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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훈주 Mar 06. 2024

도시를 사랑하는 방법_8

퇴사를 했고 새로운 취미를 가졌다.

계약이 종료되었다. 아침마다 허덕이며 출근하던 삶을 잠시 뒤로하고 새로운 취미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이네. 우린 쉬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일하는데.”

오랜만에 찾아간 편집실에서 친했던 회사 대표를 만났다. 새롭게 사무실을 바꿀 계획이라는 그의 말에 몇 가지 물건 나르는 것을 도와줬다.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고 오랜만에 사람 만나니 오히려 반가웠다.

바쁘게 쫓기듯 살아온 삶에서 일을 빼니 명확해졌다. 사람은 살아있는 게 기적이다. 배는 빠르게 허기졌다. 느지막하게 일어나 점심을 챙겨 먹고 몇 시간 밀린 개인 일을 처리하다 보면 어느덧 저녁이 된다. 배는 눈치 없게 고프다. 예전 육아 책에서 갓난아기는 위와 식도가 짧아 적게 자주 먹여야 한다 들었는데 어른이 되어도 변한 건 조금 식도 길이와 허기져도 바로 울지 않는 능력 정도다. 생존 능력은 여전했다. 몇 시간 지나면 다시 먹을 걸 고민해야 한다니. 사람도 참 별거 없다 싶다. 벌이가 적어졌으니 적게 먹어야 할 텐데 배는 참 눈치가 없다.



새로운 취미를 만들었다. 밖에 나가는 건 걷는 순간 모든 게 돈이었다. 버스비는 왜 1,500원으로 오른 걸까? 대중교통을 장려한다면서 대중교통 이용료를 올리는 건 무슨 심보일까? 국밥집에서도 주력하는 상품은 이벤트로 가격 인하를 해도 가격을 올리진 않는 법이다. 혹시 모르지. 나중에 ‘주말 나들이 이벤트’라고 하면서 교통비 인하 이벤트 날이 있을지…. 물론 대중교통 운영비가 매번 적자란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버는 돈이 없으면 나가는 돈이 아쉬운 법이다. 사람 만나는 것도 돈이다.

“스타벅스는 커피 주문 안 하고 앉아 있어도 쫓아내지 않아요.”

아는 후배가 나름의 조언을 해줬지만 쉽진 않았다. 대학생일 때면 해 볼만하다 생각했겠지만 어느덧 낭만이 아닌 무능력한 사회인으로 보일 나이가 되어 버렸다. 아직 날이 추우니 공원에서 누굴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길에서 사람을 기다릴 순 없으니 잠시 바람을 피할 적당한 곳을 찾아야 했다. 일을 그만두면 마음 편하게 쉴 거 같았지만 당장 줄여야 할 내 생활과 적응하는 것은 꽤 가난한 일이 되었다.



집에 있는 것은 내겐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동안 공부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제 내 나이도 30대인데 과연 또 일을 그만두고 쉴 수 있는 때가 올까 싶다. 어쩌면 내 인생 마지막 휴식인데 조금은 늦장 부려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해 보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해 보자는 생각이다. 소설 쓰기, 그림 그리기, 애프터이펙트 배우기, 여행하기, 도서관 놀러 가기 등등. 해 보고 싶은 것들을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들 앞에 이야기하니 참 철없다는 이야기가 돌아왔다.

“넌 결혼하지 마라. 그러면 가능하다.”

친했던 선배의 조언이다. 친구들은 하나 둘 결혼을 준비했다. 결혼하면 개인 통장은 서로에게 어디까지 오픈할지를 이야기하는 동기들 사이에서 나는 다음엔 어떤 걸 배우고 즐길지를 나열하니 참 마음 편한 녀석처럼 보였을 거다.

“그래도 매번 즐거운 일을 하니 멋지네.”

선배는 싫어하지 않으면 좋아하는 거라고 했다. 연애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호불호가 명확하지 않으니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겠구나 싶었다. 운명론적인 사랑이라니. 이리 수동적일 수가 없다.




레진 아트에 취미를 붙였다. 집 밖을 나가지 않게 웬만한 물품은 다 샀다. 밥 값은 아까워하면서 미술 용품에 돈을 이리 쓰다니. 과거 물감 살 돈이 없어 밥을 굶었던 예술가들의 이름들이 떠올랐다.

“네가 20대였으면 이런 말 안 하지.”

어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삶은 점점 더 박해졌다. 그 나이대에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바로 뒤처지기 마련이다. 내가 원치 않던 경주에 나 또한 뛰고 있으니 지루하단 생각이다.

집에서 한동안은 이런저런 작품을 만들 셈이다. 티코스터, 포토 앨범 등 만들 수 있는 것도 많다. 한동안 화방을 들락날락했다. 탄방동, 은행동 등등. 거리 곳곳에 낭만은 남아있었다. 나는 어쩌면 그 길거리에 이제 밟혀 들러붙은 전단지를 찾아 헤매는 일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하지만 뭐 어떤가. 이런 것도 삶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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