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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노르웨이 계곡을 거슬러 오른다

플롬에서 뮈르달까지

by 문현준

플롬에서의 마지막 날, 숙소에서 짐을 정리하고 나갈 채비를 한다. 직접 청소를 하고 나가거나, 청소 비용을 내거나 둘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부산을 떨며 정리를 하는데 옆에서 부모님이 그정도면 되었으니 가자고 한다. 아무리 청소를 해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지만, 정리를 하고 열쇠를 통에 반납한다.



마지막 날이 되니 다시 날씨가 엄청나게 좋아졌다. 어떤 여행을 가더라도 마지막 날 날씨가 특별히 더 좋아지는 것은 기분 탓이겠지. 플롬을 떠나는 열차를 타기 전 작은 마을을 돌아보며 마지막 순간을 즐긴다.




마지막 날, 푸른 하늘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플롬
한적한 아침의 마을 중심지
기념사진 촬영은 필수




시간이 되어 부모님과 함께 캐리어를 끌고 열차에 오른다. 고전적인 느낌의 녹색 열차 안에는 목조 느낌의 구조물과 푹신한 쿠션 의자가 있다. 플롬에서 출발하는 이 산악 열차는 두 시간 정도의 노선을 거쳐 뮈르달로 향하는데, 편리한 교통으로 이용하기 부담이 없기에 많은 사람들이 관광 명물로 찾는다.



열차 안에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으니 숙소 냉장고에 넣어 뒀다가 챙겨온 맥주가 생각난다. 병맥주라서 오래 들고 다닐수가 없기에 열차에서 먹으면 딱이겠다 싶어서 맥주를 마시며 출발을 기다린다. 열차 안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한 객차 전체에 부모님과 나밖에 없고, 바로 앞 열차에 단체 관광객들이 우르르 오르는 것이 보인다. 한국에서 온 단체 여행객 같다.




출발을 기다리는 산악열차
아늑한 느낌의 열차 안. 운 좋게 공간을 넓게 쓸 수 있었다




열차는 플롬에서 출발해 깊은 계곡을 따라 가면서 조금씩 고지대로 올라간다. 계곡 사이에 자리잡은 집들과 개천, 멀리서 흔하게 보이는 폭포들을 지나간다. 깊은 계곡 사이로 지나기 때문에 맑은 날씨에는 빛의 밝기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며 멋진 경관을 볼 수 있다.



중간에는 잠깐 멈춰서 맞은 편에서 오는 열차를 보내기도 하는데, 동시에 열차가 하나밖에 지나갈 수 없어서 정해진 구간에서 열차가 서로 교차해 지나간다고 한다. 열차가 교차해 지나가는 곳 옆에는 보라색 들꽃이 피어 있는 것이 예쁘다.



플롬에서 출발한 열차는 계곡을 따라 거슬러 올라간다


천천히 달리는 열차 차창 너머로 산과 개천, 폭포가 보인다


오전 시간의 강한 빛도 깊은 계곡 안쪽을 모두 비추지는 못한다


큰 폭포에 무지개가 걸려 있다


선로를 따라 달리는 열차의 소리와 스쳐 지나가는 계곡의 풍경들


계곡에 비추는 빛과 그늘의 어둠, 폭포의 조합이 매 순간 새로운 풍경으로 다가온다


보라색 들꽃을 찍어 보려 했지만 그림자 속이라 잘 찍히지 않았다



계곡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물길은 거칠어진다


큰 폭포 아래로 복잡하게 얽힌 통행로, 그 옆으로 나 있는 절벽 안 기찻길




플롬에서 출발하면 뮈르달에 거의 다 와갈 때 쯤, 중간에 거대한 폭포 앞에서 잠깐 멈춰 선다. 열차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승강장이 있고 그 앞쪽에는 거대한 폭포가 쏟아지는데, 열차가 설 때마다 폭포 쪽 절벽 위에서 사람이 나와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붉은 옷을 입은 이 사람은 노르웨이 전설 속의 Huldra 라는 것을 나타낸 것이라 하는데, 노래를 불러서 남자를 꾀어낸다는 요정 같은 것이다. 궁금해서 나중에 찾아보니 Huldra 역을 하는 사람은 노르웨이 발레 학교에서 온다 한다.



아주 짧은 시간 공연을 하는 정도에만 정차를 하는데 사람은 많고 모두가 열차에 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단체 관광객들이 우르르 내려서 왁자지껄하게 사진을 찍는데 시간이 걸리자 역무원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다시 열차로 몰아넣는다. 폭포를 떠난 산악열차는 얼마 남지 않은 선로를 달려 목적지로 향한다.




열차가 정차하는 짧은 시간동안, 공연은 사람들에게 잊지못할 추억을 남겨준다
계곡을 벗어난 열차는 호수와 들판이 펼쳐진 곳을 달린다



그렇게 플롬에서 출발한 열차는 최종 목적지인 뮈르달에 도착한다. 플롬 산악열차는 뮈르달까지만 운행하기 때문에 탑승객들은 전원 뮈르달에 내려서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 보통은 베르겐으로 가거나, 아니면 오슬로까지 이어지는 철도를 타고 더 멀리 떠난다.



작은 뮈르달 역 승강장이 관광객들로 가득 찬다. 익숙한 한국어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사람들은 즐거운 한때를 기념하며 사진을 찍어 남긴다. 구름 하나 없는 맑은 날씨에, 높은 산맥 위쪽에 남은 눈 아래로 푸른 초목이 자라고 있는 신기한 광경이 펼쳐진다.



뮈르달 역 표지판. 해수면 위 866m 라고 적혀 있으니, 대략 서울 북한산 꼭대기 정도의 높이이다


기념 사진은 어디에서도 빼놓을 수 없다


짧은 시간동안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뮈르달 승강장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사이 엄마와 아빠는 부모님들이라면 으레 가진 그 특유의 친화력으로 다른 관광객들과 수다를 떨고 있다. 부모님과 다른 사람들과의 짧은 만남이 끝나고 나와 부모님은 오슬로 행 열차를 탄다. 이날 오슬로로 가는 열차를 탔지만 가려는 곳은 오슬로가 아니었다.



뮈르달에서 오슬로로 가는 열차를 타고 가다 보면, 본격적인 노르웨이 고지대에 들어서면서 신기한 광경을 볼 수 있다. 높게 자란 나무라고는 하나도 없고 돌과 덜 녹은 눈, 자갈, 군데군데 있는 호수가 차창 밖으로 펼쳐진다.



내가 맨 처음 그곳을 지날 때, 그 신기한 풍경이 어디였는지 위치가 기억이 나지 않아 지도로 철도 노선을 따라가며 역을 찾아냈던 곳이다. 그때 아주 잠깐이었지만 보였던 그 풍경을 기억하며, 나중에 또 노르웨이에 간다면 그곳을 꼭 가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나는 부모님과 도착했다. 핀세에.


언젠가 다시 오겠다 생각했던 그곳에, 부모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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