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훈주 Sep 07. 2022

도시를 사랑하는 방법_2

후회의 반대말은 뭘까

퇴근길에 서점을 들렸습니다. 계획에 없던 무지 성 소비 시작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스트레스가 많아지는 날엔 돈을 쓰면서 자유를 느낍니다. 이게 정상인 건가?


서점에서 두 책을 들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아무래도 이제 곧 명절이니까요. 명절 동안엔 아무 생각 없이 재밌는 책을 읽고 싶습니다. 유튜브는 30분, 넷플릭스는 2시간이지만 책은 적어도 하루입니다. 내 소중한 명절날에 재미없는 책으로 하루를 날릴 순 없으니 아무래도 중대한 결정 앞에 전 서 있습니다. 보통 중대한 결정이라면 며칠 전부터 고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5분 전까진 책 생각도 없던 사람치곤 꽤나 결연한 의지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인상 깊게 본 애니메이션으로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가 있습니다. 원작은 소설이라던데 책이 궁금했습니다. 이야기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내용이었습니다.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어쩐지 어딘가엔 허무맹랑하지만 있을법한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야기의 미덕을 모두 갖추었다 할 만합니다. 있을 법하고, 단숨에 읽히는 책이 분명할 겁니다. 간단히 작가 소개를 훑어보니 더욱 마음에 듭니다. 무엇보다 현실과 공상을 오가는 문체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는데 문제는 서점에서 찾은 작가의 작품은 단 두 편이라는 겁니다. 하나는 이미 애니메이션으로 본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고 또 하나는 <열대>입니다. 하나는 작가 초창기에 쓴 작품이고 또 하나는 데뷔 15주년 책입니다. 이건 꽤 심각한 고민입니다. 새로운 것도 먹고 싶지만 언제나 아는 맛이 더 끌리는 법이니까요. 한동안 고민하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내려놓고 <열대>를 선택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이미 내려놓은 책 첫 장을 조금 읽습니다. 글은 몽글몽글합니다. 몽글몽글한 오믈렛, 수플레, 푸딩 같은 글. 분명 제가 이 책을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만든다면 첫 장면은 노란색 배경으로 시작하겠다 다짐합니다. 물론 만들 리 없는 애니메이션이지만 말입니다.


책을 사고 가장 열정적으로 읽는 순간은 책을 들고 버스정류장 가는 순간이라 했던가.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습니다. 몇 장을 넘기지만 그 속도가 시 윈치 않습니다. 작가에게 있어서 초창기 작품이 지금보다 더 좋다는 말만큼 세상이 무너지는 일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왠지 아직까진 후회가 조금 있습니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가 갈마동 거리에 있는 오믈렛이라면 <열대>는 둔산동 프랜차이즈 오므라이스입니다. 맛이 없진 않지만 특별한 느낌이 아닙니다. 조금 후회가 있지만 아직 남은 책장이 많이 남았으니 그저 작가가 성장 캐릭터이길 바랄 뿐입니다. 분명 뒤로 갈수록 뭔가 강력한 한 방이 있기를 바라며...!


글을 쓰다 일이 막히면 단어의 정반대 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곤 합니다. 아이디어를 많이 낼 수 있는 습관이라고 합니다. 성급한 선택 결과로 약간의 후회가 밀려오는 이 순간, 후회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만족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요. 그러면 지금 이 책 말고 다른 책을 샀으면 만족했다고 할 수 있으려나요. 잘 모르겠습니다. 아아. 아무래도 풀 수 없는 미로에 빠진 느낌입니다. 어쩌면 기대에 따른 결과가 만족과 후회라 할 순 있지만 언제나 결론이 둘 중 하나라 하긴 어려우니 말입니다. 

그저 새로운 가능성을 사랑했다고 하는 편으로 이 고민을 마치기로 합니다. 새로운 이야기 세계로 데려다 줄 거란 가능성을 사랑했고, 그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일본 작가를 사랑하기로 했고, 작가 이름만 보고 책을 샀습니다. 사랑은 기대하게 하니까 후회도 있고 만족도 있는 거라고 스스로 정리합니다. 그러면 후회의 정반대 말은 만족 이기전에 사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반대라는 개념도 대척점에 있기 전에 태생이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도시에 살아간다기보단 수많은 선택과 후회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시가 거미줄 같은 도로로 짜여 있다면 수많은 선택과 후회도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입니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주인공이 끊임없이 거리를 활보합니다. 골목길을, 헌책방 시장을, 누군가의 마음속을 헤매고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반짝이며 활보합니다. 아마 이 이야기의 끝도 새로운 사랑의 시작이었던 거 같은데 도시를 사랑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단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도시는 두 책 사이에 고민하는 그런 것이란 생각입니다. 두 권의 책 사이에 난 골목길을 저는 아마 이번 명절 동안 계속 헤맬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떻게든 내가 쓴 1만 5천 원의 가치를 저는 스스로 설득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변명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시를 사랑하는 방법_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