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현준 Nov 07. 2021

판매하기가 아닌 정리하기

당근마켓을 쓰는 사람들

내 기억 속의 당근마켓은 어느날부터 사람들 사이에 돌고 있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어정쩡하게 서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당근이세요 하고 묻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이야기는 꽤 재미있었다. 사소한 물건을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동네에서 거래하는 사람들이 쓴다는 당근마켓이라는 어플이, 나는 맨 처음에는 무슨 홈페이지 같은 것인줄 알았다.



그러다가 지난번 밀크티를 만들기 위해 산 홍차가 생각보다 내 취향에 맞지 않아 팔려고 할 때, 당근마켓이 생각났다. 비록 그때 당근마켓을 통해 홍차를 팔지는 못했지만 물건을 올려 보고 어떤 물건들이 올라오는지 구경해 보았다. 동네 위치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며 동네 소식 위주의 게시판이나 채팅 같은 서비스를 이용해 보기도 했다. 그런 당근마켓은 이젠 중고거래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이전에 사람들이 기억하던 수많은 중고거래 업체를 모두 잊게 만들어 버릴 만큼.



어떻게 당근마켓은 기존 중고거래 플랫폼들이 단단히 다져둔 기반 사이로 자리잡아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귀여운 캐릭터가 토끼 인형을 뒤집어쓰고 당근을 흔드는, 카카오친구들 같은 홍보대사가 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까?






당근하다, 라는 표현까지 쓸 만큼 중고거래의 대명사가 된 당근마켓






살다 보면 새로운 물건은 항상 필요하지만 반드시 최고의 물건을 필요로 하지는 않게 된다. 적당히 쓴 것을 저렴하게 팔고 싶은 사람들이 있고, 굳이 새 제품이 아니더라도 적당한 가격에 구매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중고거래 시장은 이곳에서 생겨난다.




문제는 이런 중고거래가 비교적 편의성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중고로 팔리는 물건을 믿는 것도, 중고로 물건을 팔고 있는 사람을 믿는 것도 모두 쉽지 않은 일이다. 카메라를 샀더니 벽돌이 들어 있다던가, 돈을 받은 사람이 연락이 두절된다던가 하는 인터넷에서나 볼법한 전설적인 일화들이 넘치는 것은 중고거래의 위험성을 증명한다.




물건의 가치가 올라갈수록 중고거래의 부담은 커지고, 기존 중고거래 플랫폼을 이용하기 위해 가입해야만 하는 절차들은 복잡해져만 간다. 물건을 어떻게 포장해야 뒷말이 안 나올까? 어떻게 판매자를 골라야 사기를 안 당할까? 단순히 돈을 아끼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이유만으로 중고거래를 하기엔 부담이 점점 커져간다. 만원짜리 물건을 중고로 팔기 위해 왜 만원 이상의 피곤함을 느껴야 하는 것인가?




당근마켓은 이 부담감을 확 낮췄다. 지역 기반으로 매물을 보여주기에 실거래가 가능한 물건들 위주로 검색되며 말도 안되는 사기를 당할 우려가 없다. 또한 그렇기에 비싸지 않고 저렴한 물건이라고 해도 부담 없이 판매하고 구매할 수 있다. 인형뽑기에서 뽑은 잔망루피 인형을 기존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오천원에 팔 수 있었을까? 한번 입고 안 입게 된 만원짜리 보세 원피스는? 당근마켓에선 가능하다. 아마 당근마켓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지역 기반으로 매물을 검색, 판매 가능하게 하다보니 지역 커뮤니티도 활성화 된다. 새로운 음식점은 어디 있고 어디에 어떤 수선집이 있는지. 이런 것들은 당근마켓을 단순한 중고거래 플랫폼이 아니라 일종의 생산적인 커뮤니티로 기능하게 만든다. 비록 커뮤니티가 당근마켓 매물들과 직접적으로 영향은 없을 수 있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역 기반 커뮤니티를 제공한다는 것은 당근마켓의 큰 매력이다






하지만 당근마켓이 성공한 이유가, 적은 부담으로  거래할 수 있는  가벼운 중고거래 플랫폼을 만들었기 때문일까? 사람들에게 지역 기반 커뮤니티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경제적인 것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이유가 하나  있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누구나 집에 처치 곤란한 물건들을 가지고 있다. 한번 입고 안 맞아서 걸어둔 옷, 특별한 일이 있어 받았지만 전혀 쓰지 않는 기념품, 너무 가벼워서 안 쓰게 된 아령 등등. 이런 물건들은 집에 둬 봤자 한번도 쓰지 않고 공간만 차지한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에게 아마 집에 한 트럭씩 있어서, 꼭 필요한 물건보다 훨씬 많을것이다.




그런데 날 잡고 이런 물건들을 정리하려고 해도 일이다. 정리한다고 해서 무엇이 남는가? 물건이 그곳에 쌓여 있고 아무도 만지지 않은 것은, 그렇게 쌓여서 아무도 만지지 않는다 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굳이 정리하나 정리하지 않으나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그걸 정리하고 싶겠지만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근마켓을 알고 있다면 어떨까? 사실 물건을 팔아서 얼마나 수익을 내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당근마켓을 통해 물건을 하나씩 팔거나 심지어 무상으로 나눔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전까지는 계속해서 미뤄만 왔던 '물건 정리하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태까지는 귀찮고 번거로워서 하지 않던 일이, 그 물건이 필요한 사람에게 팔거나 혹은 기부한다는 간단한 동기부여 하나로 꾸준히 할 만한 일이 되는 것이다.




비록 물건을 팔아서 의미 있는 수익을 올리지는 못할 수 있다. 사실 당근마켓에 저가의 물건을 올리는 사람들 대부분은, 반드시 그 물건을 팔아 그 금액을 벌어야만 하는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물건을 팔고 나서 얻는 수익이나 혹은 심리적 만족감이라는 동기부여를 통해 사람들은 미루고 미뤄왔던 '필요 없는 물건 정리' 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것이다.



계속해서 미뤄 오던, 필요 없는 물건 정리 라는 행동을 실행으로 옮길 결정적 동기부여를 ‘편리한 방법으로’ 제공한 것이 당근마켓인 것이다.




신뢰도 높은 직거래만이 당근마켓의 성공요인은 아니다






중고거래의 본질은 경제적인 이득이다. 나는 굳이 필요 없는 물건을 팔아서 수익을 올리고, 그와 동시에 굳이 쓸 필요가 없는 돈을 아껴서 수익을 올린다. 그런 중고거래의 본질은 플랫폼을 번거롭게 만들었고 중고거래를 더욱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당근마켓이 시도한 것은 정 반대의 것이었다. 가벼운 물건을 가벼운 가격에 사고팔 수 있게 하고, 수익을 올리고자 하는 것이 아닌 필요 없는 물건을 정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기반했다. 당근마켓은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약간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만을 할 뿐이다.



그것이 바로 당근마켓이 성공한 이유이며, 기존 비대화된 중고거래 플랫폼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앵무새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