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것은 할 수 없게 되었더라도
지난번에 다른 사람과 함께 공간을 정리하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평소에 대화를 많이 나누진 않지만 같이 시간이 겹칠 때 근황을 이야기 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곤 하는 것이었다. 내가 최근 들어서 일정 기획을 너무 많이 한다고 생각했는지, 일이 너무 많으신 것 같은데 피곤하진 않으시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습관적으로 항상 하는 답변을 했다. 일해야죠. 돈벌어야 하니까요.
진심 반 장난 반 인 대답이었지만 기계 같고 뚝딱거린다는 평가를 듣는 내가 하는 말이 조금 다른 의미였는지, 그렇게 돈 벌어서 뭐 하시려구요? 조금 더 쉬면서 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하는 걱정어린 말을 듣게 되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또 나는 습관적으로 하는 답변을 했다. 이 일은 할 수 있을때 바짝 해야 하니까요. 그래야지 쉬고 싶을때 또 쉴수 있고, 하고 싶은것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질문에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질문은 돈을 벌어서 뭘 하려고 하는 것이냐 였지, 돈을 왜 그렇게 벌려고 하는 것이냐, 가 아니었으니까. 생각해 보니 질문에 대답을 제대로 안 했네요, 하고 대답을 하려던 나는 또 돈을 벌어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돈을 벌면 나중에 해야 할 것을 할 수 있으니까, 라는 애매모호한 원론적인 답변만을 할 수 있었다. 그저 뜬구름 잡는 것 같은 명확하지 않은 대답으로, 살면서 하고 싶은 것을 전부 할 순 없으니까 꼭 하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돈이 있어야 그걸 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 때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같은 대답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일 하고 싶을 때 일 하고 쉬고 싶을 때 쉰다고 생각하지만, 일 해야 할 때는 일을 하고 쉬고 싶을 때도 일을 하는 것이 자영업의 운명 아닐까 싶어진다. 하지만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자영업을 할 때도 돈을 왜 버는가, 돈을 벌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 같은 질문에 답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그건 아마 어릴 때 갖고 싶었던 장난감이나 새로운 컴퓨터 같은 것은 돈을 조금만 모으면 살 수 있고, 가 보고 싶었던 지구 어딘가도 돈을 잘 모으면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살 수 있는 집 같은 것은 돈을 아무리 모아도 살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왜 돈을 모아야 하는지, 돈을 모아서 뭘 할 것인지에 대한 대답을 하기가 어려워 진 것이다. 정말 필요한 것은 돈을 모아서 살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물론 그 대답이 어려워 졌음에도, 돈을 모으지 않는다면 아주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래서 왜 모아야 하는지도 모아서 뭘 할 것인지 모른다 해도 돈을 계속해서 벌어야 하는 것이다. 마치 몸에 배어든 습관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