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감에 항상 따라붙는 것은, 아쉬움이다
길었던 여정의 마지막 날 아침, 시간이 되어도 아침식사가 올라오지 않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나가보니 직원이 늦었다 한다. 뭐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 본다. 부모님과 함께 열심히 아침밥을 뱃속에 우겨넣고 짐을 챙겨 내려간다. 오후 늦은 비행기라 체크아웃 이후 시간이 조금 있었다.
혹시라도 에펠탑에 가면 지금이라도 올라가 볼 수 있을까 싶어 가 보았지만, 혹시나가 역시나 사람으로 가득 차서 못 올라갈 것 같다.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고 루브르 박물관에 가기로 한다. 다행히 루브르 박물관은 긴 대기 시간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더 좋은 것은,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어서 부모님 두 분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좋은 것은, 그 동안에 나는 쉴 수 있다는 것이다.
모나리자를 보고 싶다는 부모님에게 모나리자 위치를 찾아 드린다. 기대했던 것만큼 좋은 경험은 아닐수도 있겠다 싶지만 별 말은 하지 않기로 하고, 몇 시간 뒤에 보자고만 말씀드렸다.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부모님을 뒤로 하고 나는 루브르에 있는 별다방으로 갔다. 사람으로 가득 차 있지만 다행이 운 좋게 자리를 하나 발견해서, 라떼와 브라우니 하나를 주문했다. 혼자 있으니 온 몸의 긴장이 풀리는 느낌에 불편한 의자 위에서 늘어진다.
적당히 쉬다가 부모님을 만난다. 모나리자는 어떠셨나고 물으니 손을 내저으며 말도 하지 말라고 한다. 사람이 무슨 도떼기 시장마냥 몰려있어서 그림도 제대로 못 본다면서 너무 시끄럽고 번잡하다고 투덜거리신다. 딱 내가 이전에 경험했던 그 모습이 예상대로다. 부모님에게는 오르셰 미술관이 훨씬 더 취향이었던 모양이다. 짧은 시간 구경하기에 루브르 박물관은 감당못할 정도로 거대하기도 하고.
루브르 구경까지 마친 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간다. 맡겨두었던 짐을 찾은 뒤 택시를 불러서 공항 가는 버스 타는 곳까지 간다. 버스를 어디서 타는지는 알아 두었는데, 구체적으로 정류장이 어디인지는 모르는 상태였다. 많지는 않아도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 곳에 있다보니 또 조심할 것이 많다. 금방 보고 올테니 자리에 딱 계시라고 말한 뒤 잠깐 근처를 찾고 돌아오니, 두 분은 내가 계시라고 했던 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고 그 사이에 싸웠는지 표정이 좋지 않다.
알고 보니 엄마가 매고 있던 가방이 열린 상태였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걸 세 번이나 지적해 준 모양이었다. 세 번째 사람은 아예 엄마를 붙잡고 가방 열린 것을 알려줬다고 한다. 엄마가 짧은 영어로 고맙다고 하는 사이, 아빠는 주위 사람들이 버스 타는 곳을 알려주려고 하는 것 아니냐며 왜 말을 안 듣고 마음대로 돌아다니냐며 답답해했다고 한다. 엄마 가방은 왜 열려 있는지 모르겠고 아빠는 뭘 믿고 주위 사람들 말을 듣고 따라가겠다고 생각한 건지도 모르겠다. 이해 안 되는 것들 투성이인 것이 인생살이 같다.
결국 감정 상한 부모님과 그런 부모님을 이해 못 하는 나 세 명이서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간다. 그런데 버스 안은 한여름인데도 에어컨을 틀지 않아서 정말 찌는 듯한 더위가 엄습한다. 외곽 도로를 타고 파리를 빠져나와 공항으로 가는 동안 버스 안에서 정말 땀을 비오듯이 흘리고 나니, 공항에 도착할 때의 해방감이 에어컨같이 느껴질 정도이다.
공항에 도착해 짐을 붙이고 나서 비행기 타기 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다. 비싼 공항 밥을 먹으며 여행간에 있었던 일들을 다시 이야기 나눠본다. 한번 말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절대 아니지만 여행간에 있었던 섭섭한 일이나 생각 같은 생각들도 이야기 나눠본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역시 부모님 두 분을 모시고 여행가는 것은 이렇게 고달플수가 없구나 하고 다시 생각한다.
좀 쉬다 보니 비행기 탑승 시간이 되어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른다. 온 가족 세 명이 나란히 앉는 자리를 골랐는데 아빠는 엔진소리가 들린다면서 다른 자리로 바꿔달라고 한다. 비행기에서 엔진소리가 안 들리면 그건 추락하는 비행기 아니냐고 말하지만 말이 전혀 먹히지 않고 말릴 수도 없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있는다. 아빠는 더 나은 자리를 찾아 떠나고 나는 창가 자리에 엄마와 함께 계속 앉았다.
비행 시간은 길다. 가끔 창문을 내다보면 비행기에서만 볼 수 있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옆에서 의자에 앉아 조는 엄마 사진도 찍고 기내식도 챙겨 먹으면서 잠 한숨 안자고 끝까지 간다.
그렇게 10 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인천에 도착한다. 비행기에서 우르르 내려 지하철 개찰구 같은 입국심사를 통과해 짐을 찾으러 간다. 문제 없이 한 명당 캐리어 하나씩을 끌고 나오니, 북적거리는 공항이다. 한국어가 적힌 공항과 들려오는 한국어들.
표를 예약하고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린다. 마치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일순간인 것처럼, 버스를 타고 집까지 가는 것이 한 호흡에 이루어지는 듯 하다. 몇 주간 오지 않았던 집에 도착하고 환기부터 한다. 저녁에 탄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아직 대낮이지만 졸리지 않다. 하지만 밤이 되고 잘 시간이 되자, 마치 정신을 잃는 듯 잠에 빠져든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