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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Dec 26. 2021

욜로는 즐거움이 아니다

소확행이라는 이름의 체념

요새 욜로라는 말은 특별한 무게를 가지지 않게 되었다. 그저 당연히, 인생은 한번이니 즐기는 것이다 라는 정서가 너무 팽배하기 때문이다. 왜 욜로인가 보다는 왜 욜로가 아닌가 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 더 평범해 보일 지경이다. 



욜로를 무엇으로 해석해야 할까. 내가 생각하는 간단한 결론은, 미래 생각 안하고 눈 앞의 즐거움을 찾는 것 아닐까 싶다. 50만원 저축보다는 50만원의 소비를 통해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돈이라는 것은 행복의 척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50만원의 저축을 포기하고 그만큼 행복을 위해 돈을 쓴다면 삶이 더 풍요로워질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것에 대해 개인의 선택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흥청망청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근시안적인 쾌락에 눈이 멀어 가능성을 낭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욜로가 유행하게 된 것이, 그저 미래지향적인 설계보다 당장 내일의 솜사탕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왜 미래지향적인 설계는 먹고 나면 사라질 솜사탕만의 가치도 못하게 된 것일까? 




욜로의 유행은 단순히 근시안적 쾌락의 추구일까? 2020/10/23, 서울 응봉산




사람들이 욜로에 대해 생각할 때 요즘 것들이 주제 넘는 사치를 부린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한달 급여 저축의 대부분을 모아서 여행 하는데 써버리거나,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물건을 사는데 쓴다. 돈을 모아서 자산을 키워나간다는 전통적인 가족관에서의 미래계획 측면에서 볼 때, 이것은 돈낭비의 명확한 예시일 것이다. 



가령 내가 한 달에 50만원씩 모아서 일 년에 600만원을 모으는 목표를 세웠다고 해 보자. 그런데 내가 그렇게 모을 돈을 생각하고 200만원 짜리 오븐, 200만원 짜리 노트북, 200만원 짜리 카메라를 샀다고 생각해 보자. 사실 나는 미래에 쓸 수 있는 600만원 이라는 돈을 낭비한 것이다. 아껴야 잘 산다는 전통적인 미래계획에서 이는 사치와 낭비로 해석되곤 한다. 



그런데 사회가 변하면서 현대 사회에서 중요해진 것은, 이 전통적인 미래계획이라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느냐인 것이다. 내가 그렇게 1년에 600만원을 모은다고 해서 내가 생각한 목표를 이룰 수 있는가? 결혼을 할 수 있는가? 집을 살 수 있는가? 경제적 독립은 이룰 수 있는가? 그렇게 10년을 모아서 6000만원을 모아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마저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겠지만, 과연 '그마저도' 한다고 해서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그 무언가 이루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지금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에 대한 희생으로 정당한 것인가? 결국 내가 정말 원하던 것을 나는 가질 수 없으니, 내가 그나마 가질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한다는 것이 바로 욜로의 핵심인 것이다. 



돈 모아서 집 못산다. 하지만 비싼 자동차를 할부로 갚아 나가면서 온전한 자신만의 물건을 가질 수 있다. 아니면 집은 못 사더라도 자신이 지내고 있는 공간을 채워 나갈 옷이나 가구 같은 것들을 살 수 있다. 그래서 전통적인 미래계획에서 필수적인 것들에 대한 생각은 점점 줄어들고, 작다 해도 자신이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투자가 거침 없어진다. 예전엔 꾸준히 노력하면 가질수 있던 것들이, 더이상은 꾸준한 노력으로 가질 수 없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욜로가 무엇인지, 더 사소하게는 소확행이 무엇인지 생각할 때 미래의 가치 대신 근시안적이고 1차적인 쾌락을 추구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본질이 1차적인 쾌락 추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본질은, '미래의 가치 대신'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에 더 가까울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긍정적인 미래가 손에 닿을 수 없음을 알고 나서야, 확실하게 손 안에 들어오는 눈 앞의 쾌락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욜로가 아니라, 욜로를 참아가며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었음이다. 2020/09/24 서울 동작역




욜로는 일견 보기에는 미래고 뭐고 상관없이 그저 눈 앞의 사탕을 할짝이는 행동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사탕을 할짝이는 행동 뒤에는, 따지고 자시고 할 미래 자체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 자체가 없다는 판단이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긍정적인 미래를 계획하고 더 나은 내일을 꿈꾼다. 하지만 더 나은 내일과 긍정적인 미래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생을 지탱하는 것은 무엇일 것인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긍정적 미래보다는, 눈 앞의 확실한 쾌락일 것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미래라도 대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다. 뛰어 나가는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기 위해서라면 자신도 뛰어야만 하는 현대 사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현재 상황을 유지하는 것은 커녕 지하실로 추락해 버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욜로와 소확행을 가능성으로 두는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이 있다. 하루하루의 행복을 조금씩 도려내어 불확실한 미래의 구덩이에 쏟아붓거나, 아니면 애초에 확실하지 않은 미래는 존재하지 않음을 인식하고, 미래의 '불분명한' 행복을 오늘내일로 끌어오는 것이다.



어느쪽이던 간에 쉬운 선택이 아니다. 그러나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그 쉽지 않은 선택과 그 선택의 연속이란 아주 일반적인 모두의 삶일 것이다. 


당장의 행복을 대가로 얻는 미래의 행복이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는 요즘의 현실이다. 2020/09/04 서울 압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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