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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에는 애플하우스가 없다

하지만 아이폰은 고칠 수 있어요

by 문현준

오슬로의 두번째 날. 전날 애매했던 날씨는 둘째 날이 되자 환하게 개었다. 노르웨이 여행 중반부터 나는 오슬로에서 반드시 하고 말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내 아이폰을 고치는 것이었다.




사실 아이폰 6을 정말 정말 오래 썼다. 기기값 다 내고 계속 썼으니 4년을 넘게 쓴 것 같다. 한번도 수리 하지 않고 액정도 안 깨고 잘 썼는데, 노르웨이 여행을 하는 도중에 더이상 충전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엄마 아빠 핸드폰을 빌려서 길을 찾던 나는 런던 이후 만나는 첫 대도시인 오슬로에서 아이폰을 고치기로 했다.




그런데 핸드폰 수리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어디서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옛날 이탈리아 여행때 아이폰에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볼로냐의 애플스토어를 가서 상담을 한 적이 있었기에 오슬로에서도 그렇게 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오슬로에는 애플스토어가 없었다. 아니 그래도 명색이 한 나라의 수도인데 애플스토어가 없다고? 하지만 서울에도 2018년이 되어서야 애플스토어가 생겼으니 크게 놀라울 일은 아니다.




결국 아이폰 수리 관련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인터넷을 잘 검색해서 오슬로 안에서 핸드폰 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한 업체를 찾게 되었다. 메세지를 보내 보았지만 답은 못 받았는데, 어찌되었던 간에 나는 꼭 아이폰을 고쳐야 했다. 아빠가 호텔에서 쉬시는 사이 엄마와 한번 가 보기로 했다.




맑게 갠 오슬로의 번화가




트램은 느린 속도로 시내 안을 달린다





핸드폰 수리 업체는 건물 안에 입주하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본 핸드폰 수리 업체는 건물 안에 있었다. 그리고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인터폰을 누르고 들어가야 한다.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를 하는 것에서 약간 압박이 느껴지지만, 정문에 붙어 있는 안내판을 보고 하나씩 번호를 누른다. 마지막에 통화 버튼을 누르는 것을 잊지 않는다. 통화 버튼처럼 생겼으니 통화 버튼일 것이다. 아마도 말이다.




연결음이 잠시 들리고 목소리가 들린다. 차근차근 똑바로 말을 해 본다.




'(노르웨이어)'

'어, 안녕? 인터넷 검색해 보고 왔는데, 아이폰을 고칠 수 있다고 해서.'

'아, 어서 와. 문을 열어줄테니 밀고 들어와서 엘레베이터를 타고 **호로 오면 돼.'




찰칵 소리가 나며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니 좁은 계단 위로 복도가 있고 그 오른쪽 끝에 엘레베이터가 있다. 아까 들었던 곳으로 가니, 작은 방 가운데 작업대가 있고 가운데에 직원이 앉아 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1주일 넘게 켜지 못했던 아이폰을 건네 준다.




'지금 부모님이랑 여행 중인데 1주일 전부터 갑자기 충전이 안 되고 먹통이야.’

'보통 오래 쓰면 배터리 문제일 경우가 많아.'




직원은 뒷판을 열더니 배터리를 슥슥 만져 본다.




'맞아. 만지기만 해도 배터리에 문제가 생긴 것 같네. 그래서 약간 전체적으로 휘어 있기도 하고.'

'배터리를 만져 보고서 그걸 안다고?'

'촉감이 달라서 알 수 있어. 배터리만 교체한다면 문제가 해결될거야. 오래 써서 그런지 케이블 꽂는 부위도 약간 손상되었는데, 이부분까지 교체해 줄께. 내가 마침 애플스토어에서 구입한 정품 충전기도 있는데, 이것까지 다 합쳐서 ** 정도 할꺼야.'

'생각보다 훨씬 저렴한데, 혹시 카드 결제 되니?'

