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ㅣ그 좋은 직장을 그만둔다고?

[서울 상경 or 직무 전환 시리즈]

by N진인생

2002년 여름, 길거리를 생각하면 아직도 붉은 악마의 응원전 소리가 들려온다.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모든 국민이 알고 있는 큰 행사였지만, 나에겐 더더욱 의미가 크다. 월드컵에서 골을 넣었던 설기현 선수는 내가 살던 강릉 출신이다.



현시대 손흥민 선수가 있다면 그때에는 나에게 설기현 선수가 최고의 선수였다. 그 영향이 컸는지 나는 다음 해인 2003년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 타 학교 축구부 코치님을 통해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 되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4학년의 나이에 축구부에 정식적으로 들어가게 된다. 다른 선배, 후배들과 합숙 생활을 하며 나의 꿈을 키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다음 해가 되어 5학년이 되었고, 그토록 원하던 설기현 선수의 모교인 학교에 전학을 가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어릴 적 원하던 선수의 모교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초, 중, 고등학교 때까지 선배들이 뛰는 경기에 모두 선발하게 되면서 비교적 잘하는 선수로 꼽혔다.



하지만 그 문턱은 생각보다 너무나 높았다. 축구선수를 하기 위해서는 피라미드 구조로 된 경쟁 구도를 잘 이겨내야 하는데 나는 마지막 문턱인 대학교에서 프로로 가는 과정을 그 끝내 끝내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10여 년간 해오던 축구 선수의 꿈을 접게 되면서 대학교 2학년 일반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가게 된다. 근데 운이 좋았던 걸까 대학교에서 은퇴를 하고 교수님의 제의로 전과와 복수 전공을 병행하며 무역(현:경영) 학과와 체육교육과라는 2개의 학과를 졸업하게 되었고, 각각 교직이수 자격도 얻게 되어 정교사 2급 자격(상업정보, 체육)을 2개나 갖게 되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좋은 운을 가졌던 게 분명하다. 그렇게 얻는 기회를 통해 나는 체육 교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려면 임용고시를 봐야 하는 데 정말 어려운 시험으로 소문이 나있을 정도였다. 나는 엘리트 선수로 생활을 해서 공부에 대한 지식은 정말 부족했다. 공부법도 잘 몰랐을뿐더러 기초 수학, 영어 등 모르는 게 태산이었다. 초등학교 수학 문제집을 샀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임용 고시에 시험을 못 치르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대학교 생활을 할 때 만난 친구들이 이미 서울 노량진에 올라가 공부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부모님께 말씀을 드려 지원을 받는 걸로 하고 노량진으로 무작정 올라갔다. 노량진, 참으로 신기한 곳이다. 나는 1년 정도 살았다. 그곳은 참 쉽지 않은 곳이다. 공무원, 경찰, 소방, 교사 등 대학 졸업 후 취업 준비를 하는 많~은 수험생들이 모인 곳에서는 정말 공부만 하게 되는 곳이었다. 물론 놀 거리도 그만큼 많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루에 공부를 10~14시간씩 했으니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임용고시를 처음 치르고 불합격하게 된다. 그 후 바로 일을 하며 공부와 병행하기로 마음을 먹는데, 이후로도 쉽지 않았다. 근데 나에게 찾아온 또 좋은 기회가 있었다. 집 근처에 있는 학교에 자리가 나서 급한 대로(?) 취업을 하게 되는데 나를 좋게 봐주셔서 운 좋게 좋은 자리에 들어올 수 있었다. 1년씩 계약을 하며 일을 하는 기간제 교사의 자리였다.



이렇게 나는 교사라는 자리에 서게 되면서 공부를 병행하게 되었는데, 그게 쭉 이어져 4~5년 정도의 시간까지 이어져 왔고, 좋은 추억들로 가득가득 채우는 시간들이 매번 좋았다. 그러나 작년 여름, 나는 그렇게 천직이라고 외치던 교사의 자리에서 내려오기로 마음을 잡게 되었다.



가족들도, 주변에서도 다들 난리다. 천직인 그 직업을 그리고 그렇게 좋은 자리에서 왜 그만두느냐고 묻는다. 나는 딱히 대꾸하지 않고 그저 나에게 품어졌던 비전들을 공유했다. 그렇게 듣게 된 많은 사람들은 끄덕이며 '맞아, 넌 잘할 거야.', '그렇지, 넌 좀 더 큰 곳에서 꿈을 품어야지.' 등등 많은 용기를 불어 넣어주시고 격려해 줬다. 그 격려를 들을 때 정말 좋았다. 내 인생 내가 끌고 가는 거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굉장히 두려웠고 걱정도 앞섰다.



그런 상태에서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힘이 되었고 품었던 비전들을 더~열심히 펼쳐보겠노라고 다짐을 하게 되었다. 4~5년간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다. 특히 나에게 체육, 학교생활을 지도 받았던 아이들이 너무나도 기억에 남는다. 그 친구들에겐 평생에 한 번뿐인 담임 교사였을 텐데 조금 더 잘해주지 못함에 아쉬움이 크다. 그리고 생각이 정말 많이 난다.



이런 좋았던 직업과 직장을 내려두고 나는 새로운 곳으로 가게 된다. 그곳이 좋은 곳일지 안 좋은 곳일지도 모른 채 말이다. 일단 주사위는 던져졌다. 가야 된다. 가보자. 기도로 동참해 준 많은 사람들 잊지 말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1ㅣ익숙함이라는 물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