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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Feb 05. 2024

어두운 뒷골목의 이자카야

사장은 나에게 안 무섭냐고 물었다

가고시마에서의 마지막 날 저녁이었다. 가고시마 번화가에는 재미있어 보이는 음식점이 많이 있었지만, 골목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온갖 유흥업소가 음식점과 뒤섞여 있고 유흥업소와 음식점 직원들이 동시에 나와 호객행위를 하는 곳이었다. 이런 곳도 있구나 싶지만 나는 이상하게 그 분위기가 편치 않아서 그곳에서 음식을 먹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 근처를 계속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음식점을 찾지 못했었다.




다른 곳 어디에서, 가고시마를 떠나기 전날 마지막 저녁을 내가 생각하는 로컬 음식점에서 먹고 싶다는 생각에 장소를 열심히 찾아 보려 했다. 그런데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 가고시마 시청 근처에도 음식점들이 몰려 있는 곳들이 있었는데 이곳은 사람들이 많지 않고 분위기가 가고시마 번화가와 다를 것 같아, 한번 가 보면 좋겠다 싶었다. 다른 장소를 가느라 근처를 돌아다녔을 때도 한적한 분위기에 조용한, 다시 말해 유흥업소 거의 없어 보이는 느낌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마지막 날 식사는 그곳의 음식점을 찾아서 들어가 보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숙소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있던, 가고시마 시청 근처의 어두컴컴한 골목길




구글 지도에 있던, 좁은 골목길에 음식점이 몰려 있던 거리는 생각보다 좁고 더 어두컴컴했다. 좁은 골목길 안에 양 쪽으로 종종 음식점이 늘어서 있고, 군데군데 서 있는 가로등이 골목길 안을 스산하게 비췄다.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종종 음식점 안밖을 오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골목길을 쭉 걸어가며 괜찮아 보이는 음식점을 찾아다녔는데, 항상 신경써서 봐야 하는 것이 있었다. 음식점 대부분이 실내 흡연 가능하니, 안쪽이 보이는 경우 안에서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지를 봐야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안쪽이 보이는 음식점도 별로 없고, 늦은 시간에 간 것인지 대부분 장사를 마무리 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골목의 마지막에서 음식점 한 곳을 찾았다. 지도에서 봐서 위치를 알고 있던 곳이었는데, 어디가 출입문인지 알 수 없는 곳을 잘 찾으니 입구가 있었다. 혹시 이곳도 문 닫기 직전은 아닌가 싶었는데, 들어가서 한 명 괜찮냐고 물어보니 괜찮다고 해서 앉을 수 있었다.




어두컴컴한 골목길 끝에 음식점이 있었다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 찾기 힘들었던 입구




음식점은 넓지 않았지만 좁은 공간이 빈틈없이 꾸며져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주방이 보이는 바 테이블 자리에 앉았다. 바로 앞쪽에는 술병이 있고, 오른쪽에는 티비가 있었다. 왼쪽에는 현지 사람인 듯한 사람 둘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티비에서는 일기예보가 흘러나오는데, 남쪽의 태풍이 갑자기 서쪽으로 방향을 꺾어 가고시마 쪽으로 올라오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여행지로 시시각각 다가오는 태풍 일기예보를 본다니, 어쩔 수 없는 아쉬운 마음.



일본어를 잘 못하지만 귀동냥으로 들은 것과, 어플의 번역기를 이용해서 어찌어찌 가게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번역기를 바로 보여주기보다는 어떻게든 읽어가며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말 하고 싶은 것을 번역기로 돌려서 그것을 읽어가며 대화를 했다. 사장은 이 골목길 어두컴컴한데 오는 것이 무섭지 않냐고 물었고, 나는 텐몬칸(가고시마의 번화가) 쪽은 분위기가 조금 무서워서 나와는 안 맞는다고 이야기 했다. 그 말을 들은 다른 손님이 자기가 한국을 가 봤는데 무슨 말인지 알것 같다고, 한국과는 분위기가 좀 다르지 하고 말했다.




메뉴로 뭘 먹을까 하다가, 추천하는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하이볼 한 잔을 먹으면서 기다리니, 파스타 느낌이 나는 덮밥이 나왔다. 밥 위에 토마토 소스와 계란 후라이, 베이컨이 올라간 음식이었다. 이날 제대로 먹은 음식이 없어서, 따뜻하고 양 많은 한 끼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가고시마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일본에 다른 곳은 어디를 가 보았는지. 야쿠시마에 가 보고 싶었는데 못갔다, 가이몬 산도 가 보고 싶었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 갈 수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




티비 아래에 술병이 늘어서 있던 분위기가 좋았다




태풍이 북상한다는 일기 예보가 나오던 텔레비전



하이볼 한 잔을 먹으며 음식을 기다렸다




초점이 나간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던 저녁 음식 사진




이번 여행에서는 일본 사람들과 사적인 이야기를 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이날 저녁 가게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한국에서 유명한 일본 음식이나 문화가 무엇이 있는지 물어봐서, 요새 한국에서 많이 생기고 있는 일본 음식점 사진을 보여주었다. 일본 문화를 그대로 살린 것 같은 인테리어인데, 강남의 유명 번화가 이름을 딴 음식점이 재미있어서 기억해 뒀다가 사진을 보여주니 재미있어했다. 사장도 요새 일본 티비를 틀면 한국 음악이 엄청 많이 나온다면서 이야기했다.




한국에서는 스시 오마카세도 유명한데 이게 일본에서도 있는 문화인지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원래 다른 나라 문화가 전파되서는 현지 입맛에 맞게 바뀌는 경우도 있으니 일본에서는 어떤 문화인지 궁금했었다. 무엇보다 진짜로 일본에서도 오마카세 라고 부르는지 궁금했었다. 그런데 물어보니 진짜로 일본에서 오마카세 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지금 여기 이런 음식점은 아니고 정말 비싼 고급 음식점이다 라고 이야기해줘서, 나에게는 지금 이 음식점도 아주 좋은 오마카세 라고 말했다. 한국에는 이모카세나 아재카세도 인기가 좋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으면 좋았을텐데.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가고시마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추천 받아 한잔 더 하고 싶어서, 가고시마 돼지고기로 만든 소세지 구이와 매실주 한 잔을 마셨다. 가고시마의 분위기도 좋고 갈 수 없었던 곳도 많아, 나중에 꼭 다시 오고 싶다고 이야기 했다. 사장이 말하길 가고시마 사람들은 도쿄 같은 대도시 사람들 같이 세련된 멋은 없어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라고, 술도 잘 마신다고 했다. 가게에 장식해 둔 술병이 다 자기가 손님들과 마신것이라나.




하루에 음식점을 한 곳씩 가봐도, 일 주일 있어도 일곱 곳 밖에 가 볼 수 없으니 음식점을 많이 가 볼 수는 없었다. 많이 가 볼 수 없었기에, 간 모든 곳들이 특별했다 해도, 가고시마의 마지막 날 갔던 음식점에서의 분위기는 정말 내 취향에 딱 맞았다. 한 명은 한국어를 잘 못하고 한 명은 일본어를 잘 못하는데도, 번역기와 귀동냥으로 열심히 대화하던 그 분위기가 좋았다. 어느날 다시 가고시마에 간다면, 다시 가 보고 싶은 곳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사장의 추천을 받아 마셨던 가고시마 돼지고기 소세지와 매실주




가게를 떠나기 전 찍어두었던,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의 내부 사진




가고시마에서의 마지막 날 밤 찍었던, 번화가의 밤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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