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구는 어디서 어디로 갔나.
대전이 한동안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바로 오월드를 탈출한 늑대. 늑구 때문이었는데요. 전국적 관심을 받다보니 다양한 매체에서 늑구와 대전 이야기를 꾸준히 다뤘습니다. 오늘은 이 늑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왜 전국에서 늑구에 관심을 가졌고 또 이 일로 대전에 남겨진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를 여러 보도자료를 참고해 정리해보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입니다. 늑구라는 이름이 뭔가 친근해도 결국 늑대거든요. 맹수고 사람을 위협할 수도 있었죠. 그렇지만 대중은 마치 길 잃은 어린양을 바라보듯 어서 무사히 집에 돌아가길 바랬습니다. 탈출 사건이 지나면 지날수록 공포와 두려움이 아닌 안타까움과 불쌍함으로 늑대를 바라봤죠. 저는 이 포인트가 참 재밌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친근하게 여겼을까 하는 겁니다.
이이 대해 한 뉴스 칼럼은 ‘이야기가 도시를 움직인다’고 표현하기도 하더라고요. 한 사건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시간이 지나고 서사가 쌓이면서 변화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생각해보면 맨 처음 늑대가 탈출했다 했을땐 당황과 두려움이 분명 있었거든요. 제 생각에는 늑구에게 동정어린 시선을 보낸것은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8년 전에도 오월드에서 동물이 탈출한 적이 있었죠. 퓨마 ‘뽀롱이’ 입니다. 이때 뽀롱이는 마취총을 사용해 포획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고 대전도시공사 안전관리 매뉴얼에 따라 사살하였죠. 시민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그 당시엔 사살했지만 이번엔 그 누구도 다치지 않고 함께 공존하는 방향으로 가길 모두가 바랐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우리들은 과거의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더욱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봤단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마 현장 관리를 맡으신 분들도 이런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을테니까요.
대중들의 반응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늑구의 이름을 탄 가상화페 밈 코인이 탄생하기도 했고 추정 위치를 실시간 공유할 수 있는 ‘어디가니 늑구맵’도 나타났죠. 또 AI로 조작한 허위 보도가 초반엔 수사에 난항을 겪게 하기도 했습니다. 또 오월드를 다녀와보지 않는 분들은 좁은 철창에 갇힌 늑대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도심을 뛰쳐나왔다고 생각한 건데요. 나중에 늑구가 지내던 우리는 단순 철창이 아닌 약 1만 평의 우리에서 지낸다는 것을 알고선 사실 귀족집 아들래미가 잠시 방황하러 나왔던거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죠. 저도 이 오월드를 가봤지만 늑대 우리는 거의 산 하나를 내어둔 것처럼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늑구. 꽤 귀하게 자라온 아이입니다. 늑구는 18년 전부터 시작한 한국늑대의 종복원 노력으로 태어난 개체다. 러시아와 협약을 맺고 볼가강유역 내몽고 평원에서 야생늑대 7마리를 포획해 2008년 7월 오월드에 입식해 종복원으로 최근까지 오월드에서 생활한 한국늑대 14마리 중 한 마리거든요.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늑대를 복원하겠다는 계획인거죠. 오월드는 생태동물원으로 변화하기 위해 노력들을 꾸준히 해 왔습니다. 백두산 호랑이 자연 포육에도 성공했었고, 늑대 종 복원도 추후엔 자연 환원 계획까지 가지고 있었죠. 단순 동물을 가둬 볼거리 제공이 아니라 종을 복원하고 유지하기 위한 역할을 해내고 있던 겁니다. 늑구 덕분에 오월드 동물원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분들도 많아졌습니다. 현재 오월드는 시민 안전 확보 위해 운영이 일시 중단되었는데요. 공식 인스타그램엔 언제 다시 재개장하는지 문의하는 댓글들도 많이 달렸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한동안 시들했던 오월드의 인기를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늑구가 앞서 나서 홍보했다고 이야기하기도 하더라고요.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면서 동물원에 대한 인식도 시대가 지나며 바뀌었습니다. 과거엔 신기하고 재밌는 즐길거리였지만 이제는 동물들이 과연 그곳에 있는것이 행복한가, 도시는 동물을 가두고 사육할 권리가 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들을 가지게 된거죠.
