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카약은 생각보다 힘들다

가끔은 돈 내고 고생하는 것도 괜찮을까?

by 문현준

옛날 플롬에 왔을 때, 거대한 배에 올라 계곡을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카약을 타고 피오르드 구경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땐 여유가 없어서 하지 못했지만 부모님과 함께 방문했을 때는 아주 좋은 기회임이 분명했다. 자연을 한결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테니까.

걱정되는 것은 날씨였다. 우중충한 날에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카약 타는 것은 누가 생각해도 유쾌한 경험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날씨 좋은 날을 예측할 수도 없었다. 프로그램 신청 홈페이지에서 말하길, 좋은 날씨를 예측하는 법은 자기들도 모르고 그런 방법을 찾으면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나.



하지만 구름은 좀 껴도 푸른 하늘이 군데군데 보이는 것이 썩 나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 전날 저녁 미리 카약 신청을 해 두고 오전에는 카페 구경을 갔다. 플롬은 아주 작은 마을이긴 하지만 직접 빵을 굽는 카페가 하나 있었다. 참새가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고 흥미가 생겨서, 아침을 먹고 조금 늦게 나가 케이크와 커피를 먹으며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오후에 비교하면 오전의 날씨가 훨씬 좋아서, 적당한 구름과 함께 반짝거리는 햇살이 보였다. 카페가 있는 건물 위쪽 처마에는 참새가 줄줄이 앉아 있었다. 새한테 먹이를 주지 말라는 표지판이 있었지만 그래도 참새들은 카페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갓 구운 빵과 케이크, 커피를 파는 플롬 베이커리



초코 케이크와 커피



앉아 있어도 참새가 맞은편 의자 위로 날아와 앉는다




한국 참새는 방앗간에 가고 노르웨이 참새는 빵집에 간다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갑자기 날씨가 급변한다. 볕이 환하게 보이던 날씨가 갑자기 어디에서 몰려온 구름으로 애매하게 흐려진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카약 타는 곳에 간다. 플롬에서 걸어가면 바로 있는 해변 옆쪽 끝 창고가 집결 장소이다. 가면서 뒤를 돌아보니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이 꽤 커 보인다.





저 멀리 보이는 카약 체험 집결 장소



한층 더 커 보이는 거대한 크루즈선과 해변



구름이 몰려온 날씨는 약간 아쉬웠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




시간이 되자 카약 프로그램을 신청한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부모님과 나, 미국인 한 명, 스코틀랜드인 부부 두 명이 있다. 강사와 함께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한다. 말해야 하는 것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신청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맛.



자기소개가 끝나고 나면 창고 안에서 개인 옷에 알맞는 레포츠용 전신 수영복을 입는다. 마치 잠수복 같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입고 있는 옷 위로 입을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옷을 다 벗을 필요는 없다. 창고 안에는 각종 카약 도구가 정리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복장을 갖추고 나면, 본격적으로 카약을 타기에 앞서서 해변 위에다가 카약을 올려놓고 노 젓는 연습과 안전교육을 한다. 모래밭 위에서 노 젓는 흉내를 내는 것은 이상하지만 안전교육은 꽤 중요하다. 가령 만약 물 위에서 카약이 쓰러지거나 할 경우, 물 밖으로 머리를 못 내미는 상태에서 도와달라고 할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같은 것들이다. 물 밖으로 손을 꺼내서 카약을 빠르게 두드리라고 하는데, 실제로 뒤집어져서 머리가 거꾸로 물 속에 박히면 그런거 할 정신이 있을까 싶긴 하다.



여하튼 간단한 교육을 마치고 나면 드디어 카약을 물에 띄우고 노를 저어 나아간다. 강사는 혼자서 1인용 카약을 타고, 참가자들은 2인용 카약을 탄다. 스코틀랜드 부부가 같이 타고, 부모님, 나와 미국인 친구가 함께 팀을 이뤘다. 출렁이는 물살이 카약에 닿아 부셔지는 것을 보며 노를 한 20초 정도 저어 보니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한강 오리배 같은게 아니라 고무보트에 가깝다는 것을. 영화에서 보면 근육질 군인들이 타고 다니는 그 고무보트.



