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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Jan 17. 2024

가장 저렴한 가짜 경험

SNS로 세계를 탐방하는 이유

최근 들어 대학원을 졸업한 친구가 집에서 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보통 나는 그 친구가 얼마나 잘 쉬고 있는가를 볼 때 나에게 SNS 로 숏폼 영상을 얼마나 많이 보내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숏폼 영상을 많이 보내면 그만큼 집에서 SNS 로 그 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뜻이니, 잘 쉬고 있는 것 같아서이다. 보통 그 친구가 SNS 보내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걸 유명 티비 프로그램 이름을 빗대어 걸어서 릴스 속으로 아니면 릴스로 세계 속으로 라고 부르던가, 릴스로 세계 여행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런데 최근 친구가 프랑스 파리의 릴스를 보낸 적이 있었다. 릴스 내용은 사람들의 환상 속 파리와 실제 파리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가령 사람들이 생각하는 파리는 멋진 노을 아래 에펠탑 앞의 공원에서 사람들이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것인지만 실제의 파리는 그 공원에서 거대한 쥐들이 뛰어다닌다 같은 내용이었다. 그 릴스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아 비록 오래 전이긴 한데 이정도는 아니다, 지하철에서 힘들지 않게 생쥐 구경을 할 순 있지만 내가 공원에서 본 건 쥐보다는 소매치기와 물담배 피는 사람들, 경찰 오면 사라지는 잡상인들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도 요새 들어서는 아무 생각 없이 조금 쉬고 싶을 때 SNS 에 올라오는 정보들을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문득 친구가 보는 그 릴스와 내가 보는 다른 정보들을 비교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짧은 영상 형태의 정보를 편하게 접하는 편은 아니더라도,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정보들을 전달해 주는 SNS를 자주 보는 것은 사실이었다. 음식에 대한 것도, 사람에 대한 것도, 장소에 대한 것들도. 짧은 시간, 그보다 더 짧은 시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단편적인 정보들로 이루어진 SNS 가 내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 단편적인 정보들을 통해 나는 약간의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그건 만든 사람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나에게는 경험이 되었다. 어떤 사람이 일본을 가서 그저 멋지다고 생각한 순간을 찍어 놓은 것이 나에게는 경험이 되었다. 아니면 내 경험을 의도할 목적으로 만든, 일본 가서 하면 안 되는 것 10가지 라는 주제로 만든 영상도 나에게는 경험이 되었다. 여태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SNS 의 수많은 컨텐츠들이 경험으로 인식되는 순간이었다.




경험은 보통 돈이 든다. 어떤 사람이 예쁘게 찍은 일본을 보건, 어떤 사람이 내 경험을 의도하고 찍은 일본을 보건, 내가 직접 두 눈으로 일본을 보는 것보다는 저렴할 것이다. 그 경험을 직접 하기 위해 일본에 간다 해도 내가 그 경험을 한다는 보장도 없다. 내가 그렇게 SNS 를 통해 경험한 무언가는, 실제로 그것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서는 훨씬 비싼 가치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에 비하면 아주 저렴한 금액을 내고 나는 그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경험이 과연 진짜 내 경험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 경험의 진실성과는 별개로, 나는 그 경험의 겉핥기를 일부 체험하는 것이지 진짜 내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간 일본을 구경하고, 다른 사람이 판단하는 일본을 구경하는 것이지, 내가 일본을 간 것이 아니다. 비록 그 가짜 경험조차도 내 경험일 수는 있겠지만, 나는 그 가짜 경험을 아주 저렴한 가격과 시간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SNS 를 통해 가짜 경험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SNS 에 올라오던 수많은 숏폼 동영상과 정보들이 다르게 보였다. 직접 갈 수 없고 갈 일도 없을 것 같은 곳들을, 단순히 시간을 소모해서 재미로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험하기 위해서 보는 사람들. 비싼 음식점이나 지구 반대편의 여행지, 고가의 전자도구를 사용하는 것 이상의 경험들. 알지 못하던 사람을 만나고, 가족을 이루는 등의 잘 모르는 인간관계에 대한 경험까지 이야기하는 SNS 의 컨텐츠들. 직접 경험하는 것보다는 훨씬 저렴한 자원을 이용할 수 있지만 직접 경험하는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누군가의 경험.




SNS 의 수많은 컨텐츠를 훑어보는 사람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긴장의 이완이 아니라, 가장 저렴한 가짜 경험을 얻고자 하는 것 아닐까 싶었다.



사람들이 SNS 로 얻으려는 것이, 잠깐의 휴식이 아니라 가장 저렴한 가짜 경험 아닐까 싶었다. 2023 08, 서울 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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