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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Feb 12. 2024

작은 미니 메추리

SNS로 소식 듣던 새의 마지막

옛날 사람들이 바보상자라고 텔레비전을 이야기 했다면 요즘 사람들은 바보상자로 인스타그램을 이용하고 있지 않을까. 자기 취향대로 맞춰지는 수많은 짧은 동영상 혹은 이미지들은 아무 생각 없이 넘겨보기 딱 좋아서, 나도 종종 보곤 했다. 그런 인스타그램에서 어느날부터 계속해서 알고리즘에 뜨던 것이 있었다. 누군가가 키우는 작은 미니 메추리였다. 회색과 백색이 섞인 깃털의 작은 미니 메추라기.




사실 인스타그램에서 그 미니 메추리를 보기 전에도, 인터넷에서 도는 게시물로 그 메추라기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누군가가 자기가 키우는 미니 메추라기 보고 가라면서 사진을 올린 것이다. 그때는 그걸 보면서 누군가는 이런 작은 새를 키우는구나 하고 넘어갔는데, 인스타그램에서 그 새의 영상과 사진을 보게 된 것이었다. 아마 누군가가 인스타그램으로 사진과 영상을 올리라고 추천해 준 모양이었다.




인스타그램은 어떤 게시물에 관심을 가지면 그 게시물을 직접적으로 팔로우 하거나 하지 않아도 관련된 게시물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맨 처음에 그 미니 메추라기 사진을 보고 나서 내 인스타그램 목록에는 종종 그 미니 메추라기 사진이 나왔다. 밥을 먹거나 사람 몸에 폴짝 뛰어 올라가거나, 서 있는 사람 발 주위를 뱅뱅 돌면서 반가움을 표시하거나 하는 그런 것들. 원래 새에 관심이 많은 나는 종종 인스타그램에 뜨는 그 새의 영상을 재미있게 보았다.




그런데 인스타그램의 게시글은 시간 순서대로 올려 주거나 아니면 최신 것만 올려주는 것이 아니라서, 한 달이나 두 달 전 게시글이 올라올 때도 있었다. 순서대로 올라오는 게시글을 보다 보면 당연히 이게 시간 순서대로 올라온 거라고 생각해서, 나는 그 새가 그냥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잘 지내고 있나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새가 꽃과 누워 있는 사진이 올라오는 것이었다. 적잖이 당황한 나는 그 게시글을 보고 나서, 미니 메추리가 2023년의 마지막 즈음에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것을 2024년 2월에 알게 되었는데, 그 전까지 계속해서 보고 재미있어하던 미니 메추리의 영상과 사진이 사실은 옛날에 찍었다는 것을 알고 약간 놀랐다. 내가 보면서 귀엽다고 생각했던 미니 메추리는 이미 죽어 있었고, 나는 그 사진과 영상을 보면서 신기해 하고 있었다니 기분이 묘했다.




보면 기분이 안 좋아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미니 메추리의 마지막이 어떠했는지 궁금해서 그 계정에 올라와 있는 다른 게시글을 보게 되었었다. 원래 메추리 영상과 사진을 더이상 올릴 수 없게 되면서 계정을 삭제할까 생각했지만 옛날의 추억을 기념한다는 생각으로 사진과 영상을 계속해서 올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계정에 올라와 있는 글을 보니 나도 옛날에 키우던 모란앵무가 죽었던 것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키우던 모란앵무가 죽고 나서 모란앵무를 기억할 수 있는 새장과 모이 같은 것들은 모두 정리해서 치워 버렸었다. 남은 것은 아주 옛날에 찍었던 사진들과 동네 놀이터의 작은 땅 어딘가에 모란앵무를 묻어 주었다는 기억 뿐이었다. 그런데 빨리 모란앵무를 잊어 버리고 싶어서 새장 같은 것은 모두 정리 해버렸는데도, 빨리 잊어버리면 좋겠다는 내 생각과 다르게 모란앵무는 계속해서 기억났다. 그래서인지 지난번에 앵무새 카페를 가서 새들을 보다가 모란앵무가 없어서 혹시 모란앵무도 볼 수 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메추리를 키우던 사람이 적어둔 글을 보니 내가 옛날에 키우던 모란앵무와 모란앵무가 떠나갔을 때가 떠올랐다. 미니 메추리는 나에게 그것을 떠올리게 했다.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미니 메추라기가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던 그때의 사진과 영상들. 그것은 마치 지구를 계속해서 돌고 도는 물처럼 인스타그램 안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면서, 그 메추리를 좋아하던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기억을 남기면서. 메추리와 상관없는 기억들까지도 떠오르게 하면서.    



세상을 떠난 지 몰랐던 메추리의 사진과 영상은, 돌고 돌아 내 옛날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2023 11, 서울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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