이번 늑구 사건은 영국 BBC에서도 다뤄졌습니다. 한국 늑대 종 복원사업부터 지금까지 맥락을 잘 정리해 보도했죠. 이에 대해 해외 반응은 동물을 풀어줘라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일부는 쇼생크 탈출 늑대 버전 같다고 말하며 늑구를 자유의 상징으로까지 여기기도 했죠. 이 포인트가 아마 대중들이 늑구에 관심을 많이 가진 이유라는 생각입니다. 동물원은 갇힌 곳이고 도심은 자유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으로 보았을때 늑구의 행동은 우리들의 삶에도 대입이 된거죠. 자유를 찾아 떠난 늑대. 그 모습은 마치 우리들도 이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자유를 찾고 싶단 열망이 반영되어 여러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로 이야기가 도시를 움직인거죠.
이런 주제에 빠지지 않는 동물원이 있죠. 바로 청주동물원입니다. 이곳은 국내에서 세 번째로 멸종위기 동물을 위한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되었죠, 단순히 동물을 관람하고 즐기는 것을 넘어 종을 보전하고 동물 복지에 책임을 다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오월드도 이번 사건이 기회가 되어 보다 생태 동물원의 역할을 갖출 수 있을거란 기대가 있습니다. 대전시는 이번 3,300억 규모의 오월드 시설 개선 계획을 내놨지만 놀이시설 중심의 테마파크를 조성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대중이 오월드에 관심을 가진 것은 멋진 놀이기구나 대단한 볼거리가 아닌 이야기가 있는 동물이었죠. 그렇다면 오월드와 대전시는 이 전국적 관심을 받은 늑구가 어떻게 동물원에서 지내고, 또 도심 속에서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방식을 어떻게 고민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보여줄 때가 왔단 생각도 듭니다.
좋은 사례들은 많이 있습니다. 특히 이번 늑구는 마치 에버랜드의 푸바오와 비슷한 관심을 받았습니다. 다시 동물원에 돌아간 후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준 영상에는 많은 반응들이 있었고요. 이때 재밌는 일도 있었는데요. 늑대에게 고기를 바닥에 준 것에 대해 네티즌들이 늑대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다, 밥그릇에 줘야하는거 아니냐하는 의견들이 쏟아졌습니다. 동물원측은 야생성이 있는 동물이기에 밥그릇에 주면 오히려 먹기 불편해한다고 하였고 일각에서도 너무 과도한 관심의 결과라고 말했죠.
그런데 인간과 동물의 공존에 대한 해답은 어쩌면 어떤 사육사가 그 동물원에 있고 그 사육사의 철학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으로 답을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밥그릇 논쟁도 어쩌면 그 일환인거죠. 밥그릇이나 땅바닥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늑대를 사랑하고 보살피고자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대중에게 전달된다면 문제가 없었을 일이죠. 지금 이러한 대중 관심과 동물원에 대한 인식을 잘 이어주기 위해선 동물원에 동물과 함께 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야 할 시점이란 생각이 듭니다. 또 충분히 오월드는 이러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거라 기대됩니다. 특히 오월드에서 30년 넘게 일한 맹수 전문 문진호 사육사님도 계시니까요. 2000년대 초반 호랑이와 함께 우리에서 밥도 주고 사자와 싸움을 말리기도 하는 모습이 방송에 나와 화재를 모았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분은 인간이 사자와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자 동산을 직접 기획해 오월드에서 2003년에서 선보이기도 했었습니다. 모든 맹수들이 기대수명보다 더 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좋은 사육사님도 계시니 이 모든 이야기를 잘 엮어나간다면 대전에 큰 자산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도시는 이야기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대면할 캐릭터가 필요하죠. 지금 대전에 필요한 것은 그 캐릭터와 대전에서만 줄 수 있는 메시지가 필요합니다. 늑구가 전국적 관심을 받은 것도 자유에 대한 메시지가 전달되었기 때문이죠. 늑구 이야기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오월드는 동물 복지와 늑구의 탈출 사건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이고, 대전시도 놀이기구 중심의 오월드 리뉴얼 사업에서 보다 동물 친화적인 동물원이 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동물원을 어떻게 바라보고 인간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