니라, 그저 음식을 먹으면서 뭐든 상관없이 볼 것을 찾을 때 티비를 보는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철 지난 때리고 부수고 쏘는 영화들이다. 이미 몇 번 씩이나 봤지만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보기 좋은 것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을 하진 않기 때문에 보통 채널을 이것저것 돌리면서 어떤 것이 오늘의 음식에 맞는지 찾아본다. 그렇게, 동네 식자재 마트에서 사 온 닭갈비와 꽈리고추를 볶아 놓고 위스키를 살짝 탄 하이볼을 먹기 전 틀어 둘 채널을 고른다.




사실 그렇게 채널을 열심히 뒤지다 보면 나는 결국 정해진 곳으로 간다. 홈쇼핑 채널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관심이 있는 음식이나 패키지 여행 종류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나 내가 관심 있는 패키지 여행이라면 금상첨화다.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이 패키지 여행이 얼마나 저렴한지 같은 요소들이 곳곳에 펼쳐져 있는 홈쇼핑 방송들. 홈쇼핑 진행자들의 얼굴이 이모티콘처럼 곳곳에 끼워져 있는 오두방정 가득한 영상들을 영상들을 보다 보면 아 이 사람들은 이 물건을 이렇게 팔려고 하는구나, 같은 것을 보고 새롭게 배울 때도 있다. 비록 카메라를 보면서 열심히 호객행위를 하는 것 같은 모습은 내가 호객행위가 극심한 시장 한가운데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말이다.




맨 처음엔 물건을 파는 광고를 보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케이블 방송에 있는 홈쇼핑 채널은 모두 숨김 처리를 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던 내가 지금은 딱히 볼 것 없으면 홈쇼핑 채널부터 돌리면서 무슨 홍보 방송을 보고 있나 궁금해 한다니, 생각도 시간도 많이 바뀐 것이 실감난다.




어쩌면 내가 홈쇼핑 방송이 차라리 재밌다고 느끼게 된 것은 최근 들어서부터 인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뉴스를 봐도, 드라마를 봐도, 시사고발프로를 봐도, 예능을 봐도, 왜 이 사람들이 이런 것을 만들었을까 생각하다 보면 뒷맛이 안좋아졌다. 사람들이 모르는 이야기를 전한답시고 연예인들이 나와서 감정 리액션을 보여주는, 보다 보면 둘중에 하나를 욕하게 되는 예능 프로나 괜히 집에서 멀쩡히 잠자고 있는 사람을 악몽에 떨게 하는 범죄 기록을 한껏 부채질 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방송으로 만드는 프로들. 신성불가침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볍게 다룰 것도 아니고, 특정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꾸며져서는 더더욱 안될 일들로 만들어진 방송들.



 

그런 방송들이 겉으로 내보이는 것과 다르게 속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경쓰지 않는 것들과 비교해 본다면, 차라리 홈쇼핑 방송의 호객행위는 차라리 솔직하고 순수한 것임이 분명하다.




사람들을 싸우게 만들고, 감정적으로 흔드는, 기획의도와 영업의도가 다른 그런 프로들의 패악에 비교하면 홈쇼핑의 간단명료한 영업은 차라리 얼마나 진솔하고 솔직한가. 그래서, 아무런 생각도 할 필요가 없어서, 나는 홈쇼핑 프로를 틀어두는 모양이다. 마치 고급 음식점에서 나오는 클래식 연주곡처럼 말이다.




홈쇼핑의 호객행위는 티비의 다른 프로에 비하면 솔직한 것일지 모른다. 2023 07, 서울 을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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