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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Sep 03. 2024

직접 하기엔 너무 힘든 도배

하지만 돈 쓰기엔 너무 큰 금액이었다

일전에 알아봤던 도배 시공 견적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높아서, 이 돈으로 차라리 친구와 하고 점심 저녁으로 맛있는 것 사먹으면서 하는 것이 낫지 않겠나 싶은 정도였다. 물론 비전문가인 내가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금액 차이가 너무 큰 나머지 한번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부 공간 인테리어를 준비하면서 도배를 셀프로 하기 위해 이것 저것 알아보았었다. 비닐을 뜯어서 바로 벽에다가 붙일 수 있는 풀 바른 벽지도 사고, 석고텍스의 사이에 붙이는 종이 띠도 사고, 거기에다가 도배 하는 유튜브 영상들도 많이 찾아 보았다. 그때 같이 도배 작업을 하기로 한 친구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었다. 도배 뭐 그거 별거 있겠어? 20평 정도 되는 정사각형 공간 절반정도 도배 하는데 하루 정도면 충분하지 않으려나, 종이 슥슥 바르면 끝인데. 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오빠 미쳤어요?




일단 친구가 도착하기 전 내가 한번 혼자서 도배를 해 볼 생각으로 벽지를 발라 보기로 했다. 풀 바른 벽지는 비닐봉투 안에 풀 바른 벽지가 돌돌 말려 있었고, 이것을 풀어서 붙이기만 하면 되었다. 벽 정리하고 풀 바르고 종이 바르는 그런 과정에 비하면 훨씬 편리한 것이니, 스티커를 붙이는 것에 가깝게 느껴졌다.




다만 벽지를 바르기 전에 벽의 이음새 부분에 리본처럼 생긴 네바리 라는 것을 붙여야 했는데, 얆은 부직포 같은 것을 한번 더 바르는 것이었다. 이게 꼭 필요할까 싶어서 건너뛸까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붙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친구가 오기 전 미리 붙여 두었다. 붙이다가 부족해서 비품 가게 문 닫기 직전에 전철 타고 가서 사다가 다시 붙이는 피곤한 일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 다 하고 안 것이지만, 네바리를 붙이니 이음새 부분의 단차나 피스 자국이 많이 가려져서, 확실히 하는 것이 나았다.




여하튼, 도배 밑작업은 모두 다 하고 혼자서 벽지를 붙여 보았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그래도 있다가 친구와 같이 하기로 하고, 상대적으로 눈에 덜 보일 것 같은 부분의 벽을 붙여 보았다. 도배는 커녕 못질도 많이 안 해본 나에게 벽에다 종이를 붙이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벽은 수월하게 붙일 수 있었다. 다만 맨 처음에는 경험이 없어 코너 쪽의 벽에 둥글게 벽지를 붙였는데, 벽지를 잘라서 단단히 마감하는게 낫겠다 싶었다.




벽이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두 명이서 같이 작업을 하는게 더 괜찮겠다 싶었는데, 벽지를 들고 위에서부터 붙이며 아래로 내려올 때 위에서부터 시작해 착착 붙이며 내려오는 것이 더 깔끔하고 좋았다. 혼자서 붙이다 보면 중간중간 벽에 들러붙으며 벽지가 뒤틀릴 수 있어서, 밑에서 한명이 잡아주는게 더 좋았다.




그렇게 친구와 함께 벽 쪽 벽지를 붙이는 것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봉투에서 풀 바른 벽지를 꺼내서 쭉 편 다음, 벽과 수직이 되도록 준비해서 벽에 잘 붙인다. 공기가 들어가거나 뒤틀린 부분이 없게 잘 정리해서 붙여 주고, 위 아래를 칼로 잘라서 깔끔하게 마무리 한다. 굳이 빗자루처럼 생긴 것이나 다른 도구 없이 손으로도 잘 붙일 수 있어서 꼼꼼하게 눌러 주기만 하면 되었다. 나와 친구는 생각했다. 이정도면 할만 한데?




그리고, 벽이 끝나고 천장을 할 차례가 되었다. 거기부터가 진짜 도배의 시작이었다. 천장 도배를 할 때는 풀 바른 벽지가 오히려 약점이 되었던 것 같은데, 벽지에 풀이 발라져 있다 보니 아주 무거웠다. 천장에 벽지를 붙일 때 빠르게 붙이지 않으면 벽지의 무게 때문에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기에 둘이서 천장에 벽지를 빠르게 붙여야 했다.




또 다른 문제는 천장을 보면서 작업하는 것이 매우 고되다는 것이었다. 벽지를 붙일 때 천장을 보면서 이동해야 하는데, 작업할 때 쓸 수 있는 길다란 사다리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작업용으로 저렴한 플라스틱 의자를 여러 개 사 두었는데, 의자를 일렬로 두고 발판처럼 이동하면서 작업했다. 풀이 발라진 벽지를 둘이서 들고 의자 위를 징검다리처럼 뛰어다니면서 천장에 벽지를 올려 붙이고, 중간에 힘이 빠져서 벽지가 떨어지는 것을 보기라도 하면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게다가 작업 하다가 알게 된 것은, 풀이 발라진 상태로 말려 있는 벽지의 옆면은 일직선이 맞더라도 위아래는 직선이 아니었다. 그래서 위아래를 기준으로 벽에 맞게 붙이고 가다 보면 옆이 삐뚤빼뚤하게 휘어졌다. 벽지를 절반 가까이 붙이고 나서야 이것을 알게 되었는데, 다시 떼기는 너무 힘들어서 결국 그 상태에서 최대한 벽지를 일렬로 붙이고 맞지 않는 부분은 벽지를 오려서 다시 붙이는 방식으로 마무리를 하기로 했다.




아직 전기 시공이 끝나지 않은 상태라 해가 떨어지면 내부 공간에서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4시간 정도면 끝나지 않을까? 했던 나의 정신나간 예상은 11월 쌀쌀한 공간 내부 창가에 김이 서릴 정도로 둘이서 낑낑대며 작업을 했음에도 절반 정도 남은 작업량과 함께 산산조각났다. 정신나갔어요? 무슨 도배를 하루만에 끝내요 하는 친구의 말에, 그래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다 차라리 돈 내고 맡기는게 나았을까 하는 자조적인 중얼거림과 함께, 첫날 작업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러고 다음날, 작업지 문을 딱 열었는데 벽지가 바닥에 우수수 떨어져 있을까 너무 불안하고 긴장되었지만, 다행히 생각보다 깔끔하게 벽지가 붙어 있어서 다행히 고생한 보람은 있었구나 싶었다. 그렇게 2일 동안 둘이서 공간 도배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친구와 도배를 직접 했다고 이야기 하면 사람들이 신기해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해도, 그 돈 받고 도배 같이 하자고 하면 안 할 것 같다. 직접 도배 하는 것이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절대로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배운, 힘들었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




도배는 너무 힘들었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2023 11, 서울 을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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