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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Jan 09. 2022

브런치를 어떻게 써야 할까요

내가 브런치를 쓰는 이유

맨 처음 브런치를 쓰기 시작하고 나서 시간이 꽤 흐른 것 같다. 사실 4개월이라는 시간은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 주일에 두 편씩 쓰겠다는 약속을 한 번도 깨지 않으며, 지금까지 꾸준히 글을 써 왔다. 일상생활 속에서 떠오른 것들, 혹은 이전에 생각해 왔던 것에 대해 꾸준히 글을 쓰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앞으로도 크게 문제 없다면 일 주일에 두 번씩 계속해서 글을 쓸 생각이다. 




그런데 문득 나는 왜 브런치를 쓰고 있는가 궁금해졌다. 비록 예전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관심도 있었다 하지만, 이전에 나는 다른 플랫폼에서 글을 꾸준히 쓴 적이 있었고 거기서 쌓아 둔 기반이란 쉽게 포기하거나 옮기기 힘든 것이었다. 내가 그것을 다른 곳으로 옮겨둔 상태에서, 아무것도 없는 브런치를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은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것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보통 특정 행동을 할 때 명확한 이유를 가지고 하지만, 이유가 없는 상태에서 그 행동을 하면서 이유를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나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이유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는 내가 꾸준히 글을 쓰는 이유와 어느정도 연결되어 있기도 했다. 




나는 왜 브런치를 시작했고 어떻게 쓰려고 하고 있는 걸까.




기존에 쓰던 네이버 블로그를 따로 두고 브런치를 시작한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2019년 7월, 서울 동대문




나는 네이버 블로그를 꽤 오래 한 경력이 있다. 중학교 때부터 흥미로운 사진들을 모아둘 생각으로 시작했다가, 고등학교 때부터 간단한 생각을 적기 시작했다. 대학교 때 부터는 구체적으로 내 생각을 적기 시작했고, 별다른 주제가 없어도 일 주일에 한 번씩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쓰기도 했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쌓인 글은 이제 2000개가 넘었다.




본성이 생각이 많은 편이라, 쓸데없이 무언가를 오래 생각할 때도 많았다. 그런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적어 두면 또다시 그 생각을 반복해서 하면서 시간낭비 하는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글로 적어 두면 나중에 보면서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면서 떠올릴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그래서 네이버 블로그에서 글을 오래 썼던 것 같다. 




나는 사람의 모든 것이 그 사람이 쓴 글에 녹아든다고 믿기에, 종종 상대방에게 나를 설명해야 할 때가 있다면 내가 쓴 글을 보여주곤 했다. 내 글을 보여준다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내 신뢰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좋기도 했고, 상대도 내 글을 보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여태까지 쓴 글이, 그다지 누군가에게 보여줄 것을 감안하고 써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글을 쓰고 나서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과, 애초에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목적으로 글을 쓰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내가 여태 쓴 글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생각해 보니, 같은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5년도 더 된 옛날 글들도 떠올랐다. 그럼 어떤 글은 숨기고 어떤 글은 보여줘야 하나? 특정 글만 보여주고 싶어서 그 글만 따로 가공해서 보여주는 것도 번거로운데다가 묘하게 숨기는 것 같아서 이상했다. 




원인은 내가 맨 처음 네이버 블로그를 시작할 때 생겼다. 언젠간 내가 쓴 모든 글들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음을 염두에 두지 않고 시작한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떻게 내 생각을 보여주고 말할 것인가에 대한 고려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오로지 나중에 누군가 볼 수도 있다, 라는 생각만으로 내 생각을 펼치는 것에만 집중했던 결과가 그것이었다. 그래서 섣불리 봐 달라고 하기가 쉽지 않았다.


 


네이버 블로그의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정리한다면 그 해결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유가 무엇이던 간에 내가 옛날에 쓴 글을 정리한다는 것은 썩 내키지 않았다. 내가 그 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글이 사라진다면, 그 글은 어떻게 해서라도 복구할 수 없고 나중에 찾을 수 없게 되니까.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새로운 플랫폼에서 글을 새로 쓰는 것. 내가 네이버 블로그를 하면서 느꼈던, 구체적인 방향을 처음부터 생각하며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바꿀 수 없을 때는, 새로 시작하는 것이 유일한 답이다. 2019년 8월, 서울 종로




브런치에 글을 쓸 때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읽힐지, 나중에 누군가에게 보여줘도 될지 생각하며 글을 쓴다. 내가 원하는 브런치를 어떤 방향으로 만들어 나갈 것인지 생각하면서,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쓸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글을 쓰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브런치가 네이버 블로그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했다.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저곳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더이상 네이버 블로그에는 아무런 글도 쓰지 않을 줄 알았는데 지금도 종종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쓴다. 마치 각각 다른 인간관계를 통해 사회관계적 갈증을 해소하는 것처럼, 각각 다른 플랫폼을 통해 하고싶은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내가 맨 처음부터 누구에게라도 보여줘도 괜찮은 글들을 설계하고 쓴다는 점에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브런치에 글을 쓸 것 같다. 나중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기 위해서.    




꾸준히 하는 것의 의미를 알기에, 브런치도 앞으로 계속 해 나갈 예정이다. 2019년 8월, 동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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