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알 수 없는 일이지
유성온천에 대해선 예전에도 아카이빙을 한 적이 있다. 도시재생 사업 일환으로 온천1동 자원 조사를 한 것. 유성온천지구에 있는 오래된 여관 사장님, 고깃집 사장님, 호텔 사장님까지 다양한 이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그때는 유성에 살지 않았고, 시간내서 유성까지 오가는 것이 꽤 귀찮은 일이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다시 이렇게 인연이 닿았다.
살고 있는 곳을 취재한다는 것은 뭐랄까. 나른한 오후에 일어나기 싫어하는 내 게으름이 문제랄까. 아는 것과 알아야 할 것들 사이에 낯섬을 찾아가야 하는 일이다. 그건 마치 지금이 세시인지 네시인지 침대에 누워 추측하는 일과 비슷하다. 모호하고 때로는 피하고 싶을 때도 있다.
여자친구와 갔던 식당 음식 맛을 되집어 가며 글을 쓰는 건 소가 되새김질하는 느낌이다. 소는 자기 위에 있는 걸 어떻게 다시 꺼내서 씹는 걸까. 내가 느낀 맛이 정말 그 맛이 맞는지 고민하게 된다. 내가 좋았던 건 너였나, 음식이었나, 아니면 그 날씨 분위기였나. 하나씩 곱씹다 보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 느껴진다. 그렇게 이미 지난 맛을 곱씹으면 남는건 결국 맛이 아닌 분위기다. 그때 날이 좋았지. 너는 그날 내 말들이 모호하다면서 화를 냈고. 나는 그 말에 뭐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고. 그와중에 나베 국물은 맛있어서 눈치 보면서 호로록 거렸다.
온천이라는 것이 참 어렵다. 몸을 물에 담그려면 옷을 벗어야 하고, 그 옷을 둘 곳이 필요하고, 사람 몸 하나 푹 담그려면 얼마나 많은 물이 필요한지 깨닫는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좀 아직 어렸을 때. 부모님들 모두 여행가서 혼자 욕조에 물 받고 놀려고 해도 그 욕조 다 채우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개인 공간이 중요한 젊은 친구들이 오겠어요?"
온천1동을 취재할때도 그랬다. 젊은 친구들이 오질 않아. 분명 조금만 걸으면 충남대가 있고 목원대가 있지만 대학생들 중 온천하러 놀러오는 이들은 거의 없다. 그보단 그 근처에 있는 술집과 카페와 음식점을 찾아 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썸 타는 친구랑 옷 벗고 혼욕할 순 없는 노릇이고, 남자애들끼리 덜렁 거리면서 같이 몸 담구는 일이 코로나 이후론 까마득하며, 술 마시다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러 가도 술 깨러 가자고 하면서 족욕에 발 담구는 일은 아직 어색하니 말이다.
온천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어쨌든 이 공간에 대해 글을 써야 했으니까. 내가 살고 있는 동네. 하지만 나도 밥 먹는 것 외엔 그리고 그 전엔 대학 다닐 때 외엔 또 가끔씩 친구들이 결혼한다 밥 살때 만나는 동네였다. 온천에 대한 추억은 아빠였다. 뜨거운 물이였고, 온천이라 물은 식지도 않고, 나는 발만 담구다가 바나나 우유를 쪽쪽 빨아 먹었다. 그거면 됐지. 바나나 우유. 엄마는 안 사줬다.
온천에 대한 기억은 가족에 대한 기억이었다. 어른들은 뜨거운 물을 좋아했다. 정확히는 뜨거운 물이 귀한 때가 있었다. 그래서 때가 되면 뜨거운 물을 찾아 갔고, 온천을 갔다. 유성은 온천을 힐링 장소로 보고 싶어했다. 그 힐링은 아마 가족에 대한 힐링인걸까.
조만간 추석이 온다. 아버지랑 다시 한번 때 밀러 가야 하는데. 명절날마다 자주 가는 온천이 있다. 대부분 동네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어느새 동네 여러 온천 중 내가 갈 만한 곳을 골라 가고 있었다.
동네에서 글을 쓴다는 건 내가 누구인지를 돌아보는 일과 같다.
나는 뭘 좋아했고 여기서 뭘 하고 살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 말이다.
그 일이 어쩌면 나를 더 성장시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