'노르웨이 은행 체크카드만 되는데 혹시 있어?'

'어...아마 아닐걸. 밖에 가서 현금을 준비해올께.'

'큰 길에 가면 은행 ATM이 있어. 거기서 인출할 수 있을거야.'




오래 된 아이폰이라 그런지 수리비용도 생각보다 훨씬 저렴한 축에 속했다. 핸드폰을 수리하고 있는 직원을 뒤로하고 엄마와 함께 큰길로 나갔다. 오슬로에서는 크게 치안의 위협을 느끼지 못했지만, 그래도 ATM 앞에서는 조심해야 한다. 카드에서 돈을 뽑는 동안 엄마에게 주위를 잘 둘러봐 달라고 한 뒤 현금을 인출해 돌아왔다.




아이폰을 너무 오래 사용했기에 혹시 필요 이상으로 큰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던가 아예 수리가 불가능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 합쳐서 6만원 정도로 생각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수리해서 근심을 덜었다. 직원이 수리하는 동안에 마음 편하게 공간을 둘러본다. 전체적으로 하얀 색조의 공간이 마치 치과같게 느껴지기도 한다. 문득 그 공간의 사진을 더 찍어 남기고 싶다.




'혹시 괜찮으면 너가 작업하는 모습과 이곳의 사진을 좀 더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도 될까? 어쩌면 오슬로에 여행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수 있을것 같은데.'

'물론이지.'




1주일간 불이 꺼져있던 아이폰에 광명을 찾아 준 은인




전체적으로 차분한 색조의 공간은 치과 같은 느낌이었다




수리가 금방 끝나고 아이폰에 전원을 연결하자 아이폰에 불이 들어온다. 근 1주만에 전원이 켜지는 것을 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충전은 당장 할 수 없기에 일단 수리를 마친 뒤 아이폰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숙소로 돌아가서 핸드폰을 꽂아둔 뒤, 아빠와 함께 셋이서 구경을 나간다. 한결 맑아진 날씨에 노르웨이 왕궁을 가 보기로 했다. 중앙역 근처에서 쭉 뻗은 대로 끝에 있는 노르웨이 왕궁은 큰 규모는 아니어도 근처에 소소하게 구경할 것들이 많다.




쭉 뻗은 대로들이 격자무늬로 얽힌 노르웨이 번화가




길가에 깔린 철길을 따라 트램이 다닌다




길게 뻗은 중심대로를 쭉 걸어가다 보면 끝에 탁 트인 광장과 함께 노르웨이 왕궁이 나온다. 으리으리하고 사람들로 붐비는 왕궁도 많지만, 오슬로의 노르웨이 왕궁은 규모도 작고 사람도 덜 붐빈다. 그런 소박한 분위기가 딱 내 취향이다.




시간을 잘 맞추면 근위병 교대 행사를 볼 수 있다. 사실 근위병 교대 행사는 사람들에게 멋진 행사로 기억되는것 같지만 나에게는 엄청 멋있다고 할 것까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교대 행사때 사람들이 주위로 몰려들어 구경하는 것을 보는 것은 재미있다.




노르웨이 왕궁 근처로는 꽤 넓은 공원이 펼쳐져 있다. 나무들로 둘러싸인 쭉 뻗은 길과 함께 작은 호수들이 있다. 날이 좋은건 좋은데 볕이 너무 뜨겁다 싶으면, 그늘이 있는 벤치에 앉아서 조금 쉬는 것도 좋다.



광장 너머, 나무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노르웨이 왕궁
노르웨이 왕궁을 등지고 본 대로. 중앙역 쪽까지 시원하게 이어진다
동상을 앞에 둔 노르웨이 왕궁
반듯하고 깔끔한 모습에서 소박함이 느껴진다
시간을 잘 맞추면 교대 행사도 볼 수 있다
왕궁 주위로는 녹음이 우거진 공원이 있다




왕궁 바로 앞쪽의 번화가를 쭉 따라가다 보면 노르웨이 중심가 구경을 할 수 있다. 날씨가 맑아서 그런지 야외 좌석에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 중심가 옆에는 물웅덩이와 분수대도 있는데, 아이들이 이곳에서 수영을 하기도 한다.




