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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Feb 27. 2024

가지 좋아하게 된 사람

입맛은 그대로여도, 요리법은 변한다

나는 가지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다. 가지에 대한 첫 기억은 어릴 적 부모님이 준비해 주신 냉장고의 가지반찬 이었던 것 같다. 양념에 볶은 가지가 흐물텅하게 변해서 냉장고 유리 락앤락에서 차가울 대로 차가워진 그 느낌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학교 급식으로 나오는 가지 볶음도 큰 차이가 없어서, 온도가 따뜻하냐 차갑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흐물흐물하게 양념이 된 나물이라는 것은 똑같았다. 그렇게 시작된 가지 요리의 악명으로 다른 것을 시도할 생각조차 안하게 된 사람이 오직 나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인터넷에 비슷한 이야기가 많이 있었으니까.




그런 가지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양꼬치 가게에서였다. 사실 가지의 존재 이유는 보라색 야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오직 그것 뿐만이 아닐까 생각하던 그 때, 문득 갔던 양꼬치 가게에서 가지튀김을 먹어보게 되었다. 냉장고 반찬통에서 차갑게 나오던 그 가지 나물을 생각하던 나는 그걸 튀겨 먹는다고 뭐가 달라지나 생각하다가도,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는데 가지도 튀기면 맛있어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가지튀김을 먹어보았다. 그런데 얇게 갈라지는 튀김옷 아래로 느껴진 가지는 흐물흐물이 아닌 부들부들이었다. 그 속살이 으깨지는 것이 정말 맛있었다. 이게 가지라고? 그럼 내가 여태 먹었던 가지는 뭐야?




살다 보면 별로 관심도 없고 먹을 생각도 없는 식재료가 있는 것처럼, 나도 가지를 더이상 먹을 일이 없고 관심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가지튀김을 계기로 가지에 관심이 조금 생겼다. 서양에서는 가지로 이런저런 요리들을 해 먹었는데 라자냐에 파스타 대신 넣어 먹기도 하고, 고기와 같이 구워 먹기도 했다. 특히 가지를 통으로 갈라서 고기와 함께 굽는 사이드로 먹는 것이 좋아 보였는데, 접시에 올렸을 때 보라색 색감도 좋고 고기를 먹으면서 야채도 같이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난번에 집에서 스테이크를 해 먹으면서 한번 가지를 사 보았다. 고기를 굽고 나서 그 기름에 반으로 가른 가지를 구워 올리니, 접시에 올렸을 때 고기과 색감도 어울렸다. 고기 구운 기름으로 간이 된 가지는 부들부들하게 익은 데다가, 옛날엔 맛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 가지 풋내가 신선한 야채 풍미로 느껴졌다. 그때 먹으면서 생각했다. 아, 가지는 이렇게 먹는거구나.




하지만 보통 고기를 구워 먹을 때 가지를 먹게 되니 또 오랫동안 가지를 안 먹다가, 최근 들어 또 생각이 나서 가지를 사서 고기와 함께 먹으려고 준비했다. 그런데 후라이팬에 가지를 구우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가지를 오븐에 구워서 마지막에 후라이팬에 지지기만 해도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가지를 적당히 잘라서 올리브오일과 소금 후추를 뿌린 뒤 오븐에 구우니, 가지가 납작해졌다. 이거 씹어먹을 것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납작해졌지만, 고기와 먹으면 좋겠다 싶어 고기를 굽고 나서 후라이팬에 한번 지져서 마무리 해 보았다.




그렇게 구운 가지는 정말 맛있었다. 부드러운 식감이 있으면서도, 오븐에서 구워지면서 겉이 살짝 말라서 바삭하게 구운 감자 겉처럼 바스락거리는 식감도 있었다. 부드럽게 밀리는 가지의 과육은 매시 포테이토 같기도 했지만, 야채의 풋내가 나는 것이 독특했다. 먹으면서 나중에 다시 한번 꼭 해 먹어봐야겠다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가지 나물은 맛이 없다. 차갑게 반찬으로 먹어서 그런가, 밥과 반찬을 먹을 일이 거의 없어서 그런가. 가지 나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것 보면 내 입맛은 그대로 인 것 같지만, 이런저런 요리법을 배우면서 새로운 맛을 알게 되는 모양이다.




시간이 지나는 것은 항상 배우는 것들 투성이이다. 가지를 먹는 법 같은 것처럼.  



좋아하지 않던 식재료를 요리하는 법도, 살면서 배워야 하는 것들 중 하나이다. 2023 12, 서울 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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