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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Jul 23. 2024

교토식 화법에 당해보자

써 봤다면 이번엔 당해볼 차례다

일전에 나는 내가 교토식 화법을 쓰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생각한 것을 대놓고 강력하게 말하기보다는, 알아 들어도 그만 못 알아 들어도 그만 이라는 생각으로 부드럽게 넌지시 전달하는 느낌으로 말하는 것이다.




가령 저녁 시간이 되어 친구를 그만 집에 보내고 싶을 때 친구에게 돌아가는 버스는 시간이 괜찮냐고 말한다. 물론 한국에서의 인식은 이 정도는 교토식 화법으로 쳐 주지도 않고, 적어도 저녁으로 잡채를 준비해야겠다 혹은 진짜 교토식으로 말하자면 저녁으로 스키야키를 준비해야겠다 정도로 말해야 겠지만 말이다. 하여간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화 밑바닥에 깔아두고, 부드러운 말로 의사를 전달한다는 것은 똑같다.




최근 들어서 나와 맞지 않는 사람에게 너는 왜 말을 그런 식으로 하냐 같은 것 보다는, 굳이 계속해서 하는 이야기를 적당히 흘려 보내던가 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을 느낀 순간이 있었다. 문득 그런 나 자신을 느낄 때 어 내가 사실은 교토식 화법을 애용하고 있는 것 아닐까 싶었다. 물론 맨 처음 인터넷으로 봤을 때 도대체 교토는 어떤 곳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던 그런 화법과는 많이 다른 것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교토식 화법이란 다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기에, 평소에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도 교토식 화법 비스무레한 것을 쓸 일이 많다. 누구나 다들 교토식 화법을 어느 정도는 사용하면서 살아가지 않을까. 단지 그걸 아 이게 교토식 화법이구나, 내가 의도를 숨기고 부드럽게 대화하려고 하고 있구나 생각하는 순간 교토식 화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교토식 화법을 쓰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상대방도 교토식 화법을 쓰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내가 대화를 할 때 내 말의 의미가 말보다 저 아래에 숨겨져 있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법은 어디에 있을까.




지난번에 같이 모임에서 만난 사람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모임에 세 번째 온 사람이었다. 두 번의 모임은 내가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모임이 아니었지만 좌우지간 이미 이전에 두 번이나 온 적이 있던 사람이었고, 세 번째 방문에서 내가 직접 준비하는 모임에 온 것이었다. 그래서 어쩐지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함이 있었는데, 조금 대화를 나누고 나서야 세 번째 왔던 적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정 신청을 위해 나에게 연락했었다는 사실도. 기억하지 못했음에 무안함을 느끼고 있는 나에게 그 사람은 말했다. 에이 저는 세 번 밖에 안 왔으니까 기억 못하실 수도 있겠네요.




세 번씩이나 왔는데 어떻게 기억을 못 할수 있느냐 하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다 보니, 어 이것이 바로 교토식 화법 아닌가 싶어졌다. 내가 사용한다고 생각했던 교토식 화법을 들어 본다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하는 생각에, 역시 쓸 때는 당할 생각도 하고 있어야 하는구나 싶어졌다.




하지만 이 사람이 말을 할 때 무슨 뜻으로 말을 할까 하는 생각은 이미 이전부터 하고 있던 것이기도 해서, 어쩌면 나에게는 모든 대화가 교토식 화법 아닌가 생각했다.




대화의 진의를 생각하는 습관은, 모든 대화를 교토식 화법으로 만든다. 2024 04, 서울 청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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