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노르웨이 고지대 자전거 타기
핀세의 두번째 날, 아무 생각 없이 근처를 돌아보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문득 기차역 근처에 자전거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을 봤던 것이 기억난다. 그냥 걷는 것보다는 자전거를 타면 더 멀리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자전거를 빌려서 핀세 근처를 돌아보기로 했다.
자전거 대여소는 기차역 바로 옆에 있다. 창고 건물 앞쪽에, 잘 정돈된 자전거가 볕을 받고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 자전거를 빌리려는데, 추가 요금을 내고 안장과 자전거 가방을 빌리는 것을 추천해 준다. 안장을 빌리면 훨씬 승차감이 좋다나. 간식과 다른 것들을 넣을 자전거 가방도 하나 해서, 자전거 셋과 안장 셋, 자전거 가방을 빌린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할까. 핀세에서 출발해 오슬로로 가는 기차길이 있는 방향이 있고, 플롬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자전거 대여소 직원에게 물어 보니 보통 플롬 방향이 가기 힘들지 않다고 추천해 준다. 조금만 가면 큰 산을 볼 수 있다고 해서 그 산까지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출발해 본다.
사실 나는 자전거를 거의 타 본 적이 없다. 제대로 된 자전거를 탄 것은 어릴 적 뿐이고, 그 뒤로 자전거는 타이어에서 바람이 빠져서 손으로 누르면 들어갈 정도까지 방치되었다. 사실상 10년도 넘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 제대로 자전거를 타 보는 것이다. 자전거에 올라 발을 열심히 구르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는 나에게 기어 조정 같은 것은 너무 복잡하기만 하다.
그래서인지 초반부 자전거 타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일단 기어 설정을 바꾸는 것에 따라 바퀴가 빠르게 돌거나 빡빡하게 돌거나 하는데, 맨 처음에는 기어 설정 하는 법을 모르고 그저 바퀴를 빨리 돌리면 좋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기어 설정을 잘못한 상태로 열심히 발만 굴렀다. 게다가 자전거 도로는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아스팔트 발라진 깔끔한 길도 아니라 울퉁불퉁하다. 처음 30분 정도는 등이 땀으로 흠뻑 젖어서 괜히 자전거를 타겠다고 했나,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지 조금씩 타 보니 적응하기 시작한다. 오르막 길에 올라갈 때는 바퀴가 빳빳하게 돌아가는게, 내리막 길을 내려갈 때는 바퀴가 빨리 도는게 힘이 덜 들어간다. 기어 설정을 익히고 나니 힘이 덜 들고 울퉁불퉁한 자전거 도로도 그럭저럭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때서야 자전거를 타면서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핀세에서 출발해 플롬으로 가는 자전거 도로는 호수와 물웅덩이를 지난다. 덜 녹은 눈과 얼음 너머로 저 멀리, 빙하가 보인다. 나무 한 그루 없이 낮은 풀들과 이끼만 있는 땅을 보다 보면, 도로 옆에서 같이 흐르거나 도로 위로 흐르는 물들도 지난다. 예전에 쓰였지만 지금은 안 쓰이는 것 같은 폐선도 보인다. 마음 편하게 둘러보고 싶은 장소에서는 자전거를 세우고 걸어가 사진을 찍어 본다. 가고 싶을 때 가고,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있다.
길다란 자전거 도로를 달리다 보니 아빠는 앞에서 가고 엄마는 뒤에서 간다. 아빠는 어릴적 자전거를 많이 탔기에 편하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지만, 엄마는 자전거를 잘 못 타는 것이 나와 똑같다. 나중에 들어보니 엄마가 가파른 벼랑길을 긴장하면서 가고 있는데 아빠가 옆에서 가까이 붙으며 장난을 쳤다 한다. 엄마는 밀려 넘어질까 하는 걱정에 화가 났고 아빠는 자기 장난을 안 받아줘서 화가 났다. 평화로운 여행의 일상이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어쨌든 자전거를 타고 쭉 가다가, 괜찮은 자리에 자전거를 세워 두고 언덕에 올라 앉아 점심을 먹는다. 아침 조식 시간에 각자 자기 취향대로 만들어서 포장해 온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누구 샌드위치가 가장 맛있는지 이야기한다.
핀세에는 동물이란 하나도 안 사는 것 같지만 들새를 종종 볼 수 있다. 꿩 같은 새들도 있고, 참새같은 작은 새들도 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좁은 공간으로 새가 들락날락 하는 것을 보니 둥지가 있는 것 같아서 먼 곳에 자전거를 세워 두고 몰래 지켜보았다. 가다가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대로 자전거를 세워두고 지켜볼 수 있어 좋다.
자전거 도로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종종 자전거 타는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문화의 특징인지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그러다가 오후 좀 넘어서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이 뭔가를 물어본다.
'(아마도 노르웨이어)'
'응? 뭐라고'
'너 플롬 가는거니?'
'플롬? 아니야. 플롬 못 가. 핀세로 돌아갈거야.'
아마 지금 플롬을 가고 있다면 도중에 해가 질테니 돌아가야 한다고 말해주려고 했던 것 같다. 플롬이라니, 하하. 절대 불가능할 것 같다.
한참 가다 보니 슬슬 돌아가야 하는 시간인 것 같다. 하지만 직원이 말했던 큰 산은 보이지 않아서, 조금만 더 가 보자고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앞으로 가고 있다. 결국 부모님과 함께 저 앞쪽 코너까지만 가 보기로 하지만 거기까지 가도 산은 보이지 않았다. 아쉽지만 해가 지기 전에 돌아가야 하기에, 거기까지만 구경하고 돌아가기로 한다.
갔던 길을 다시 돌아오며 핀세에 거의 다 도착해 보니, 신기하게도 도로가 물에 젖어 있고 핀세 바로 앞쪽의 개천의 수량이 늘어 있다. 나와 부모님은 비를 맞지 못했는데 비가 온 모양이다. 빙하 투어를 하며 들었던, 날씨가 급변한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핀세 역에 도착해서 자전거를 반납하고 난 뒤 올려다본 바위가, 비를 맞아 다른 색으로 변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즐긴다는, 플롬과 핀세를 잇는 자전거 코스. 자전거 대여소 직원이 설명하던, '다들 편하게 즐긴다'에서 '편하게'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는 오늘날까지도 미스테리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