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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구 Nov 12. 2020

한적한 오후. 바흐. 글렌 굴드 그리고 골드베르크

요즘은 바하 음악이 좋다.


옛날에는 가득 채우고 싶은게 많았는데
요즘은 비우고 싶은게 많다.
나를 가을 햇볕 아래 말리면 무엇이 남을까.




힐끗 뒤돌아보던 것은 어제 내가 지루하게 여겼던 것. 반짝이는 것이 좋아 나는 자주 뒤를 돌아보곤 한다. 그것이 아직 그곳에 있을까 해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할 때가 있었는데 그게 애석하게도 수험생 때다. 노래 들으며 공부하는 것을 좋아해서 선택한 음악이 클래식이었다. 조용한 독서실에서 힙합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흥얼거릴 순 없으니 말이다. 

이 클래식이란 게 마치 칵테일과 같아서 종류를 참 많은데 그 중에 아는 곡은 많이 없다. 예를 들어 '섹스 온더 비치'와 같은 '엘리제를 위하여'처럼 말이다. 아, 물론 어감이 같다는 게 아니다. 그저 그렇게 우리 일상 속에 녹아 있는 듯 하면서도 아닌 게 클래식이란 거다.

"클래식이 다 거기서 거기지!"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베토벤을 좋아했고 나중엔 말러를 좋아했다. 바흐는 지루했고, 에릭 샤티는 조금 멀리했다. 에릭 샤티 음악을 계속 듣다 보면 왠지 우수에 젖어 하루를 날리곤 했으니까.


바흐 음악은 단순하고 단조롭다고 느꼈다. 그건 아마 8살 때. 학부모들 사이서 어떤 소문이 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피아노를 잘 치면 대학 들어갈 때 가산점이 있다는 이야기에 휩쓸려 끌려간 피아노 학원에서 부터다. <바흐 인벤션> 곡을 치면서 바흐를 알았고 그 흔한 화음 없이 이어지는 선율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시 클래식 음악을 찾는 요즘 나는 말러도 베토벤도 아닌 바흐 음악을 찾는다. 예전엔 지루하다 느꼈던 단순함의 매력을 이제 찾는 듯 하다. 역시 명곡은 다 그 이유가 있나보다. 내가 좋아하는 건 이미 다른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있더라고. 

유튜브에서 바흐 음악을 즐기다 보면 알수 없는 알고리즘이 나를 글렌 굴드에게 인도한다. 글렌 굴드. 당대 최고 바흐 음악 스페셜리스트로 그가 활동 당시 영미권에선 낭만주의 음악이 유행하였고 바흐 음악은 지루하고 어렵다는 편견을 깬 장본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정보는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고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건그의 기인적인 모습 때문이다. 피아노 건반에 거의 코가 닿을듯이 허리를 숙이고 입은 쉴새없이 움직이며 피아노 치는 모습. 그건 확실히 유니크한 면이 있다.

바흐가 작곡한 악보에는 악상 기호가 없다. 어디서 건반을 세게 쳐야 할 지, 어디서 약하게 음악을 이어가야 할지 써있는 바가 없다. 그렇기에 어쩌면 바흐가 친 음악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불가능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만 글렌 굴드는 자신의 방식으로 바흐 음악을 완성했다고 평가 받는다. 일례로 글렌 굴드의 가장 대표적인 바흐 연주곡인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당시 일반적으로 연주 시간이 60-70분대였는데 그의 연주는 35분 만에 완곡하였다고 한다.

바흐 음악에 능통한 피아니스트의 음반을 듣는 것은 가끔 글렌 굴드의 음악을 듣는 것인지 아니면 바흐의 음악을 듣는 것인지 헷갈리게 하곤 한다. 내가 듣고 싶은 것은 20세기의 피아니스트일까 아니면 18세기의 할아버지일까. 확실한 것은  내가 지금 바흐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 한가지다. 복잡한게 많아지는 요즘엔 오히려 단순한 것을 찾게 된다. 단순한 것은 어쩌면 가장 열정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바흐가 피아노가 없던 시절 하프시코드로 수많은 음악을 작곡한 것처럼 말이다. 과거의 것을 재현하는 것은, 그 단순하고 때로는 반복적인 일을 하는 것은, 그 당시의 열정을 닮고 싶은 욕망일지도 모른다. 르네상스 시대, 고대 그리스의 학문을 복원하려 했던 것 처럼 말이다.


월간지를 수작업으로 만든 지 어느새 반 년이 지나간다. 처음 2주 정도 걸렸던 작업은 현재 5-6일로 단축되었다. 물론 그 시간 절약의 장본인은 정합기를 들여오면서 부터다. 수작업으로 책을 만들겠다 했지만 요즘들어 정말 '기계 만세'를 외친다. 사람이 다 손으로 안하는 건 이유가 있더라고...

그래도 과거의 모습으로 책을 만드는 건 어쩌면 재현이 아니라 변주일지 모르겠다. 내가 글렌굴드를 좋아하게 된 이유도 어쩌면 그런 것과 같은 이유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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