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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Sep 11. 2024

왜 출발을 안 하는 건데

내릴 것인가 말 것인가

덥다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교토의 찌는 듯한 날씨에도, 하루 동안 교토를 돌아보고 이제 숙소로 돌아갈 차례였다. 숙소는 교토에서 전철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저녁 시간에 맞춰서 가야 저녁식사를 먹을 수 있었다. 저녁식사는 숙박 예약에 포함된 것이고, 4명이서 밥을 먹으러 나가면 얼마를 쓸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뻔했기에 가급적이면 일찍 숙소로 돌아가 저녁을 먹는 것이 나았다.




퇴근 시간대에는 사람들이 몰릴 것이니 가급적이면 저녁 시간을 피해서 조금 일찍 돌아가자, 라고 말을 했지만 신기하게도 교토역에 도착해서 돌아가려고 하니 5시 30분이 넘어서, 정확하게 퇴근 시간대가 되어 있었다. 하지 말자고 하는 것만 골라서 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좌우지간 전철에 탔으니 돌아가는 것에는 문제가 없겠다 싶었다. 근방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로 꽤 차 있는 전철에는 온 가족이 모여 서 있을 자리가 없었기에, 멀지 않은 곳에 적당히 간격을 두고 서서 전철이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전철이 출발하기로 되어 있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출발하지 않는다. 지연이 조금 있는건가? 일본 여행을 할 때 구글 지도로 검색해 보면 시간이 꽤 잘 맞는 편이기에 다시 검색해 보니, 확실히 출발해야 했을 시간이 지났다. 뭐 조금은 지연이나 뭔가 다른 문제가 있을 수 있겠지 하고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십 분이 지났고, 조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저녁 먹을 시간까지 도착해야 하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당장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서는 7시 까지 도착해야 했고, 시간은 6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몇 번의 안내 방송이 나왔지만 열차는 계속해서 출발하지 않고 그대로인 상태였고, 당장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기다리자는 아빠, 어떻게 되던 간에 맞춰서 하겠다는 엄마, 당장 내려서 다른 방법을 알아보자는 동생. 동생은 왜 열차에 가만히 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렸다가 다시 열차를 타려고 한다면 못 탈 것이 뻔했다. 동생이 열차 내에 나오는 방송을 번역하니, 열차는 30분에 출발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이미 수차례 출발하지 않고 있는 열차가 과연 30분에 출발할 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30분에 출발한다고 했으니 30분까지만 기다려 보기로 했다. 30분에 출발한다면 아슬아슬하게 문제 없이 숙소에 도착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혹시나는 역시나, 30분이 되자 또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사람들로 가득 찬 전철 안에서 안내 방송이 들려온다. 7시에 출발 예정이라는 것이다. 7시라면 어떻게 되던 간에 숙소에는 시간 맞춰 갈 수가 없었다. 거기까지 되자 일단 열차에서 내려 교토역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남은 방법은 택시 뿐이었다.




운행중지라고 띄워져 있는 전광판과 개찰구를 통과하지 않고 밖에서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일본 여행을 하면서 이런 모습은 또 처음이네 싶었다. 일단 택시 승강장은 찾아야 했기에 교토 역 밖으로 나와 보니 응급차에 소방차 까지 와 있다. 사람이 지나치게 몰려 있다 보니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 경우를 대비하여 도착해 있나 싶었다.




좌우지간 남은 것은 택시 뿐인데, 다만 교토 역에서 숙소가 있는 곳까지는 차로 30분 정도 거리였다. 교토에서 출발해서 거기까지 갈 택시가 있을까 싶었다. 이때 택시 탑승 전문인 동생이 경험을 살렸다. 글로벌 콜택시 어플로 확인해 보니 숙소 까지 가는 택시를 부를 수 있었던 것이다. 단 한 번도 그 콜택시 어플을 써 본 적이 없는 나는 택시 승강장에서 줄을 서려다가 다행히 동생이 부른 콜택시가 오는 곳으로 갔다.




금방 도착한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가면서 이제는 숙소에 연락을 할 차례였다. 일단 숙소에 전화를 해야 했고, 숙소에 일본어로 말을 해야 했다. 번역기의 도움을 빌려 밑바닥부터 끌어모은 일본어로, 열차가 운행하지 않아 지금 택시를 타고 가고 있으니 저녁을 연기해 달라고 했다. 일본어를 잘 못하니 영어로 말해도 되냐고 물어보긴 했지만 말이다.




거기까지 하고 나서 시간을 확인하니, 도착해야 하는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얼추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생각에 이제 다행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비는 꽤 많이 들었지만, 밑도끝도 없이 늦어져서 저녁을 밖에서 사 먹는 것에 비교하면 싼 것이니, 나름 잘 문제를 해결한 듯 했다. 다만 동생은 아직도 왜 열차가 지연되었을 때 바로 나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다.




물론 동생은 자신의 결정에 나머지 3명이 따라가는 상황에서, 나가면 못 들어오는 것이 뻔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다면 일단 기다려 본다는 내 선택을 이해할 일이 없을 것 같긴 했지만 말이다.




어떻게 이걸 시간 맞춰 숙소로 돌아왔지 하고 생각하며, 한번에 준비되어 있는 저녁식사를 마쳤던 그날 밤이었다.




일본 여행을 하며 처음 겪어 봤던 대규모의 열차 지연, 그것도 가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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