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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채만한 얼음이란 이런 것

눈이 아니라 빙하입니다

by 문현준

나에게 약간 특별한 의미였던 노르웨이 핀세. 그곳에 드디어 도착한 뒤 바로 앞쪽의 숙소로 향했다. 핀세 기차역 바로 앞의 숙소에 들어가 예약을 확인한 뒤, 정해진 시간을 최대한 알차게 쓰기 위해 머리를 굴려 본다. 원래 핀세의 일정은 3박 예정이었고 첫날은 그냥 쉴 예정이었지만, 그동안에 뭐라도 하나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인터넷에서 얼핏 검색했던 것이 떠올랐다. 바로 빙하 투어다.




사실 노르웨이에서 빙하 투어를 하기 위해서는 부모님과 머물던 곳에서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야 했는데 일정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갈 것 같아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그저 참고용으로, 목적지 중 하나였던 핀세에서도 빙하 투어가 가능하다는 것을 얼핏 검색하여 알고만 있었다. 그런 와중에 숙소에 있던 빙하 투어 전단지가 보였고 나는 부모님과 짧은 상의 혹은 일방적 통보의 과정을 거쳐 빙하 투어를 가기로 했다. 숙소에 부탁해 빙하 투어를 신청하고, 가방에서 딱 필요한 것만 꺼내 짐을 챙긴 뒤 바로 출발하여 빙하 투어에 참가한다.




빙하 투어 출발 전 사전 점검. 건강상태와 주의사항, 간단한 설명 등을 듣는다




기차역 근처에서 만난 빙하 투어 가이드는 흔히 봐 왔던 노르웨이인의 모습을 한, 키가 장대만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들은 어찌나 기럭지가 큰지 기념품으로 산 스웨터의 팔을 한참을 줄여야 내 몸에 딱 맞게 입을 수 있었다.




다른 투어 신청자들과 함께 기차역 옆의 작은 방에 모여 짧게 프로그램 소개 시간을 가진다. 가기 전에 투어 프로그램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고혈압이나 다른 호흡기 질환 등 투어 진행에 문제가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다.




사전 확인이 끝나고 출발한 빙하 투어는 역에서 출발하는 가벼운 하이킹 코스로 시작한다



짧은 점검을 거치고 나면 바로 출발하여 걸어가는데, 기차역 바로 옆 들판을 향해 일렬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돌과 낮은 풀, 이끼들이 펼쳐져 있는 벌판을 걷다 보면 크고 작은 물웅덩이와 호수를 지난다. 맨 앞과 뒤에서 가이드들이 뒤쳐지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면서 같이 가고 중간에 말도 걸어온다. 나는 이전부터 빙하 투어에 대해서 궁금한 것을 물어 보기로 한다.



'빙하 사이 얼음 틈에 빠지면 정말 위험하다고 하는데, 혹시 최근까지 들은 가장 안좋은 사건사고가 뭐였니?'

'음 5년도 더 전에 빙하에 올라갔다가 얼음 사이로 죽은 학생이 있었다고 들었어. 운이 안 좋았지. 머리부터 떨어졌거든.'

'오...'

'사실 빙하 사이 빈틈보다 위험한건 날씨야. 이곳은 날씨가 정말 순식간에 변해. 가령 날씨가 좋아서 조금 쉬었다 가려는데, 갑자기 좋았던 날씨가 급변해서 눈이나 비가 오는거야. 이런 상황이 정말 위험한 상황이지. 저체온증으로 이어질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기도 정말 힘들거든.’


줄을 지어 걸어가는 빙하 투어 참가자들




계속해서 걸어가다가 중간중간 휴식시간을 가진다. 너른 들판에 적당히 앉아서 간식을 먹고 물을 마시며 쉰다. 주위를 둘러보니 바위투성이 땅 위에 이끼처럼 낮은 풀들만 자랄 뿐 나무라고는 한 그루도 없는 모습이 신기하다. 말린 견과류와 에너지바를 먹은 가이드가 핀세에 대한 이런저런 것들을 설명해 준다. 핀세는 특이하게도 극지방이 아님에도 극지방 연구가 가능한 곳이라던가, 아이슬란드에서 큰 화산폭발이 일어나면 겨울이 더 추워져서 빙하가 더 크게 자란다던가 하는 것들.




휴식 시간에 주위를 둘러보며 핀세와 빙하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듣는다




T 자가 적인 돌을 따라서 걸어간다




중간에 몇 번 다리도 건넌다




빙하 녹은 물은 꽤 큰 개천이 되어 흐른다




중간중간 빙하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멀어 보이지만 거의 다 온 빙하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적막하다 못해 황량하게 느껴지는 넓은 땅이었다




사이사이 휴식 시간을 충분히 주기에 걷는 것이 힘들지 않다




점점 가까워져 가는 빙하




빙하에 가까워지자 바닥에 큰 돌들이 많아진다




트레킹 코스를 의미하는 T 자가 찍힌 바위를 따라가며 계속 걷다 보면, 물 위로 놓인 다리도 몇 번 건너간다. 그렇게 계속 걷다 보면 빙하가 길게 내려와 땅에 맞닿은 곳에 도착한다. 이곳에 빙하 트레킹에 필요한 장비들이 들어있는 상자가 있고, 이곳에서 장비를 갖춘 뒤 빙하에 올라갈 준비를 하게 된다. 장비를 착용한 아빠가 구석에 놓인 스키 위에 올라가 발을 움직여 본다. 가이드와 눈이 마주친 나는 나지막히 한마디 덧붙인다. 아빠는 뭐든지 한번 해 보고 싶어해.