철길이 깔린 격자 무늬 도로가 놓인 도시를 걸으며 사람과 트램을 구경한다. 엄마 아빠와 함께 도시의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 보기도 한다. 쭉 뻗은 도로 끝에, 집이 콕콕 박힌 언덕이 보이기도 한다. 유리에 비친 하늘과 잘 어우러진다.




왕궁 앞에서 뻗어나오는 번화가에 음식점이 즐비하다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번화가 한가운데 공원에 있는 분수대




맑은 날을 즐기는 사람들로 거리가 북적인다




건물들 사이로 멀리 보이는 언덕이 좋았다




일전에 오슬로의 전경을 둘러보기에 좋은 곳을 갔던 경험이 있어, 부모님과 함께 홀멘콜렌 스키점프대를 가기로 한다. 오슬로에서 지하철을 타고 언덕을 따라 달리다 보면 홀멘콜렌 정거장이 나온다. 원래는 스키점프대지만 스키점프를 안 할 때는 최상층에 올라가 주위 전경을 둘러볼 수 있다.




그런데 가끔은 운이 없는일도 있는걸까. 도착하고 나서 보니 홀멘콜렌 스키점프대에 올라갈 수 없다. 엘레베이터를 공사해서 꼭대기 까지 올라갈 수 없댄다. 어쩔 수 없이 스키점프대 주위를 구경한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홀멘콜렌 스키점프대 자체가 높은 곳에 있어서, 어쨌든 고지대에서 내려다보는 주위 전경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다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빠는 스키점프대 앞에 있는 3D 체험 스키점프 놀이기구에 흥미가 생기셨다. 돈 내고 타는,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그것에 어떤 구미가 당기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좌우지간 아빠는 짧은 체험을 마치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내려오셨다.




스키점프대에 올라가진 못했지만 높은 곳에서 둘러보는 전경도 나름 괜찮다. 스키를 이용해 만들어 둔 인상적인 의자 너머로, 오슬로의 전경이 보인다. 저녁이 되자 몰려든 구름이 해를 가리며 생긴 빛의 대조가 더욱 멋지다.




공사로 인해 아쉽게도 올라갈 수 없었던 스키 점프대




하지만 스키점프대 자체가 높은 곳에 있어서 주위 전망을 둘러보기 좋다




저 멀리 보이는 오슬로와 근처 바다의 전경




짙은 구름이 드러낸 빛줄기




스키점프대 구경을 마치고, 원래 부모님과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오슬로에 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봤을 비겔란 공원인데, 나도 피곤함을 많이 느꼈고 부모님도 피곤한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숙소 근처로 돌아왔다.




저녁은 근처의 피자집에서 먹기로 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근처에 괜찮아 보이는 피자집이 있는 것을 알게 되어 간 것인데, 오슬로 시내의 음식점 치고는 가격이 저렴한 편이라 좋았다. 아빠가 올리브를 먹고 싶어하셔서 올리브 들어간 샐러드를 주문하려 했더니 올리브를 조금 접시에 담아서 내주는 등 환대가 인상깊었던 좋은 곳이었다.




피자를 다 먹고 뭔가 부족하여 사장에게 추천을 받은 피자가 있었는데, 단호박 무스가 들어간 피자였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피자가 있어. 우리는 고구마를 넣어서 만들어, 하며 했던 짧은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사람이 많이 붐비는 시간이 지나고, 한결 나아진 피자집 밖




피자에는 역시 맥주다




노르웨이 음식점 치고는 합리적이었던 피자와 함께, 가게의 따스한 분위기가 좋았다




그렇게 오슬로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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