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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친구 만나고 빌린 돈 받기

돈은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때 빌려줘야 한다

by 문현준

여유롭게 천천히 돌아봤지만 떠날 때가 되자 아쉬워진 노르웨이. 언젠가 나중에 다시 올 수 있기를 기원하며 부모님과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 탑승 게이트가 바뀌는 바람에 여기저기 정신없이 다니다가 비행기를 타고 잠시 후, 오슬로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파리에 도착한다.




revised_IMG_8186.jpg 오슬로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금방 프랑스에 도착한다




오슬로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를 탔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몰라도, 그 어떤 입국심사도 거치지 않는 것 같은 거의 지하철 환승 수준의 통로를 거치고 나니 캐리어를 찾는다. 끝났다고? 그 흔한 질문도 없나? 역시 평등과 박애의 나라 답다.




캐리어를 끌고 공항에서 파리로 가기 위해 이동하는 사이, 양 옆으로 열리는 개찰구를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앞쪽에 있는 어떤 외국인이 캐리어를 끌고 지나가다가 개찰구 사이에 가방이 끼어서 빼느라 안간힘을 쓴다. 부모님은 도와주는게 낫겠다 하지만, 나는 워낙 들은 것이 많아 그냥 차분히 기다린다. 그러자 어떤 외국인이 문을 붙잡고 가방 빼는 것을 도와준다. 나를 보는 표정이 좀 도와줘라 좀, 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공항에서 파리로 이동하는 것은 예약제 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있고 공항철도를 이용하는 것도 있었는데, 나는 공항철도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사실 공항철도에 대해 검색했을 때 분위기가 한국 사람들에게는 익숙치 않고 낮설음을 느낄 수 있다는 말에 걱정했지만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 하고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파리 외곽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이 좁은 열차에 몰려드는 사이, 나는 부모님과 함께 캐리어 하나씩을 붙들어 매고 눈알만 굴리며 조용히 아무 일 없기를 바라고 있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고 일반적으로 그러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예약제 버스를 타라고 권해야겠다 싶었다.




파리는 교환학생 하던 중 두 번 와 본 적이 있었기에 부모님을 모시고 돌아다니기에 어색한 것은 없었다. 아주 옛날 한국의 종이 표를 떠올리게 하는 지하철 표를 한가득 끊은 뒤 숙소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루브르 박물관 근처의 숙소에 가기 위해 역 밖으로 나오자, 퍼레이드가 지나갔는지 길거리에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파리에 있었던 이틀 중 하루는 프랑스 독립기념일이었고, 하루는 결국 프랑스가 우승한 러시아 월드컵 결승전이 있는 날이었다. 온갖 흉흉한 소문을 들어온 나는 걱정이 많아졌다.




revised_IMG_8193.jpg 남은 숙박비를 모두 털어 예약했던, 마지막 여정 파리의 숙소




숙소에 짐을 맡겨놓은 뒤 일단 근처로 나와서 밥을 먹기로 한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음식점에 들어가 밥을 먹는다. 그 유명하다는 비프 브루기뇽을 처음 먹어 본 곳이었는데, 내가 생각한 것과는 약간 다른 맛이었다. 먹으면서 중간중간 가게 안 다른 손님이 데려왔을 검은 개를 구경했다. 개는 자는 듯 아니면 가만히 쉬는 듯, 치렁치렁한 검은 털을 바닥에 내리고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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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ed_IMG_8203.jpg 한적했던 음식점 안과 나름 소박했던 음식들




revised_IMG_8200.jpg 개는 작은 소리 한번 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밥을 먹고 나서 부모님과 함께 파리를 구경한다. 멋들어진 건물들을 지나 다리 위로 올라가니, 아래쪽으로 사람들을 가득 태운 여객선이 지나다닌다. 다리 구경을 하고 루브르 박물관 쪽으로 가 보니 인파로 바글거린다. 일단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가지는 않고, 근처를 돌아보면서 구경만 하기로 했다.




구경을 하다 보니 몰려든 관광객 사이에서 길거리에 좌판을 깔아놓고 잡동사니를 파는 행상인들이 눈에 들어온다. 길거리에 천막을 펼쳐놓고 물건을 팔다가 갑자기 천막 째로 물건을 싸들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왜 갑자기 사라졌나 했더니, 경찰 옷을 입은 사람들이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근처에서 어슬렁거린다. 역시 먹고살기는 쉽지 않다.



revised_DSC06185.jpg 퐁뇌프 다리 방향의 전경. 사람을 가득 태운 여객선이 돌아다닌다




revised_DSC06186.jpg 루브르 박물관 쪽으로 가기 위해 통과하는 건물 사이의 통로




revised_DSC06188.jpg 상징적인 유리 피라미드 주위에 몰려 있는 관광객들, 그리고 잡상인들




revised_DSC06191.jpg 볕은 강했지만 좋은 날씨는 사진을 찍기 좋다




루브르 박물관과 이어지는 공원으로 가니 가로수가 줄지어 서 있다. 가지런히 정리된 나뭇가지의 가로수들 사이로 통행로가 놓여 있고, 사람들은 벤치에 앉아서 쉬며 시간을 보낸다. 부모님이 기념촬영을 하는 사이 나는 부모님을 찍어서 사진으로 남긴다. 한여름의 날씨는 맑아서 매우 더웠지만 못 걸어다닐 정도는 아니어서 부모님과 함께 다닐 수 있었다.




