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작가 시작 또는 구덩이에 빠지기
애초에 다양성은 약자의 것일지도 모른다. 못 사는 동네엔 신변잡귀한 것이 즐비하고 잘 사는 동네는 어딜가든 비슷한 풍경이 이어진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나름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는 영원하다. 이제 가정에서 도시로 그의 통찰은 뻗어나간걸까? 이렇게 문장을 끝내자니 기분 나쁘다. 못 사는 동네가 어디있고 잘 사는 동네가 어디있나. 각자 삶을 잘 살고 못 산다고 누가 판단하는 걸까. 흥이다 퉷!퉷!퉷!
글쓰는 일에 대해 어머니는 젊을 때 방황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바람은 빗나갔고 동생이 공무원이 되며 바람은 불안이 되었다.
"꿈은 안정적인 삶이 바탕이 될 때 가능한거야."
그런 어머니에게 이제는 일자리가 아닌 일거리 시대라며 아무리 일장 연설을 펼쳐봐도 그저 못 미더운 첫째가 되었다. 나이는 30대 중반. 수도권에 자리 잡지 못한 어수룩한 청년. 30대는 일종의 분깃점이다. 연봉이 갈리고, 사는 동네가 갈리고, 시선이 갈린다. 20대 땐 다 비슷해 보이는 처지가 달라진다. 아. 너는 백조였고, 나는 검은 오리였구나.
아니 오리면 어떻고 백조면 어때? 라고 홀로 주장해도 사회적 시선이란 건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백조는 백조고 검은 오리는 오리인거다.
"40까지는 애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어."
우리 엄마는 편집장님을 악의 무리로 볼지도 모르겠다. 얼른 자리잡으라 하는 애한테 하고 싶은 거 하며 살라니. 그러니 니 편집장도 그렇잖어. 뭐가 그런데. 아휴. 말을 말자. 어른이 되도 애매한건 매한가지다. 그런건 뭐고 말을 말건 또 뭘까.
"여튼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라고. 회사에서 복지도 있고, 퇴근도 딱딱 시켜주는 그런 곳!"
엄마야. 세상엔 공짜란 없는거다. 왜 회사에서 밥 주고 돈 주겠나. 그만큼 부려먹으려는거 아니겠나. 말해 뭐해. 가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걸 어른들은 가 보고 증명하라 한다. 나는 서울에 가지 못했고, 대기업이라 하는 곳도 가보지 못했기에. 너는 니 본 것만으로 판단한다며 식견 좁은 애로 대화는 끝났다.
편집장님은 한번 꿈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동네에 살며 동네에서 일하고 동네에서 먹고 사는 그런 삶. 아마 이런 내용이었을거다. 나는 그 말이 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멋진 삶이라 생각했다. 팬트하우스에서 지내나 원룸에서 지내나 결국 배고플 때 먹는 건 컵라면으로 똑같다니까.
동네에서 작가로 살고 싶었다. 지역 언론, 책의 종말은 관심 없고 글로 먹고 살고 싶었다. 그러니까 자유롭고 싶었다. 그런 내게 3개월의 시간이 생겼다. 알던 대표님이 함께 일하자 한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유성에서 할 일이 있다고.
영화는 대체 언제 끊어야 하나. 졸린 눈을 비비며 조금만 더 보자며 리모컨을 놓지 못했다.
이 글에 대한 꿈은 언제 끊어야 하나. 차라리 꿈처럼 말도 안되게 계속 이어졌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