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가는 것을 사랑한다.
오래된 도시, 이제는 사람이 눈길을 주지 않는 동네를 방문하는 것은 오래된 헌책방을 다니는 것과 비슷하다. 어쩌면 사람의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것은 감사한 일일지도 모른다. 잡아 먹히는 것은 언제나 잡아 먹힐 만한 것이었다. 어쩌면 살아 남는 것은 관심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래된 동네엔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단어들이 살아 있다. ‘전당포’, ‘카바레’, ‘설겆이’ 등등 과거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단어들이 존재 한다. 그런 것을 발견하는 날엔 인류의 기원에 조금 더 다다가는, 마치 고고학자가 되는 느낌이다. 인류의 기원을 찾아가는 것은 본능이라고 했다. 기원이 본능이라면 옛 것을 좋아하는 것은 단순 기호와 노스텔지어라기보단 과거와 지금의 삶을 비교하며 무엇이 더 좋은지를 선택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삭힌 홍어도 먹어요?
한번은 점심 시간에 호불호 갈리는 음식에 대해 말했다. 말하자면 나는 잡식성이다. 못 먹는 것이 거의 없다. 삭힌 홍어도 좋고, 고수도 좋고, 두리안도 좋다. 취두부는 아직 먹어보지 못했지만 중국 여행가서 한번 먹어볼 법 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대화의 결론으로 나는 못 먹는 것이 수많은 불호 음식을 지나 삶은 계란과 커피였다. 커피는 최근 몸이 좋지 않아 카페인을 받지 않기 때문이었고, 삶은 계란은 개인적 취향 차이였다.(닭 똥꼬에서 나오는 알이라니. 왠지 삶은 달걀의 비릿한 냄새가 날때면 닭 똥꼬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 호불호가 갈리는 것, 못 먹는 음식은 삭힌 것이었다. 오래된 것이었고, 부패와 발효 사이 외줄타기 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가치가 빛나는 것도 있고, 퇴락하는 것도 있다. 나는 과연 그 둘 중에 어떤 길을 걷고 있는 걸까. 아무래도 연말이 다가오니 왔던 길을 돌아볼 수 밖에 없나보다.
오래된 동네를 좋아하듯 노포를 좋아한다. 낡고 관심을 받지 못한 곳을 좋아한다. 그곳을 우직히 지키는 이들을 사랑한다. 한동안 노포를 돌아다니며 가게 사장을 인터뷰 한 적이 있다. 오랜 세월을 버티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무슨 의미가 있어. 그냥 사는 거지. 이거 말곤 할 게 없어.
현실은 낭만과 거리가 멀었다. 사니까 살아지더라. 그런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세월에 기대어 살아가는 이들을 바라볼 때면 자꾸 부패와 발효 그 사이 어딘가를 나는 가늠하곤 했다. 오래된 것을 사랑하며 버티는 이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는 생각에 가끔은 서글퍼지기도 했다. 유행은 빠르게 바뀌고 관심은 쉽게 사라지는 시대다.
조치원 역에 내리면 독특한 철제 건물이 있었다. 나름 관광 명소라 생각했는지 ‘영화 <반칙왕> 촬영지’라는 팻말도 붙인 곳이다. 조치원 복싱 체육관이다. 1952년에 식량창고 용도로 건립되어 1975년부터 복싱체육관으로 사용되었다. 드라마와 CF 촬영지로도 각광받던 곳이다. 관심에서 멀어진 동네에, 조용히 살아남은 공간이다. 세월의 흔적이 쌓이는 것은 마치 먼지 쌓이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던 이 동네 분위기는 빠르게 바뀌었다. 돈이 흘러 들어온 것이다. 도시재생 대상지, 세종시의 유일한 읍지역, 로컬 크리에이터 지원 사업 등 무언가 변할것이란 기대감과 시간이 지남에 따른 실망감이 켜켜이 쌓이는 동네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시간 속에서 결국 조치원 복싱 체육관은 철거되었다.
부수다 만 체육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리 좁은 공간이었나 싶은 마음이 든다. 마치 대단해 보였던 아빠가 늙었구나를 느끼는 순간처럼 공간에 힘이 빠지니 앙상한 골조물만 남아 흔들렸다. 아무래도 연말이다보니 왔던 길을 돌아볼 수 밖에 없나보다. 지나간 시간들을 생각하며 황망함과 익숙함 사이에 나는 끼어 있다. 도시는 시간이 지나면서 담백해지기보단 잠깐의 유행으로 반짝이다 사라지는 마치, 소행성처럼, 타 버리는 유성처럼, 그런 모습으로 사라져간다. 아무래도 마음이 허전한 것은 연말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