공원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박물관에서는 온갖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는데 이 작은 공간에는 묘하게 사람이 없다. 아니면 정말 운 좋게 고요한 순간에 찾아온 걸까.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도시락을 까 먹거나 음료를 마시면서 먼 곳을 구경하고, 나는 길가에 흘러나온 물에 모여든 비둘기 두 마리를 구경한다. 더운 날씨에 날개를 퍼덕이며 멱을 감는 새들이 시원해 보인다.



revised_DSC06198.jpg 구름과 가로수가 어우러진 공원




revised_DSC06199.jpg 탁 트인 전경이 매력적이다




revised_DSC06203.jpg 고인 물웅덩이에서 몸을 씻는 비둘기들




revised_DSC06204.jpg 가로수와 보행로 옆쪽으로는 꽃과 동상이 가득한 공원이 있다




revised_IMG_8212.jpg 빼놓을 수 없는 기념 촬영




맨 처음 파리에 와서 루브르 박물관을 보고 샹젤리제 거리로 갔었다. 일직선으로 쭉 되어 있는데다가 굵직한 관광지들을 모두 들릴 수 있기에 걸어가기 좋았다. 그때 맨 처음 눈에 들어온 에펠탑을 보고 묘한 기분을 느꼈다. 사실 알고만 있던 것을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여려번 경험한 것이었지만, 그 느낌은 좀 더 특별했다. 유럽 하면 떠올리는 것이 에펠탑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공원을 걸으며 시야에 들어온 에펠탑을 봤을 때, 그때 그 기분을 부모님도 느끼면 좋겠다 생각했다. 공원을 따라 쭉 걷고 큰길도 걷다 보면, 강 너머로 에펠탑이 보인다. 에펠탑을 가기 위해서는 꽤 걸어야 하지만 샹젤리제 거리를 통과해서 간다면 중간에 볼것이 많아 지루하지 않다.




revised_DSC06209.jpg 알렉상드르 3세 다리 너머로 보이는 에펠탑




더위 때문에 중간에 쉬기도 했지만, 어쨌든 무사히 샹젤리제 거리에 도착하고 나서 중간의 카페에 들린다. 옛날에 일하며 만난 프랑스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파리로 돌아갈 때 내가 돈을 조금 빌려 줬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중에 유럽 가서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고민 끝에 돈을 빌려 주었고, 돈도 받을 겸 얼굴도 볼 겸 파리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카페에 자리를 잡고 조금 쉬고 있으니 친구가 나타난다. 키는 나와 비슷하지만 훨씬 마른 체형이다. 분명히 한국에 있을 때는 긴 머리였는데 파리로 돌아오니 다시 구불구불한 머리를 올려 묶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는 너무 많이 주목을 받아서 일부러 머리를 길게 다듬었다고 했었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만나자 마자 지폐를 내 손에 꼭 쥐어주며 말한다. '우리 엄마가 만나자 마자 이것부터 주라고 했어.'




한편 엄마는 내가 일하는 곳에 몇 번 와서 친구를 만나서 알고 있기에 인사를 하고, 한번도 만나지 못한 아빠는 어안이 벙벙해서 물어본다. '여자애였니?' '그럼 남자인 줄 알았어요?' 나는 농담조로 대답하며 웃어 넘긴다.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친구가 있으니 마음이 든든해져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보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았던 기억도 있지만, 어쨋든 그 나라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도와준다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엄마와 아빠에게 필요한 선물을 사러 샹젤리제의 한 가게에서 향수를 사러 가기도 했는데, 친구가 그 가게에 들어가면 향수 냄새 때문에 코가 마비될 거라고 말하는 것이 허풍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빠가 찾는 물건은 사지 못했지만, 향수로 온 몸이 코팅되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는 알게 되었다.




온갖 상점들이 가득한 샹젤리제 거리를 구경하고 나서, 샹젤리제 거리 끝에 있는 개선문으로 간다. 개선문 위쪽에는 전망대가 있어서 올라가 주위를 둘러볼 수 있다. 엘레베이터 없는 좁은 계단을 헉헉대며 올라가니, 확 뻗은 파리의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친구에게 미리 전에 부탁한 것이 있었는데, 나는 부모님 사진을 찍느라 바쁠테니 내 사진도 좀 찍어달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받은 사진을 보니 부탁을 잘 들어준 것 같아서 고마웠다.




