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27 작성글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이 응원소리는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다들 알 거다.
요즘 알파(잘파)세대인 아이들도 알고 있다.
2002년 우리나라의 여름은 굉장히 뜨거웠다.
바로 한일 월드컵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동료 친구들보다는 체구가 작았으나
골목대장 느낌의 아이로 많은 친구들을 끌고 다녔다.
집에서 10명 이상씩 재우면서 같이 놀고 했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축구선수 생활을 하기 전까지 학급 반장, 회장은 매번 했다.
그런 리더십과 당돌함이 있었는지 2002년 초등학교 3학년 때
월드컵에 매료되었다.
아마 나와 비슷한 또래라며 비슷하게 공감할 것이다.
실제 2002 월드컵을 보고 축구 선수의 꿈을 가진 사람들이 정말로 많다.
나도 그 인원 중 한 명이다.
초등학교 3학년 새벽부터 4~6학년 형들을 포함한
축구 경기 인원을 내가 직접 모았다.
그리고선 공도 준비하고 팀도 나누어 새벽, 아침마다 경기를 했다.
그리고 땀범벅인 상태로 학교에 등교했다.
그런 찰나에 학교 간 축구 대회가 열렸다.
아직도 기억난다.
초당초에서 열렸던 경기, 아쉽게 패배하고 눈물도 흘렸었다.
끝나고 먹었던 짜장면도 기억이 난다.
아무튼 그 경기가 끝이 난 뒤 나에게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2곳에서 제의가 들어왔고, 나는 옥천초교로 전학을 간 뒤
선수 생활을 실질적으로 시작한다.
반년쯤 지나고 선배들이 졸업과 동시에 인원이 부족했다.
결론적으로는 축구부 해체가 되었고,
나는 기존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던 성덕초교로 5학년 때 전학을 가게 된다.
성덕초등학교는 설기현, 정경호, 김오규 등 유명한 선수들을 배출한 명문 학교이다.
그렇게 축구 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 생활은 초, 중, 고를 거쳐 대학교까지 이어졌다.
11년 정도의 선수 생활을 해왔고,
대학교 2학년 겨울 방학 극심한 부상으로 인해 선수 생활을 접게 되었다.
이후 방황의 시간들이 있었다.
나는 선수 생활을 했기에 정규 교육과정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
이는 아직도 후회되는 부분이기는 하다.
어느 정도였냐면, 대학 학과를 전과를 하면서 수강신청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수강신청하는 법도 몰랐고, 수업은 항상 맨 앞에서 들어야 되는 줄만 알았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공책(노트), 볼펜, 샤프 같은 문구류도 처음으로 사러 가봤다.
그때가 21살이었다.
전과도 했고, 복수 전공도 하게 되었는데, 이땐 잘 몰랐다.
정말 엄청나게 힘들고 바쁘게 될 줄을..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장학금 제도도 다 풀리게 되었다.
한국장학재단에서 국가장학금을 지원받아 대학 등록금을 마련했고,
생활비도 종종 대출받거나, 용돈을 타 썼다.
그리고 학교에서 진행되던 여러 대외 활동에 참여하곤 했다.
'뭐라도 해봐야 되지 않겠나'라는 마음으로 뭐든 참석했다.
고민하고 그런 것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가게 된 태국 한 달 정도의 봉사활동,
이 경험으로 인해 나에게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한 달간의 교육봉사를 다녀온 뒤 나는 NGO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관심만 가졌다고 하기에는 NGO 도서도 구입해서 읽고
영어 학원도 다니면서 준비한 경험이 있다.
그렇게 대학교 2, 3학년을 보내고 2015년 군대를 가게 된다.
다음 해인 2016년에 졸업하고 제대 기념으로 동유럽 한 달 여행도 갔다 왔다.
그러고선 정신을 차리고 복학은 한 뒤, 진로에 대한 고민을 조금 깊이 하게 된 것 같다.
그때 복수 전공(체육교육) 학과에 친구들이 많았고 그 친구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체육교사, 임용고시 이런 것들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 그리고 한국사 자격증도 땄다.
한국사는 임용고시를 보기 위해 3급 이상이 필수였다.
그렇게 결과를 알 수 없는 임용 고시 생활은 20대 중반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노량진도 다녀오고, 방과 후 강사, 기간제 교사 등 여러 가지를 병행하며 공부도 했고,
공부에 올인했던 시간들도 존재한다.
현재 30대 초반, 4번의 임용고시, 5년의 교사 경험을 했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이 직업이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축구 선수를 했었기에 나에게 체육은 좀 더 포괄적이자
흥미 있는 직업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행복했었다. 그리고 앞으로 많이 생각날 것 같다.
교단에 섰던 나의 시간들은 나중에 엄청난 큰 성장 에너지로 올 것이라 믿는다.
나는 이제 교사 생활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그 이유는 정말 많겠지만 다음번에 글로 작성을 해볼까 한다.
축구선수 생활 10년
교사 5년
그다음으로 내가 도전해 보고자 이직을 택한 곳
즉, 발을 담그고 경험해 보고자 하는 직업은 바로 회사를 다니는 것이다.
회사 중에서도 일단 문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직업인 마케팅 관련 회사다.
마케팅이란 인하우스(기업), 대행사 등 정말 수도 없이 많다.
일단 산업 쪽만 해도 엄청나게 다르기 때문에 이 기준부터 잘 설정하려고 한다.
나는 직업을 또 옮기며 도전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안정적'이라는 말이 곧 오랫동안 머무르며 안주하며 살 수 있는 그런 평안한 곳,
돈 잘 주는 곳, 이런 곳이라고 지칭한다면
나에게 안정적이라는 말은 곧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가슴이 뛰는 일,
즉 나답게 일하고 나다움을 알아차려 주는 곳에서 함께 일하고 싶다.
그게 나에게 주는 안정감이다.
그렇기에 나는 누가 뭐래도 세 번째 직업을 갖기 위해 준비한다.
올 하반기 지금 지내고 있는 지방에서의 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내년 초 서울로 올라가 생활을 할 생각이다.
준비 잘해서, 나에게도 좋은 기회가 오고 또 나의 다 됨이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힘을 선사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게 바로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가치관이다.
무언가를 살려내는 삶, 이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