역시 뭐든지 간에 구경하는 것과 직접 하는 것은 다르다. 일단 노 젓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다. 박자를 잘 맞춰 저어줘야 하는데다가 동시에 두 명이 타기에 합을 잘 맞추지 못하면 한 명이 힘들어진다. 게다가 사진을 찍는 것도 생각보다 편하지 않다. 물에 젖으면 안 되는 귀중품은 비닐백에 넣어 카누 안 공간에 따로 수납하고, 핸드폰은 방수팩에 넣어 목에 걸고 있을 수 있지만 사진 찍기가 쉽지 않다. 천천히 여유롭게 주위를 구경하며 사진을 찍고 시간을 보내는 것은 한강 오리배에서는 가능하겠지만 여기선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하지만 어차피 사진을 못 찍을 것 포기하고 그냥 노를 열심히 저으면서 주위를 구경한다. 젓다 보니 조금 여유가 생겨서 같이 탄 미국인과 담소도 나눈다. 그러는 사이 주위를 둘러보니 스코틀랜드 부부는 카누를 무슨 땅에서 커플 자전거 타고다니는 것 마냥 편하게 타고 다니고, 엄마 아빠가 탄 카약은 속도가 느려져서 뒤에서 천천히 오고 있다.



노를 열심히 저어서 조금 가고 나니 작은 해변이 나왔는데, 이곳에 카약을 올려놓고 다시 땅을 밟는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은 듯한 곳에 나 있는 작은 오솔길을 통해 언덕을 올라간다. 바다 건너편에서 맞은편 해안선을 바라보고 있으니, 피오르드를 배 위에서나 전망대 위에서 보는 것과는 색다른 느낌이다. 강사는 오솔길을 올라가며 노르웨이 전설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다. 아름다운 외모로 사람들을 꾀어내는 요정에 대한 것이다.




작은 해안에 상륙해 카약을 올려놓고 걸어 올라간다



사람의 손길이 덜 닿은 듯한 들판



오솔길에서 본 풍경은 여객선 위에서 보는 것과 다른 느낌이다



오솔길을 끝까지 올라가면 작은 폭포와 생긴 물웅덩이가 나온다. 물웅덩이가 꽤 커서 다이빙도 할 수 있다. 미국 친구는 잠수복 안에 다른 옷을 입어두지 않았기에 마음 편하게 물에 뛰어들 수 있었다. 꽤 수심이 깊은지 짙은 물 속으로 짙은 푸른 색이 보인다. 이곳에서 가져온 간단한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올라온 오솔길을 도로 걸어 내려간다. 돌아오는 길에 부모님의 카약은 속도가 한층 더 느려져서, 결국 강사가 앞에서 줄로 끌어주었다. 강사의 카약은 훨씬 작은데도 사람 두명이 탄 더 큰 카약을 가볍게 끌고 간다. 역시 전문가는 다르다.



작은 폭포와 그 앞의 큰 물웅덩이


짙은 녹빛이 꽤 깊어 보인다



구경을 다 마치고 나면 다시 카누를 타기 위해 내려온다



짧고 힘들었지만 나름 괜찮은 경험이 되었던 시간을 마치고, 복장을 정리하며 창고를 다시 한번 구경한다. 강사와 조금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알고 보니 강사는 어릴 적에 한국에서 입양되어 노르웨이에서 자란 사람이라고 한다. 친부모님을 찾기 위해 한국으로 가볼까 생각중이라 한다. 좋은 경험 하게 해 주어 고맙다고, 부모님을 찾길 바란다며 인사를 건낸다. 뒤 돌아서 창고로 돌아가는 강사의 뒷모습이 약간 특별하게 느껴졌다.


다양한 카누 물품으로 가득찬 창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오래 기억에 남던 뒷모습


이날이 플롬에서의 마지막 저녁이었는데, 항상 직접 해 먹거나 간단하게 조달해 먹는 편이었기에 이번엔 음식점에서 저녁을 사 먹어 보기로 했다. 닭고기 요리와 생선 수프, 피자. 다른건 모르겠지만 이날 나와 부모님이 노 젓느라 힘을 열심히 써서 그런지 음식이 아주 맛있다. 천천히 시간을 보내며 주차장의 갈매기를 구경한다. 어디선가 나타난 갈매기가 몸 만한 피자 조각을 집어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열심히 몸을 쓰고 먹는 음식은 항상 맛있다



갈매기는 결국 피자를 집어갔을까?



계속해서 노를 저어댄 탓에 겨드랑이 근육이 약간 뻐근해 짐을 느꼈지만, 가끔은 돈 내고 해 볼 만한 고생도 있는 법이다. 숙소로 돌아와 보니 날씨가 다시 맑아졌다. 저녁노을이 높은 산 위쪽에 내린 것을 볼 수 있었다.



산을 붉게 물들이는 저녁의 노을


플롬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