선크림을 제대로 바르지 않는다면 반사되는 빛에 콧구멍이 타버린다는 농담 반 진심 반 가이드 경고에도 나는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버텼다. 그런데 빛을 받아 반짝반짝하게 빛나는 빙하를 보니 그대로 올라갔다간 얼굴이 바짝 구워지는걸로 부족해서 눈에 정말 안좋을 듯 했다. 결국 부모님이 여벌로 챙긴 선글라스를 쓰고 선크림까지 바르고 나서야, 마지막까지 버틴 나를 주시하던 가이드의 시선이 거두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안전장비 착용을 마치고 올라가기 전에 빙하 위에 올라갈 인원을 편성한다. 나와 부모님이 갔을 때는 다른 북유럽 커플 한 팀이 영어를 사용할 수 있어서 함께 영어 가이드로 팀이 편성되었다. 맨 앞에 따라가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뒤로 전파해 줘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꼭 할 수 있어야 했다.




빙하 앞에서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올라간다




안전장비 점검은 필수




선두에 선 가이드는 얼음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며 뒤에 오는 사람이 걸을 수 있도록 길을 낸다




거대한 얼음이라는 것이 실감나는 빙하의 모습




빙하에 올라갈 때는 맨 앞의 가이드가 확인하며 밟아 둔 길을 잘 따라가야 하고, 혹시라도 누가 미끄러지거나 틈에 빠져버릴 경우를 대비해 거리를 적당히 벌려 줄이 당겨지게 해야 한다. 여러 명이 굴비두릅처럼 줄에 묶인 상태로 이동하다보니 한명이 갑자기 길을 이탈해 움직이거나 멈춰버리면 뒷사람도 못 움직이고 앞사람도 못 움직이는 데다가 가이드들의 일동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호기심이 가득한 아빠가 한두번 경로를 이탈할 때는 그 무엇도 막을 수 없었다.




빙하를 걷다 보면 유기물과 먼지가 모여 검은 점을 이룬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검은 점은 다른 곳들보다 빛을 더 많이 흡수해 더 빨리 따뜻해지게 된다. 이곳에 생긴 물구멍은 크기가 점점 커져서 다른 곳에서 생긴 물들도 고여 물웅덩이가 되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큰 구멍으로 커지기도 한다. 몇 번 봤던 거대한 구멍들 중에는 이 밑바닥은 어디일까 싶은 깊은 것들도 있었다.




먼지와 유기물이 쌓여 생긴 빙하의 검은 부분은, 점점 커져서 큰 구멍이 되기도 한다


다같이 서로를 줄로 묶은 상태로 빙하를 올라간다



바닥이 어디인지 상상할 수 없었던, 갈라진 빙하의 틈들




오랫동안 녹지 않으며 커지고 작아지기를 반복했을 빙하와 그 위로 쌓인 눈을 밟는 감촉이 신기하다. 아이젠을 겹쳐 신은 발을 앞으로 디딜 때마다 사각사각 하며 얼음 알갱이 깨어지는 소리가 난다. 잠깐잠깐 선글라스를 벗어서 유리 너머의 세상을 보면, 빛을 한가득 받은 빙하가 눈으로 햇빛을 쏘아댄다.




기념 사진 촬영은 항상 중요하다



빙하 골짜기와 그 사이에 쌓인 눈을 볼 수 있다




물이 흘러 내려가던 구멍의 끝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천천히 걷다 보니 빙하 한복판까지 올라왔다. 겨울에는 빙하가 더 커지고 눈도 오는데다가 얼음이 단단히 얼기에, 빙하 위로 스키를 타며 지나다닐수도 있다고 한다. 스키를 탄 상태에서는 체중이 분산되고 틈 아래로 바로 빠질 염려가 적기에 괜찮다고 하는데, 한 겨울 빙하 위에서 스키를 타는 느낌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빙하 한복판에 올라온 투어 참가자들




그렇게 빙하 한복판까지 걸어서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다시 장비를 정리해서 보관해 두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간다. 빙하가 깎아내린 고운 광물질 입자가 섞인 물은 독특한 색을 가지고 흘러간다. 아주 고운 진흙 같은 모래가 그 개천의 변두리에 쌓여 있다. 다 내려와서 보니 아래쪽으로 내려와 닿은 빙하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눈에 덮이지 않은 부분을 보며 빙하의 전체 모습을 상상해 본다




장비를 정리하고 돌아가는 길




다들 다리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물론 부모님도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 가는 것이기에 지칠 법도 하지만,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 하는 신기한 모습에 주위를 둘러보며 걸어가면 금방 핀세에 도착한다. 기차역과 호텔 정도밖에 없는 곳이지만 핀세 다운타운이라며 너스레를 떠는 가이드의 익살이 재미있다.




물 속의 눈덩어리가 푸른 색으로 변해 있다




핀세로 돌아가는 길



핀세에 도착할 때쯤 본, 주위의 풍경




노르웨이에서 빙하 트레킹을 할 수 있는 곳들이 많고 더 큰 빙하가 있는 곳도 있다 들었지만, 그래도 부모님과 함께 절대 흔하지 않은 경험을 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쉽게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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