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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Feb 21. 2024

주방이 있는 호스텔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의 즐거움

가고시마에서 오래 머물다가 여행을 마무리 하려 했지만, 태풍이 북상하는 탓에 뜻하지 않게 후쿠오카에서 며칠 지내야 했다. 후쿠오카에서 지낼 숙소를 고르던 중 마음에 드는 호스텔을 발견해서 예약했는데,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깔끔한 주방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요리 도구가 준비되어 있고 그 공간에 주방도 있어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 호스텔에 도착하자 마자 공간부터 둘러보았는데, 내가 기대했던 그런 공간이 있고 그런 공간이 있는 호스텔을 정말 오랜만에 와서 만족스러웠다. 주방을 슥 둘러보고 생각했다. 여기서 꼭 뭔가를 해 먹어야겠다.




가고시마의 숙소에서 뭔가 해 먹는다면 좋았겠지만, 가고시마 숙소는 호스텔이 아니라 간단한 호텔에 캡슐이 구비된 느낌이라 주방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전자레인지가 있어서 음식을 데워먹고 정리할 수는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다. 과일 하나 깎아 먹는 것도 할 수 없었지만, 이용 가능한 주방 설비가 호텔에 있는 것은 흔하지 않았기에 나중에 또 좋은 기회가 온다면 해 봐야지 하고 넘어갔었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후쿠오카의 호스텔에, 그것도 주방이 잘 준비되어 있는 호스텔에 오게 되면서 나는 직접 무언가를 해 먹어 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사실 직접 요리를 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것이 많지는 않았다. 복잡한 요리일수록 손질도 많고 준비해야 하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좋은 고기를 사다가 스테이크를 해 먹어 보기로 했다. 좋은 고기만 사고, 보통 주방에 비치되어 있는 식용유 조금만 있어도 되는데다가, 소금과 후추만 있어도 충분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 중에 하나가 스테이크니까!




일전에 동생과 후쿠오카에 와서 좋은 과일을 찾느라 백화점을 돌아다녔던 것을 기억하며, 괜찮은 고기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식재료 구경을 했다. 한국에서도 백화점에서 좋은 스테이크용 고기를 사면 그람 당 가격이 꽤 올라가는데, 여기나 저기나 비슷하구나 싶었다. 좋은 고기와, 내가 원하는 정도의 두께로 준비되어 있는 곳을 몇 곳 돌아봤다가 한 곳으로 결정했다. 동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산다면 더 좋았겠지만, 내가 정육점 아저씨와 일본어로 편하게 대화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외국에서 요리를 한다는 것이 항상 저렴한 것은 아니지만, 원래 집에서 요리 하는 사람들은 사 먹으면 2만원인 요리를 굳이 3만원 들여서 만들어 먹으면서, 다음번에는 4만원을 들여 볼까 고민하는 사람들 아닐까. 현지에서 현지 재료를 써서 요리하는 것이 특별한 경험이기에, 가격은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스테이크를 할 것이기에 혹시 몰라 소금과 후추를 샀는데, 잠깐 고민하다가 허브솔트로 구매했다. 거기에다가 뒷정리에 필요할 테니 키친타올도 하나 샀다. 언제 또 와 보겠나 싶어서, 맛이 궁금하기도 해서, 복숭아도 사 보았다. 하나에 2만원 정도 하는 복숭아. 비싼 복숭아를 사서일까, 직원이 복숭아를 포장하기 전에 완충재까지 벗겨서 확인하며 무른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놀라웠다.  




의도치 않은 후쿠오카에서의 숙박기간에 선택한 호스텔. 입구에는 큰 고양이 조형물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던, 호스텔의 주방




고기를 사러 돌아다니는 동안 봤던 후쿠오카 텐진의 거리




저녁노을로 덮이는 구름이 멋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보니 주방에 아무도 없었다.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하게 고기를 구울 수 있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정리를 하며 고기를 구울 준비를 했다. 일단 준비한 고기의 겉을 키친타올을 이용해 습기를 최대한 제거하고, 허브솔트를 겉에 충분히 뿌린다. 인덕션에 후라이팬을 올리고 기름을 뿌린 뒤, 최대한 인덕션을 달구고 나서 고기를 올렸다. 고기가 기름에 튀겨지는 것 아닌가 싶은 소리가 나면 정상이다. 




그런데 고기에서 이상하게 연기가 많이 났다.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았는데, 뒤집을 떄가 되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가 사서 고기에 묻힌 허브솔트의 입자가 조금 큰 편이라, 고기가 기름에 딱 붙어서 구워지지 않고 있었다. 고기는 조금 기름에 닿을락 말락 하는 상태로 익었는지 회색빛이었고, 허브솔트에 포함되어 있는 허브가 뜨거운 온도에 타서 검게 변해 있었다. 비싼 고기를 사다가 이게 무슨 짓인가,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하지만 판단은 빨리 해야 한다. 빨리 고기를 후라이팬에서 건져서, 칼로 허브솔트를 긁어낸다. 얼추 겉면이 정리된 고기를 다시 후라이팬에 올려 구웠다. 




비록 중간에 몇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고기를 잘 구워서 한 김 식히며 뒷정리를 한다. 고기를 굽고 남은 기름에 아스파라거스를 굽고 숙주까지 볶은 다음, 후라이팬을 닦은 뒤 키친타올로 물기제거를 해서 제자리에 넣어둔다. 뒷정리를 하면서 고기 자를 준비까지 마치고 나면, 잘 구워진 고기를 자른다. 온도계도 없이 눈대중으로 구웠기에 혹시 너무 많이 구워지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잘 완성되었다.




불을 더 강하게 쓸 수 있다면 숙주에서 물기가 없을 정도로 아삭하게 볶을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삶은 숙주가 되고 만다. 그래도 적절하게 간이 된 숙주와 아스파라거스는 고기와 함께 먹기에 딱 좋은 반찬이다. 높은 등급의 고기일수록 고기 속 지방이 한가득 들어있는 소고기는, 실수로 너무 많이 구워도 고기 속 지방이 풍미와 부드러움을 보장해 준다. 한 입을 먹어 보니 딱 떠오르는 생각. 익히 알고 있던 비싼 고기의 맛.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행지에서의 요리로 준비한 한 끼. 




그리고, 사실은 하루 일찍 일본을 떠나 한국으로 가기로 결정하면서, 숙소에서 협조해 줘서 환불 받은 숙박료로 산 복숭아. 한 개는 내가 먹고, 한 개는 숙소 직원에게 주면서 이거 내 한끼 밥값보다 비싸더라, 맛있게 먹어! 하면서 말했던 복숭아. 부드러운 조직과 싱그러운 단맛이, 내가 아는 복숭아의 풍미가 응축된 것 같아 만족스럽다. 




정말 오랜만에 먹는, 여행지에서 직접 준비한 한 끼. 아주 만족스러웠다.




한국에서 사기에도 저렴한 가격은 아닌, 일본의 고급 소고기




중간에 이런저런 실수가 있었지만, 그래도 만족스럽게 구워져서 준비했다




살면서 처음 먹어봤던, 비싼 복숭아로 마무리 한 그날의 저녁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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