사진을 찍다 보니 멀리 있는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나씩 집으면서 저건 뭐고 어떤건 뭔지 이야기해본다. 친구가 가만히 듣더니 파리에 사는 자기보다 더 잘 안다면서, 자긴 하나도 몰랐다면서 신기해한다.




revised_DSC06225.jpg 샹젤리제 거리 끝에 있는 개선문. 기념일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revised_DSC06214.jpg 파리에서 조금 떨어진 라데팡스 방향




revised_DSC06216.jpg 방금 전까지 걸어온 샹젤리제 거리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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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ed_DSC06218.jpg 에펠탑과 몽파르나스 타워가 보인다




revised_DSC06222.jpg 개선문 위에서 본 파리 전경, 몽마르뜨 언덕 방향




revised_DSC06217.jpg 사진을 찍는 친구와 상부상조 했던 즐거운 기억




개선문에서 내려와 에펠탑 쪽으로 가 본다. 독립기념일 밤 에펠탑 밑에서 불꽃놀이를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에펠탑 밑으로는 갈 수 없게 되어 있다. 불꽃놀이 구경을 하려는 것인지 수많은 사람들이 바닥에 앉아 진을 치고 있다. 아무래도 에펠탑에 가까이 갈 수는 없을 것 같아, 근처를 구경하기만 한다.




revised_DSC06227.jpg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대낮부터 기다리는 사람들




이날 저녁은 파리에서 유명한 코스요리를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지금 한국에서 생각해 봐도 엄청나게 비싼 곳에 저녁 예약을 잡았다. 친구는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하고, 우리는 저녁 시간에 맞춰서 음식점으로 갔다. 알고 보니 음식점이 고급 호텔의 지하에 있는 곳이었다.




revised_IMG_8224.jpg 호텔 로비에서 식사 시간이 될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그때 나는 그런 음식점을 가 본 것이 처음이었고 하물며 외국에서 가 본 것도 처음이었다. 예약을 하고 왔다고 어리둥절하며 자리에 앉으니, 갑자기 음식 두 가지를 내어 주었다. 뭐지 이거 계산해야 하는건가, 하면서 일단 먹으니 곧 무슨 전화번호부 같은 메뉴판을 가져다 주었다. 자세히 보니 술만 적혀 있다. 메뉴판을 좀 가져다 달라고 하니 메뉴판을 준다. 두께가 술 메뉴판의 반의 반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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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자 내어 줬던 환영 음식 두 가지




미리 인터넷 검색을 해 보고 갔기에 코스 요리와 함께 와인이 나오는 메뉴를 주문하고 술 못 마시는 아빠를 위해 무알콜 칵테일도 주문했다. 맨 처음에 앉았던 자리가 정원 같은 곳에 있는 곳이어서 안쪽에 앉아도 되냐 물으니, 내가 입고 있던 반바지가 원래 드레스코드에 맞지 않지만 괜찮을 거라고 이야기해줘 안쪽으로 옮겼다.




IMG_8227.JPG 내가 입었던 반바지가 드레스코드에 맞지 않았지만, 다행히 직원의 배려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원래 저녁식사가 끝나고 나서 에펠탑 불꽃놀이를 먼 발치에서 구경하려는 계획에, 식사가 빨리 끝나서 시간이 남을까 걱정했었다. 그런데 코스 요리를 천천히 먹으면서 술을 마시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서, 나중에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번도 해 보지 못한 것을 하는 것은 좋은 경험이었지만 나는 요리에 대해서 이것저것이 많이 궁금했는데 호텔 규모와 음식점 가격을 생각해 본다면 직원 중 영어를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직원이 단 한 명 밖에 없다는 것은 아쉬웠다. 그래서 나중에 음식에 대해 물어볼 것이 있어 직원을 부르면 영어 하는 직원을 보내주곤 했다.




마지막에 배 터져 죽을 지경이 되서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작은 까눌레를 하나씩 포장해 줬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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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8237.JPG 살면서 처음으로 부모님과 먹은, 격식 있는 코스 요리들




에펠탑의 불꽃놀이가 시작된다고 했던 시간을 촉박하게 앞두고 나왔기에, 허겁지겁 에펠탑이 보이는 곳으로 갔다. 에펠탑이 시야에 보이기 시작했을 때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불꽃과 함께 사람들의 핸드폰 스크린이 시야에 무수히 보였다.




IMG_8242.JPG 몰려든 인파, 그리고 에펠탑의 불꽃놀이




짧은 불꽃놀이가 끝나자 사람들이 한번에 웅성거리며 이동하기 시작했는데, 얼마 안 남은 숙소로 걸어가는 동안 나는 극도의 긴장상태였다. 사람들이 하도 많다 보니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어서 매우 불안했다. 부모님을 꽉 붙잡고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걱정하면서 걸어갔다. 거리는 차와 사람으로 뒤섞여서 어지러웠다.




IMG_8247.JPG 불꽃놀이를 보고 돌아가는 길




흥겨운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무슨 일이 있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내가 걱정했던 일은 없었다.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를 누비며 열심히 걷다 보니, 어느새 숙소에 도착해 있었다.




파리의 첫번째 날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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