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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Feb 21. 2024

나는 거기 보고 오줌도 안 싸

좋은 기억도 떠올리고 싶지 않을 수 있다

종종 대학생 시절 친구들을 만난다. 그 중에 한 명과 최근 서울에서 보기로 했다. 경기도에서 사는 그 친구는 누군가가 한 말대로 사당 위쪽까지 올라오는 것이 매우 번거롭기에, 보통은 사당 쪽에서 만나는 편이다. 동네에 유명한 버거 프랜차이즈가 없어서 다른 걸 먹어 보고 싶다고 하던 친구와 함께 치킨버거를 먹었는데, 닭껍질 튀김을 처음 사 먹어 보았다. 친구는 몇 번 먹어 봤지만 나는 처음 먹어 보았는데, 뜨거울 때 먹으니 아주 맛있었지만 식고 나니 바로 닭기름 냄새가 올라오는 것이 뜨거울 때 맥주 안주로 먹으면 제격이겠구나 싶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최근엔 뭐 하고 지내는지, 다른 친구들은 뭐 하고 있는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다음 가게는 내가 가 보고 싶다고 했던 오뎅 가게였는데, 요새 유명한 일본식 오뎅 가게가 아닌 조금 다른 스타일의 가게였다. 작은 가게 내부에 사람들이 빽빽하게 앉아 있고 가운데에 있는 큰 사각 공간에 오뎅 꼬치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친구는 술을 별로 안 좋아해서 음료를 마시고, 나는 그 가게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사케를 한번 마셔 보았다. 사실 사케에 불을 붙여 준다는 것이 신기해서 주문해 보았지만, 갑자기 따뜻해 진 날씨에 나도 술을 많이 마실 수 없어 사케는 맛만 보고 말았다. 적당히 오뎅 꼬치를 한번씩 먹어 보고 나서 밖으로 나와, 근처를 좀 걸어다니며 구경했다. 




대학교 친구다 보니 대학교 이야기도 좀 나왔다. 나는 대학교 때 알던 친구들을 이제 많이 알지 못하지만, 친구는 그 중에 많은 사람들과 계속해서 연락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대학교 근처에 어떤 음식점이 생겼다더라, 뭐가 있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나가다가 카페를 보고 어 이거 거기에 있던 뭐 닮았는데, 그 근처에 뭐 생겼는데 알고 있냐, 그 프랜차이즈가 학교 근처에 들어온다고? 같은 식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친구가 대학교가 있던 도시를 가 보았냐고 하길래, 나는 문득 아 저는 거기 보고 오줌도 안 쌉니다 이랬다. 그러자 친구가 그 말을 듣더니 웃으면서, 그렇게 대학의 기억이 좋지 않냐고 물었다. 대학교의 기억이 좋지 않은 것은 아닌데, 뭐라고 해야 하나...라고 하면서 별다르게 할 말을 찾지 못하던 나는 급하게 말을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냥 생각해 보면 그 도시에는 별로 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그런데 그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나는 내가 그 표현을 사용한 것이 꽤 재미있다고 느꼈다. 나는 보통 과격한 표현을 좋아하지 않아서, 어떻게 해서든 부드러운 표현을 사용하려 한다. 그런데 거기 보고 오줌도 안 싼다 라는, 나에게는 꽤 과격한 표현을 사용한 것에 나 자신도 놀랐다. 내가 그렇게 표현하는 곳은 한 곳 밖에 없었는데, 거기는 정말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곳이었고, 대학교를 다니던 도시는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나에게 대학 생활은 부정적인 기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은 장소라고 해도 그곳에 가고 싶다는 것은 아니었다.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모든 것이 불안한 나에게, 즐거운 기억만 남아서 탈색된 대학 생활은 마치 좋기만 한 과거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대학 생활을 하던 그 도시와 대학교를 구경하게 되면, 만족스럽지 못한 지금 내 현실이 떠오를 것 같았다. 이때는 참 좋았고 즐거웠었는데, 하고 옛날을 떠올리다 보면 지금 내 현실이 엉망진창이라는 생각이 더 강해질 것 같아서. 




가끔씩 좋았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걸 꺼내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인 것 같아서, 내가 그때 친구에게 했던 이야기는 그런 것 아닐까 싶었다. 나는 옛날의 좋은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고, 그 좋은 기억은 이미 지나가 버렸고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현실이 더 고통스러워 질 것 같다고.  




나쁜 기억뿐 아니라 좋은 기억도, 떠올리고 싶지 않을 수 있다. 2024 12, 서울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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