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여행이 가지는 특별한 의미
독일 교환학생 하던 때, 부모님이 유럽에 오셔서 같이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내가 주도적으로 부모님을 모시며 여행을 한 적도 처음이었고, 하물며 지구 반대편에서 그렇게 한 적도 처음이었다. 살면서 겪었던 첫 효도 여행을 아주 호되게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쉬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부모님 두 분의 성향이 각기 다른데 두 사람이 모두 즐거운 여행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느 한 쪽은 참거나 화가 나거나 둘 중에 하나밖에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좌우지간 나도 여행을 간 것인데 내가 여행을 즐기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나는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여행을 돕고 있는 느낌 뿐이었다.
나는 여행 다니면서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이지만 그때 부모님과 여행 다녔을 때를 보면 찍어둔 사진이 거의 없다. 사진 찍을 여유조차도 없었던 것이, 내 첫 효도 여행의 현주소였다. 내 첫 효도 여행의 감상은, 부모님과 함께 베를린 공항에서 헤어질 때 내가 했던 생각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다. 괜찮았지만 앞으로 다시는 안 한다. 그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서 묘하게 한 장면이 떠올랐다. 독일 옥토버페스트에 방문했을 때 여러 조건이 좋지 않았다. 비는 왔고, 시간은 없었고, 교통에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낭비했으며, 미리 알아봤으면 해결되는 문제로 길을 헤맸다. 어찌어찌 옥토버페스트 행사를 가서, 한 맥주 회사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천막에 들어갔었다. 거대한 박람회장 규모의 한 가운데 높은 단상에 밴드가 있고, 주위로 사람들이 끝없이 들어앉아 맥주를 마시며 노래를 불렀다.
동그래진 눈으로, 인생에서 무언가를 처음으로 보는 듯한 엄마의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어쩌면 그 장면을 곱씹으면서 나는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비록 힘들었지만, 나중에 다시 한번 가 보면 좋겠다고. 그땐 좀 더 준비를 잘 해서 더 즐거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물론 계획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고, 준비란 부족하라고 있는 것이다. 국적기를 고집하며 예산을 부풀리는 아빠의 선택과 일정 변경에 맞춰야만 하는 상황이, 첫 효도여행에서 질리도록 겪은 추억이 다시 떠오르는 듯했다.
게다가 부모님 두 분의 성향이 다르다 보니 한 쪽에 맞춰서 진행하다 보면 다른 한 쪽에는 맞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양 쪽을 적당히 맞추다 보면 내 쪽은 없었다. 나는 부모님과 여행을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해야만 했다.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가다 보니 일정을 수비적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는 것에서 개인적인 아쉬움도 많았다. 부모님을 모시고 위험부담이 있는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그렇기에 못 가본 곳보다는 익숙한 안정성을 우선해야만 했다. 내가 아예 모르는 곳에 부모님 두 분을 모시고 가는 것보다는, 좀 더 그나마 알고 있는 곳에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것이 나을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나 또한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곳보다는 이전에 가 본 곳들 위주로 가야만 했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때는, 지구 반대편까지 갔는데도 서로 성향차이로 다투는 모습을 보게 될 때였다. 물론 사람이란 다툴 수밖에 없고 여행을 가면 원래 더 다투게 되지만, 굳이 이런데에 와서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나도 감정을 잘 다스린다고 생각했지만 여행 막바지가 되어서는 흐트러지는 것 같았다. 여행 중이고, 부모님을 모시고 왔고, 언제 올지 모르는 소중한 경험임을 알고 마음을 추스러 왔음에도 그랬다. 그래서 여행 막바지에 짧은 시간이나마, 무거운 감정으로 도시의 야경을 내려다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여행 이야기를 종종 부모님에게 할 때마다 부모님은 말씀하신다. 그래도 너가 있어서 그 멀리까지 가서 좋은 구경 하고 왔다고. 너가 아니면 절대 갈 수 없는 곳을 갔다 와서 좋았다 하신다.
생각해 보면 정말 그러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정리하지 않으면 부모님은 여행을 주도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내가 있어서 부모님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경험을 하신 것이다. 단 한번도 가 보지 못한 곳에서, 단 한번도 해 보지 못한 것을 하며, 단 한 번도 만들지 못한 추억을 만드는 것.
내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부모님에게 받아왔던 것이 그런 것 아닐까.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생에서 부모님의 도움으로 하나씩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해 나가던 것. 여태까지 내가 받아온 것을, 여행 과정에서 부모님께 돌려드린 것은 아닌가 싶었다.
앞으로 또 언제 여행을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여행을 간다면 내가 겪었던 문제들은 다시 떠오를 것이다. 아무리 해도 부족한 준비, 아무리 피하려 해도 나타나는 문제, 아무리 막으려 해도 터져나오는 다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다시 가고 싶다. 좀 더 많은 준비를 하고,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무언가를 처음 경험하거나 봤을 때 떠오르던 그 부모님의 얼굴을, 다시 보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