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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짧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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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구 Jan 30. 2021

6. 가끔, 내 기분을 정당화하고 싶은 마음이다.

누군가에게 내 감정을 해명해야 할 것 같은 느낌.

"누나. 잘 들어갔어요?"

핸드폰엔 아직 카톡 메시지 '1'이 남아있다. 아마 규현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에게 카톡을 보냈을 것이다. 나는 그걸 알기에 더욱 핸드폰을 침대 구석에 밀어 둔다. 오늘따라 유난히 자다 깨다 반복한다. 그때마다 '아, 규빈이는 카톡을 기다릴 텐데'라는 생각이 스친다. 나는 애써 잠을 청한다. 눈을 질끈 감을 때마다 규빈 표정이 떠오른다. 특유의 처지는 눈썹. 갈색 골든 레트리버. 



내 감정에 변명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누군가에게. 자주 바보가 된다. 생존과 살아가는 건 다르니까. 이제 자취 1년 차. 이 나이에, 이제야, 나는 살아나간다.


일부러 늦게 일어났다. 자기 전에 방 안 커튼을 모두 내렸다. 방은 어둡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한 시다. 아침에 잠깐 눈이 내렸나. 잠깐 잠이 깼던 아침에 눈 내리는 걸 본 것만 같은 기분이다. 아침에 눈이 내렸던가. 나는 얇은 커튼을 걷고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전화를 걸었을까. 기억이 혼란스럽다. 그 전화 넘어엔 과연 누가 있었을까. 핸드폰엔 아침 통화기록은 없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한 것만 같은 기분이다.


핸드폰엔 아직 읽지 않은 알람 '1'이 있다. 규현은 내 카톡을 기다릴 거다. 아직 집을 옮기지 않았다면 그 하얀 방에서. 예전처럼. 규빈이는 변하지 않으니까. 나는 그 마음을 알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더욱 연락을 미룬다. 나는 내 기분은 누군가에게 해명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규빈은 인기가 많았으니까. 그의 얼굴엔 해와 달이 번갈아 가며 뜨고 졌다. 모두들 그의 밝은 성격을 좋아했지만 나는 그의 어둠을 좋아했다. 규빈은 홀로 남는 걸 외로워했고 두려워했다.

"누나. 아직 거기 있어요?'

"거기가 어딘 줄 알고 묻는 거야?"

"그냥..."

"내가 어디 있던 나는 네 편이다."

"고마워요."


대학교 때 규빈은 밤이 되면 전화로 나를 찾았다. 동아리 선후배. 그게 뭐라고. 그때는 그 감정인 뭔지도 모른 체 우리는 밤에 서로 연락했다. 규빈과 나는 밤이면 우리 사이에 대나무를 심었다. 무성히 자라나는 대나무 숲. 서로 어디로 들어가는지 나오는지도 모르는 체 뺵빽히 대나무를 심었다. 

"근데 너 나랑 연락한 통화 기록은 잘 지우고 있지?"

"아니요. 왜요?"

"그거 니 여친이 보면 참으로 좋아하겠다. 지워."

우리의 이야기는 댓잎 소리가 되어 어두운 밤 아래 지나갔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났다. 우린 서로를 잊은 체 지날 정도로 시간은 빠르게 지났다.


규빈이는 내 답장을 기다리며, 어제 술을 많이 마셔 늦게 일어나는 거라 생각하며 시계를 바라볼 것이다. 그러다 오후가 지날 때쯤이면 막연히 나를 걱정할 것이다. 그러다 어쩌면 예전처럼 밤이 되면 전화를 할지도 모른다. 내가 답을 할 것이란 그의 믿음엔 조금의 의심도 없는 걸까? 정말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믿음이 있는 걸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핸드폰을 바라본다. 생존과 살아가는 건 다르다. 생존은 살아 있는 그 자체로 축하할 일이지만 살아가는 건 다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 그게 중요하다. 나는 너에게 답을 하면서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 걸까. 핸드폰만 만지작 거린다. 몇 년 전, 함께 밤이면 심었던 대나무는 영원할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나는 자꾸만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해명해야 할 것 같다. 규빈이는 내게 다시 기대고 싶은 걸까. 그때 서로 모른 체 지나간 감정을 다시 붙잡으려는 걸까. 




"잘 들어갔지. 주말이라 푹 쉬고 있어. 언제 한번 시간 되면 또 보자고."

규빈이에게 답을 보낸다. 우린 조만간 정말 만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답을 보내고 카톡 창을 보니 현 오빠에게 어제 온 톡이 있다. 술김에 읽고 답 하지 않은 그의 인사.

"그럼. 아무 때나 와서 말만 하라고. 내 집 비번 알지?"

오빠는 항상 선택을 내게 맡긴다. 나는 다시 바보가 된다. 나는 내 감정에 대해 누군가에게 해명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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