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생소했던 Finse 1222 에서의 시간
맨 처음 노르웨이에 갔을 때, 피오르드 구경을 하러 많이 가는 곳인 플롬에서 오슬로로 가는 기차를 탔다. 반나절 걸리는 긴 여정이었고 오슬로에 밤늦게 도착하는 일정이었지만, 그때 나는 돈을 아끼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해 질 때까지 얼마 시간을 남겨두지 않은 상태, 뮈르달에서 출발한 열차는 오슬로로 향했다. 그때 중간에서 인상적인 풍경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높은 나무라고는 하나도 없이 그저 이끼와 낮은 풀밖에 없는 그곳. 돌과 눈과 호수가 펼쳐진 그곳의 풍경을 아무 생각 없이 보다가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꼭 이곳에 와야겠다 생각했지만 사진을 보고도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어서, 구글 지도의 역 주변 사진을 보며 겨우 위치를 알아냈었다.
그렇게 Finse, 핀세, 라는 이름은 내 기억 속에 깊이 새겨졌다.
나중에 부모님을 모시고 노르웨이로 가게 되었을 때, 내가 어디를 중간 여행지로 정할지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핀세를 가기로 하고 근처의 숙소를 알아보았다. 기차역 바로 앞에 숙소가 하나 있었다. 그렇게 알게 된 것이, 핀세 1222 였다.
핀세 1222는 기차역 바로 앞에 있다. 옆으로는 큰 바위산이 보이고 앞쪽으로는 기차가 지나가며 입구 앞에 핀세 1222 표지판이 있다. 1222 의 의미는 해발 1222 미터를 의미한다고 한다. 운이 좋으면 야생동물이 근처를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머무는 와중에, 꿩 같은 들새 무리가 표지판 주위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맨 처음 핀세에 기반시설이 들어올 때 만들어진 첫 건물이 지금 핀세 1222 로 쓰인다 한다. 사슴 머리뼈가 걸린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에 리셉션이 있고 앞으로는 넓지 않아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용공간이 있다. 직원들은 모든 일을 성심성의껏 도와준다.
핀세에는 레스토랑이나 마트 같은 것이 없어서 숙식을 호텔을 통해서만 해야 하는 구조이다. 인당 가격이 1박 20만원 정도였고 아빠는 무슨 돈이 있어서 그런곳을 예약하느냐 했지만 그날 저녁이 지나고 나서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숙박요금에는 아침과 저녁 식사가 포함된다. 핀세에서 식사를 해결할 장소가 없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아침을 챙겨서 점심을 준비하게 해 주기 때문에 삼시세끼가 포함된 가격이라고 볼 수 있다. 투숙객이라면 공용공간의 차와 커피도 마실 수 있다. 돈 내고 사먹으려 했더니 투숙객은 무료라고 해서 몇번 먹었다.
옛날 유명 스타워즈 영화를 찍은 곳이 핀세였고 그때 스텝들이 머무른 곳이 이곳이라 한다. 내부는 고풍스러운 장식들이 색다른 느낌을 준다. 공용공간에 앉으면 저 멀리 빙하도 보인다. 운이 좋다면 통유리 창 밖으로, 무리지어 움직이는 새들도 볼 수 있다. 큰 새 한 마리와 작은 새 여러 마리가 짧은 다리로 바삐 움직이며 땅을 쫀다. 빨리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빼들지만 이미 사라져 버린지 오래다.
핀세1222 의 백미는 저녁 식사 시간이다. 예약할 때 3 코스 요리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먹어 보니 생각보다 훨씬 고풍스럽다. 미리 말해둔 저녁 시간에 가면 전채 본식 후식으로 나누어진 3가지 코스요리를 제공해 준다. 공들여 준비한 듯한 음식과 내부 인테리어가 곁들여져서 정말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미리 말하면 창가 자리로 예약할 수 있어서, 두번째 날 저녁은 창가 자리로 안내받아 저녁을 먹었다. 빙하가 노을로 붉게 물드는 것을 보며 저녁을 먹었다.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셨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공용공간에서 한적한 분위기를 즐긴다. 엄마와 나는 맥주를 먹으며 어스름한 밖을 구경하고, 아빠는 산책을 나간다. 사진 정리를 하고 있는 사이 산책에서 돌아온 아빠가 지금 밖에 있는 것이 백야인가 아닌가를 가지고 엄마와 말다툼을 하기 시작한다. 직원에게 물어보라는 아빠의 말에 나는 한가해 보이는 직원과 스몰토크를 하며 물어본다.
'지금 우리 부모님이 밖에 밤이 환한걸 가지고 이게 백야냐 아니냐 가지고 말다툼을 하시는데, 좀 도와줄래? 밤이 깊었는데도 엄청 어둡지 않은 것 같고. 아무래도 전문가의 의견이 좀 필요할 것 같아서 말이야.'
'확실히 이곳에서는 밤이 되도 하늘이 어둡지 않아. 하지만 백야는 해가 아예 지지 않는 걸 말하는 건데, 노르웨이에서 그런걸 보려면 이곳보다 훨씬 위로 올라가야해.'
'그러니까 밤이 밝은 건 사실이지만 백야는 아니라는 거지?'
'그렇지'
'음, 이걸 부모님한테 뭐라고 설명하지? 누가 맞다고 해야 하나?'
‘음...그건 외교적으로 해결할 문제 아닐까?’
직원의 판단이 현명하다.
옛날 느낌 물씬 나는 핀세1222에서 부모님과 보낸 즐거운 시간은, 지금도 종종 떠올리고는 하는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