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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Feb 28. 2024

태풍이 와도 비행기는 뜬다

악천후 속에서 비행기 타고 귀국하기

정말 오랜만에 혼자 떠난 일본 여행이었지만 일정의 변경이 많았다.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모르는 긴 일정에, 가고시마와 야쿠시마까지 구경하려 했으나 일정이 충분치 않아서 가고시마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런데 태풍이 가고시마로 올라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고시마에서 일정을 일찍 마무리 하고 후쿠오카로 돌아왔다.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원래 귀국하기로 했던 날보다 하루 일찍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악천후로 인해 비행기가 뜨지 못한다면 변경할 수 있지만, 나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여 비행기를 취소하고 변경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취소 금액을 내고 비행기를 또 끊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머물고 있던 숙소에서 취소에 동의해 줬다는 것이었다. 후쿠오카에서 급하게 예약한 호스텔이었는데 태풍 때문에 하루 일찍 체크아웃 한다고 하니 무료 환불에 동의해 줘서, 마음 편하게 남은 일정을 정리할 수 있었다. 환불이 되지 않는 예약이었기에 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흔쾌히 마지막 날은 취소해 주겠다고 하는 것이 고마워서 취소받은 돈으로 과일을 사서 나눠먹었다.




한편 나에게 물건을 부탁한 동생은 차라리 빨리 오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태풍이 더 위로 올라오면 비행기가 못 떠서 며칠 더 일본에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나를 걱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들고가는 물건을 걱정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때 비행기가 뜰 지 아니면 뜨지 않을 지 걱정하면서 인터넷에 있는 날씨 정보도 이것저것 찾아봤다. 하지만 내일의 날씨는 알 수 없는 것이었고, 갑자기 태풍이 더 빨리 올라와서 비행기가 뜨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숙소도 취소하고 비행기까지 예약한 다음,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억누르면서 잠들고 난 다음날. 그날 비행기가 뜰지 뜨지 않을지 아침에 확인해서 알려준다고 했기에 아침에 일어나서 핸드폰을 바라보는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다행히도, 비행기는 예정대로 뜬다는 메세지가 와 있었다. 다만 최대한 빨리 이륙할 예정이니 빨리 수속을 마치라는 내용이었다.




이륙이 확정되니 홀가분해진 마음이었다. 오후 출국까지는 몇 시간이 남아 있어서, 체크아웃 하고 짐을 맡겨둔 뒤 근처의 빵집을 하나 가 보기로 했다. 편의점에서 사 온 간식들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을 생각으로 이것저것을 골라 보았다. 캔커피에 떠먹는 케이크, 푸딩. 캔커피는 생각보다 레쓰비 맛이라 내가 생각한 진한 맛은 아니었지만, 좌우지간 돌아가면 못 먹는 것들이니 이것저것 새로운 기분으로 먹을 수 있었다.



비행기 이륙이 확정되고,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먹은 아침 간식들



짐은 숙소에 잠시 둔 뒤, 빵집으로 향했다. 원래 전날 가 보려 했지만 문 닫는 날이라 못 가본 곳이었다. 숙소에 빵집을 추천해 달라고 했을때 추천 받은 곳이었는데, 비가 조금 내리는 와중에도 사람이 꽤 있었다. 나카스 강 근처에 있었는데, 다행히 운 좋게 안쪽에 앉을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투박한 느낌의 식사용 빵이 많아, 이런저런 빵들과 함께 커피를 주문했다. 현지 사람들에게도 유명한지, 후쿠오카 구경을 온 듯한 일본인들이 빵을 사먹는 것도 볼 수 있었다.




페스트리 류는 내가 알고 있는 맛일 것 같아 대신에 거칠게 만들어 둔 식사용 빵을 이것저것 먹어 보며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구경했다. 비 오는 와중에도 밖의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비를 피하는 것인지 아니면 빵을 먹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빵을 먹고 나서 비행기 이륙 시간을 맞추기 위해 짐을 싸서 출발했다. 가로등에 앉아 있던 큰 까마귀와 나카스 강 위로 날아가던 새 등 별 시덥잖지만 소소한 특별함이었던 몇 가지를 기억했다.




숙소 직원에게 추천받아 갔던 후쿠오카의 빵집




투박하게 만든 식사용 빵이 있었다




몇 가지를 골라 커피와 함께 먹었다




가로등에 앉아 있던 거대한 까마귀




비 내리는 나카스 강 위를 날아가던 새




후쿠오카 공항에 갈 때마다 참 후쿠오카는 공항과 도시가 가까워서 편하구나 생각하며,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기 위해 공항을 돌아다니다가 항공편 현황판을 보았다. 태풍의 영향이 있기에 많은 비행기들이 취소되는 것 아닐까 생각했는데, 현황판을 보니 생각보다 많은 비행기들이 별다른 변동 없이 이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군데군데 결항이라는 글자가 뜬 암울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별다른 문제 없이 조용했다. 몇 편의 비행기가 결항이긴 했지만, 내가 탈 비행기는 그 중에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하지만 나는 운이 좋았던 모양인지, 다른 사람들은 항공권이 바뀌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떤 사람은 태풍 때문에 항공권이 바뀌었다면서 더 낮은 항공사의 좌석으로 비행기가 바뀌었다면서 전화통화로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탑승동 사이에서 편의점 구경을 하러 가니 편의점에도 사람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편의점 매대에 물건이 있었다. 지난번에 동생과 후쿠오카에 왔을 때는 정말 편의점에 그 어떤 음식도 없어서 모든 매대가 텅텅 비어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꽤 신기했다.




조금 일찍 들어왔기에 이런저런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위스키는 모조리 매진되었다고 표시해 둔 주류 면세점에서 작은 매실주 세트를 하나 사고, 일본에 와서 만났던 지인 아저씨에게 이제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메세지를 보냈다. 아직도 한국에 가지 않았냐면서 걱정하는 그분에게, 비행기가 정상적으로 이륙해서 한국에 돌아갈 예정이고 비행기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혹시라도 태풍이 와서 움직일 수 없게 되면 차로 데려다가 공항에 내려주겠다는 말을 하면서도, 음식점의 직원에게 고압적으로 쏘아붙이는 모습에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던 그 상황을 이것저것 되뇌이며 고마운 것만 기억하는게 좋겠다 생각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공항 직원들을 보면서 기다리니, 비행기는 구름 가득한 후쿠오카의 하늘에 올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늦게 오거나 하는 것 아닐까 걱정했던, 돌아가야 할 곳으로.




생각보다 결항이 적었던 공항




인기 많은 위스키는 모두 품절이었다




비행기에 손을 흔들어 주던 직원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갑자기 생각이 들어, 집에다가 짐을 갖다두고 제육볶음을 해 먹었다. 매콤하면서 단 양념으로 볶아낸 돼지고기. 외국에 있다가 한국에 돌아와서 한국 음식을 찾는다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고기를 한가득 준비해서 먹어 보고 싶었던 나에게 동네 식자재마트에서 파는 저렴한 제육볶음은 충분히 맛있는 한 끼가 되었다.




여행을 끝내고 집에 와서 먹었던, 제육볶음 한 가득




그렇게 또 하나의 여행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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